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긴 방황이

by 김사빈 posted Apr 0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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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동업을  하고

                                            김사빈

  옥지웅을 만난 것은 지난달이 이었다. 그가 허연 얼굴에 수염을 기르고, 머리엔 노랑 물감을 들이고 동생 같은 아이들 셋을 데리고 우리 교회에 나타났다. 아직도 우리 눈에 낫 설은 노랑머리가, 우리는 노랑머리라고 부르게 됐다. 물위에 기름같이 겉도는 그를 보면, 약을 하는 사람이구나 생각이 들어 왔다. 그러든 어느 날  옥지웅은 가족이 주일 예배에 가족 찬양을 하였다.
“주 만 바라볼지라.” 그 찬양이었다. 옥지웅은  눈을 감고 기타를 치면서 온몸과 영혼으로 노래하는 삶의 절규로 보였다. 이좋은 하나님을 진작 왜 못 만났을까, 이제 주만 바라보며 살겠다는 신앙 고백으로 들었다. 영혼으로 기도 하는 모습이었다. 영혼의 기도였다. 나의 가슴에 불덩이 하나가 꽂히었다. 진한 아름다움이었다. 제일 나이 많은 남자 아이는 큰 아들 옥빛 하늘, 그다음 둘째는  딸아이는 옥빛 누리, 열 살 정도의 아들은 옥빛 나리라는 것을 알았다. 옥지웅은 기타를 치고 아들은 북을 치고 찬양을 하고, 딸아이는 소프라노로 찬양하고, 작은 아들은 곁에서 따라 찬양하고, 옥지웅의 가족 찬양 아름다움 모습 속에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가 쏟아지는 것을 느끼었다.    
  저런 아름다운 가족에 어찌하여 아이들 엄마가 없이, 노랑머리 아버지와 같이 사나 의문이 생겼다.  잠시 생각하다  그 시간이 지나고 잊었다.
우연히 다음 주 월요일에 그를 만났다. 아이들은 학교를 갔는지 혼자서 있었다. 그와 말을 트고, 마주 앉아 음악을 애기 하고 문학을 애기하다 우리는 동지가 되었다. 그는 곡을 만들고 가사를 만들자는 합으로 보고 손을 마주 잡았다.
그리고 그는 간증을 하였다.
그는 하나님은 17살에 나를 만나주시지 않고 이렇게 늦게 만나 주셨나요. 하였다.
그가 열일곱 살 고등학교 2학년 때에 친구가 말다툼에 친구를 때려 주었다. 그 친구는 얻어맞고 형을 데리고 왔다. 그 형을 두드려 패주었다. 그러니까 어른을 데리고 왔다. 어른과 싸움이 붙었는데 그 어른은 그들의 아버지였다. 친구의 아버지는 그를 둥에서 허리로 칼을 찔렀다.  그 때 그는 죽었었다. 옥지 웅은 자기가 구름 위에 있었다. 사람들이 한곳을 향하여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래서 옥지웅도 거기를 그것이 무엇인가 자세히 쳐다보니 빛이 비치어 왔다. 빛을 자세히 보니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그곳에서 빛이 비쳐 나오는데 하나님은 안보이고 빛만 둥글게 비치어 왔다. 사람들은 구름 위에 서서 전부 그를 향하여  손을 들고 서 있었다. 그 때 한 음성이 들여왔다.
“ 거듭 나라 ” 음성이었다. 그러더니 자기가 밑으로 내려오더니 깨어났다. 그렇게 하여 죽음에서 살아났다. 이날은 음악선생을 만나서 좋아 하는 노래를 사사를 하려 가는 날이었다. 이 싸움으로 인해 그 꿈은 좌절되었다.
  그분이 누구인지, 거듭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세상을 마음대로 살았다. 그 후에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열일곱 살에 칼 맞고 죽었을 때 하늘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그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래도 깨달지 못하고 살았다.    감옥에 갔을 때도 그런 꿈을 꾸었고, 아내와 이혼을 하였을 때도 그런 꿈을 꾸었고 미국으로 추방을 당할 때도 그 꿈을 꾸었다.  
  세상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마리화나를 피운 것이 한국에서 쫓겨나 미국에 오게 되었다.
   옥지웅은 미국시민이었다. 미국시민으로 살다가 한국에 들어가서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었던 것이다. 마리화나를 피운다고 미국으로 추방을 당하여 억울해서 마음대로 살았다. 이제 마약을 끊고, 하나님 인도하심 따라 살아가고 싶다.  옛날을 청산하고 주님의 보호아래 살고 싶다고 한다.
   20년 전에 접었던 음악을 다시 교회 와서 찬양으로 하나님께 올리게 될 줄을 몰랐다 한다. 열일곱 살에 칼을 맞아 하나님을 만났을 때, 왜 안 불러 주셨는지, 모른다며 운다. 옥지웅 앞에 세 자녀 올망졸망한 눈빛 속에 이슬이 안 맺히게 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억울하고 아픔을 못 견디어 뛰쳐나간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차가운 성전 바닥에 엎드리는 어머님의 기도가 나를 붙들어 주신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우리 믿음의 동업을 하자하고 악수를 청했다. 그렇게 하고 싶은 노래를 하여 보자 하였다. 그는 자기가 작곡한 가요의 가사를 찬양의 가사로 바꾸어 달라고 내일 가져오겠다고 했다.. 그러 마 하고 그의 손을 꼭 잡고 악수를 하였다. 그이 환한 얼굴 햇살 한 조각이 지나가고 있었다. 내 기원하나도 그의 얼굴에 얹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