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녀(狂女)

by 이월란 posted Feb 2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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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녀(狂女)


                                                                             이 월란





이 많은 위태한 진실들을 딛고도 우린 당당히 서 있는데
그녀는 발이 빠졌다
이 많은 거짓들을 상식이라 우린 유유히 흘려 보냈는데
그녀는 붙들고 놓아주지 못한다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보헤미안처럼 정처없어진 사랑에
우린 잠시 가슴 절였을 뿐인데
그녀의 달아난 가슴은 평생 돌아오지 않는다
고막을 찢는 온갖 소음들 사이를 방음고막을 가진 우리들은
조용히 걸어가고 있는데
그녀는 불협화음이라 손가락마다 피가 맺히도록 조율하고 있다
우린 <돈이 전부가 아니야>라며 돈만 열심히 헤아리고 있는데
그녀는 <돈이 전부일 때가 더 많았어>라며 열심히 마음만 헤아리고 있다
잊을 것들, 잊지 말아야 할 것들, 다 잊은척 우린 충실히 무대를 누비는데
그녀는 잊을 것들, 잊지 말아야 할 것들,
하나같이 잊지 못해 오늘의 대본조차 잊어버렸다
삶의 시작과 끝을 마주 들고 서 있다면 살짝 미치는 것이 도리일진대
우린 도리를 잊어버리고 자꾸만 독해지는데
그녀는 도리를 다 해야만 한다고 삶의 시작과 끝을 바꿔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