수필 by오연희

동정과 사랑 사이

posted May 1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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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는 매달 각 부서가 돌아가면서 LA 다운타운에 있는 노숙자에게 음식 서브를 하고 있다. 흔히 '거리선교'라 부르는데, 지난해 나는 그곳 활동사진을 전송받아서 교회 웹사이트에 올리곤 했다. 어느 부서 어느 분이 황금 같은 토요일을 이렇게 보내시네 할 뿐, 직접 참여해 본 적은 없었다.

올해 들어 우연찮게 거리선교 장소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그런데 사진에서 보았던 번듯한 교회 예배당과 마당이 아니라 좁다란 골목길에서 열댓 명의 노숙자를 앞에 두고 흑인 목사님이 예배를 인도하고 있었다. 빌려 쓰던 미국 교회에 사정이 생겨 골목길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 곁에 다른 노숙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자그마한 체구의 동양 여자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 여름 월트 디즈니 홀에서 열렸던 노숙자 돕기 기금모금 음악회 광경이 펼쳐진다. 나의 예상을 뒤엎은 꽉 찬 관중석, 재능 기부로 출연한 음악가들의 화려한 공연, 무대로 또박또박 걸어 나와 음악회 취지를 당당하게 밝히던 한 여성, 울타리 선교회 나주옥 목사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다음 달도 얼떨결에 합류하게 되었는데, 골목길이 북적북적 활기가 넘치는 것이 지난번과는 달랐다. 나 목사께서는 영어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캘리포니아 어린이 합창단 단원들이 선생님의 지휘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교회 식구들은 음식을 나누며 감사하고 잠시 시름을 잊은 듯 노숙자들은 노래와 음식을 즐기고.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룬 골목 광경에 작은 감동이 일었다.

자신의 시간과 재능과 손과 발을 들여 섬기는 사람들, 더 나아가 노숙자를 돕는 것이 자신의 삶이 된 사람들. 보통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빛의 세계를 소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곳뿐 아니라 음식 서브, 셸터 운영, 예방 프로그램 등 여러 종교단체와 각 카운티 차원에서 노숙자를 향한 사랑의 손길을 뻗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노숙자, 나에게는 여전히 근접하기 꺼려지는 존재이다. 제대로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다가 어쩔 수 없이 길거리로 내몰린 노숙자도 있다지만, 마약이나 도박으로 인해 패가망신한 노숙자가 아닐까 하는 선입견이 작용할 때가 있다. 멀건 대낮에 지저분한 차림으로 비틀거리는 사람을 보면 무슨 일 당할까 싶어 얼른 근처를 벗어나고 싶어진다.

사연이 어떻든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은 아무나 갖는 것은 아닐 것이다. 측은한 마음에 한두 번 돕는 것은 '동정'이고, 상황이 달라져도 변함없이 꾸준히 베풀고 나누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사랑을 실천하는 이의 가슴의 온도는 나와 다를 것 같다.

며칠 전 110번 프리웨이 타기 전 큰길 중앙선에 꾀죄죄한 여자 홈리스가 서 있길래 창문을 열고 한 푼 건넸다. 그들의 후렴에 귀를 여는데 그녀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음 손님을 받고 있는 모습이 백미러에 비친다. 한 건 더 올리려고 생략한 후렴, 동정 혹은 푼돈 사랑일지라도 그녀를 향해 God Bless You! 그 후렴 되뇌어 본다.




미주중앙일보 < 이 아침에> 2017. 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