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서점가의 독서 트렌드가 달라지고 있단다. 한국사와 정치·사회 관련 서적 판매량이 부쩍 늘었다는 소식이다. 책을 사서 읽는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정치·사회 관련 한국 뉴스에 귀를 세우고 신문 오피니언 란을 챙겨 읽고,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인물들의 이모저모가 궁금해 인터넷을 검색하기도 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생긴 증상이다.
또 한 가지 변화라면 미주 한인 초기 이민사에 애틋한 관심을 두게 된 것이다. 작년 8월 연재를 시작해 며칠 전에 끝난 미주중앙일보 '육성으로 듣는 미주 한인 초기 이민사 '외로운 여정' 시리즈를 접하며 생긴 증상이다. 처음부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비통함이 느껴지는 글의 제목과 애잔함이 가득 담긴 흑백사진에 끌려 읽기 시작했지만, 시간 있을 때 봐야지 하다가 지나쳐 버린 날이 더 많았다.
그러다가 작년 말 '외로운 여정' 책을 구입했다. 읽을 책이 밀려있기도 했지만, 책의 두께가 부담스러워 뒤로 밀쳐두었다. 그런데 책을 산 후 읽는 신문 연재가 묘하게 마음을 흔들었다. 초기 이민자들의 절망과 희망의 순간들이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고나 할까.
소와 함께 배의 맨 아래층에 갇힌 채 미국으로 오던 사진 신부 중에는 심한 뱃멀미를 견디지 못해 자살하기도 했다는 사연에 목이 메었고, 끔찍한 노동 착취였지만 굶어 죽을 상황인 한국보다 나았다는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초기 이민자의 고백에 마음이 복잡했다. 비행학교를 설립한 백미 대왕 김종림의 쌀 농장이 100년 만의 대홍수로 극심한 피해를 본 후 재기하지 못한 사연에는 안타까움으로 잠을 설쳤다.
회를 거듭하면서 읽지 못하고 넘어간 내용이 궁금해, 결국 책을 펼쳤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 땅에 살다 간 초기 이민자들의 피맺힌 절규와 그 후손들의 회한 가득한 음성이 들리고, 가난과 빈곤, 예속된 나라, 남북 분단, 수없이 들어왔던 말이 절절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극심한 혼란의 세월 속에서도 '생존과 자유와 독립' 그 절박한 꿈을 향해 돌진한 사람들, 가정과 자녀를 지켜낸 여성들, 전쟁 영웅들, 성공한 2세들 그리고 미국에서 새 물결을 만들어가고 있는 후손들까지, 한국인의 끈질긴 근성과 강인함에 주먹이 쥐어졌다.
밑줄도 긋고 하이라이트도 치고 마음에 와닿는 구절과 연결되는 생각이 많아 메모해 가면서 읽느라 책이 지저분해졌지만 오랜만에 책 읽는 맛을 누렸다.
책을 다 읽은 후 맨 앞장으로 돌아가 음미하듯 다시 읽어본 서문, 영문 저자 이경원 기자와 한국어 번역자 장태한 교수의 열정과 노고에 머리 숙여 경의와 감사를 드린다.
나의 모국 한국에 마음이 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민자로 살아가고 있고 살아 갈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이민 선조들의 발자취를 찾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구술사 프로젝트로 수십 년 걸쳐 완성한 증언서 '외로운 여정', "그들의 기억은 미국에 살았던 평범한 우리 한인의 과거로부터 전해진 귀중한 선물이다" 라는 작가의 음성이 가슴으로 들린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7년 7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