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실비실한 작은 꽃에 날카로운 이파리가 거칠게 뻗어있어 야생화인 줄 알았다. 파내고 다른 꽃을 심을까 하던 중 이웃집 정원에 핀 아이리스 꽃 무리를 보았다.
저렇게 예쁜 꽃이었어? 자극을 받고 가꾸다 보니 조금 좋아지긴 하지만, 제 모습을 찾으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언제부턴가 화르르 피어나는 아이리스 꽃 무더기를 보며 '볼수록 이쁘단 말이야' 감탄의 말을 쏟곤 한다. 정들면 안 예쁜 꽃이 없다. 같은 맥락으로 정들면 안 예쁜 사람이 없다. 그러고 보니 개·고양이 같은 동물을 비롯해 모든 생명체는 정드는 대상인 것 같다.
생물체가 아닌 길도 정이 든다. 이머전시가 아닌 한 조금 둘러가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길로 다니는 편이다. 옆에 누가 타고 있으면 입이 근질거려 길이 참 예쁘죠? 저쪽 길보다 차는 적게 다니고 풀과 나무는 많고. 자문자답의 나의 길 자랑이 시작된다. 그제야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는 듯 눈빛 반짝이는 사람도 있지만 '길이 다 그렇지 뭐'라는 듯 시큰둥한 사람도 있다.
얼마 전에는 '길도 저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면 더 예뻐지고 싶어 노력할 것 같지 않아요?'라고 했더니 뜨악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분이 있었다.
길을 이루고 있는 주변 풍광이 길 이름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것과는 달리, 꽃·사람·동물 같은 생물체는 그 이름의 실체가 존재한다. 이름이 예쁘니까 꽃도 예쁠 것이다, 라는 근거 없는 나의 선입관 때문에 잠시 실망했지만 제대로 가꾼 아이리스는 제 이름에 어울리는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요즘은 순수 한글 이름이 많아졌다지만 우리 때의 한국 사람 이름의 대부분은 한자로 풀어내는 뜻글자이다. 내 이름 연희, 연꽃 연자에 계집 희,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이니까 좋다 싫다는 의식 없이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진흙투성이 늪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연꽃이라는 꽃말을 은근히 나 자신에 대입하며 살았다.
정신 차릴 나이도 되었으니 이름 값하며 산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진흙투성이 늪 속에서 아름다운 꽃 피울 자신은 없으니 조심조심 발을 내딛는 수밖에 없겠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는 평지 같아도 땅이 터지기 시작하면 속수무책이라는 것, 지진 다발 지역인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아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제나저제나 걱정하며 살지는 않는다. 극단적인 땅의 일은 하늘에 맡기고 일상을 살아갈 따름이다.
일상을 둘러보면 어여쁜 것이 참 많다. 정들어서 예뻐 보이는 것도 있지만, 진짜 제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이 더 많은 것 같다. 가꾸면서 제 이름에 어울리는 꽃이 되어가는 아이리스처럼 내 이름에 누가 되지 않는 내가 되기 위해 일상을 잘 가꾸며 살아야 한다는 것, 평범하기 짝이 없는 새해 다짐을 새롭게 해본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8.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