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 딸이 다니는 음악학교로 유학 온 민아의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 실력은 같은 전공 친구들도 인정하는 바였다. 학위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 서울시향에 들어갔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뒀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유는 바이올린이 닿는 쪽의 어깨 통증. 얼마나 심했으면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안타까운 마음 표현할 길이 없다.
바늘구멍을 뚫기 위한 오디션이나 소속된 교향악단의 중요한 연주회를 앞두고 통증이 오기 시작하면 어떤 상황이 되는지 나는 조금 안다. 물리치료를 받아가며 고비를 넘어가는 딸을 봐 왔기 때문이다.
초청 독주회가 잦은 피아니스트 딸을 둔 이웃 엄마의 말이 오래 귓가에 맴돈다. 리사이틀을 앞둔 딸에게 팔 좀 아끼라고 잔소리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연주를 앞두고 팔을 아끼라니 무슨 소린가 했다. 양손으로 피아노를 꽝꽝 치며 대곡을 소화해내는 여자의 팔을 생각해 보란다. 아, 팔! 피아니스트는 손가락만 조심하면 되는 줄 알았다.
자신의 몸이 악기인 성악은 어떨까. 악기를 다루는 음악가보다 나이 영향을 더 많이 받는 분야가 아닐까 싶다. 목소리도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연륜이 느껴지는 깊은 감성과 음악성으로 대중을 사로잡는 음악가도 있기 때문에 나이 든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성대를 잘 유지하려는 각고의 노력과 타고난 건강에 근성이 더해져야 가능한 일인 것 같다.
근성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조용필. 오래전 연예 기사에서 읽은 내용이라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쉽게 부르는 노래를 만들기 위해 가수는 수없이 많은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던 그의 말. 자그마한 그에게서 거대한 힘이 느껴진 순간이었다.
예체능인들 대부분은 대회 우승을 목표로 치열한 경쟁을 치르게 된다. 이름 있는 음악 콩쿠르와 올림픽 같은 큰 대회는 가혹한 훈련을 이겨내는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예체능인들의 꿈의 무대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 한 길을 죽을힘 다해 달려왔다 할지라도 입상자는 극소수이다.
평창 올림픽이 진행되면서 메달리스트들의 피와 땀의 뒷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고통과 상처가 클수록 빛나는 우승, 꿈을 이룬 이들의 사연에 감동의 물결이다. 듣고 또 들어도 신난다.
한편 엄청난 피와 땀을 쏟고도 도전에 실패한 이들의 눈물에도 신경이 자꾸 쓰인다. 자신의 분야에서 날렸을 아이들, 날리는 사람만 모아놓은 곳에서 좌절하지 않고 달려온 너희들, 대단해! 고마워! 길은 또 있어! 라고 말해주고 싶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8년 2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