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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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솔방울

2017.10.01 13:25

조형숙 조회 수:167

먼 하늘엔 검은 구름 가득 산마루에 걸리고 가까이엔 회색 구름이 걸려 있는 사이로 잠깐씩 내미는 햇님이 웃고 있다. 또다시 자욱해지는 안개 속을 조심스럽게 달려 빅베어에 갔다. 호수 몇 개를 돌아보고 오는 길에 숲에 떨어져 있는 솔방울을 몇 개 주워왔다. 
 
입을 다물고 있는 솔방울에는 송진이 나와 있어 끈적거린다. 씻겨 주려고 뜨거운 물을 흘려가며 작은 솔로 밀어주었다. 이게 웬일인가? 부끄러운 듯 솔방울이 다 오므라들었다. 아침이면 활짝 입 벌려 노래하다 저녁이면 다물어 버리는 나팔꽃이 생각났다. 바닷가에 부끄러운 듯 입 다무는 해당화도 떠올랐다. 정말 신기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다. 오므리고 있어 나란히 눕혀 놓았던 그것들이 몸을 활짝 열고 있다. 사이사이 조각마다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 똑바로 세워 놓았다. 시간이 더 지나니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몇 그루의 나무가 되어 웃고 서 있었다.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나무들같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나무들같이"  
어릴 적 즐겨 불렀던 동요가 생각나 불러보았다.
 
가게를 인수할 때 아주 큰 솔방울 세 개를 함께 받았다. 전 주인은 감옥선교를 하고 계시는 목사님의 사모님이셨다. 깊은 산 속 기도원에 들어가셨다가 아주 큰 것을 주워오셨단다. 집에 두시지 않고 가게 음료 넣어두는 냉장고 위에 장식해 놓으셨던 것을 그냥 두고 가시라고 졸랐다. 가게 하면서 그 옆에 마른 소재를 곁들여 멋있게 장식했다. 손님들이 많이 좋아하고 어디서 구했느냐고 물어보면 신나게 설명하곤 했다. 그렇게 십수 년을 아꼈는데 내 가게를 인수하는 분이 그걸 또 탐내셨다. 어차피 나도 그냥 받은 것인데 그냥 드려야지 하는 마음에 두고 왔다. 가끔 그 솔방울 생각이 난다. 작은 것을 주워다 놓으니 그 솔방울이 아직도 잘 있을까 궁금하다.
 
   피노키오는 이탈리아어로 솔방울을 뜻한다고 한다. 솔방울이 궁금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솔방울 가습기 만들기가 있다. 솔방울의 날개가 벌어진 것은 수분이 모두 증발한 것이다.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그 모습이다. 물에 담가 먼지를 없애고 담가 놓으면 다시 수줍은 듯 날개를 오므린다. 기계처럼 충분하지는 않지만 훌륭한 천연 가습기가 될 수 있다. 송진의 향기까지 솔솔 맡을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자연이 주는 일석이조가 아닌가? 송진 닦으려다가 아주 신기한 솔방울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나무 인형 피노키오도 샤워하면 어른처럼 커질까?  상상만으로도 재미있다. (5매 수필)
 
이 글은 미주문학 2018년 봄호에 실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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