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나비가 되어 (3)

by 윤혜석 posted Jun 2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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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되어  (3)


환자들은 둥글게 손을 잡고 서서 노래를 부르며 돌아가다가 그녀가 소리치는 대로 숫자를 맞춰 짝을 지었다.  짝을 맞추지 못한 환자들을 한 곳에 모아 노래를 시키거나 춤을 추게도 하였다.    적은 수의 몇을 제외하고는 그 시간을 같이 즐거워 하고 있었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유치원생들의 그것보다 더 어수선한 레크리에이션 시간이었지만 그들이 짖던 무구한 표정은 어린 아이들보다 더 순전했다.  
그 놀이에 그는 끼어 있지 않았다.  창가에서 떨어지지 못한 채 안절부절이었다.  창 밖으로 못 박힌 그의 시선처럼 그녀 또한 그에게로 줄곧 시선이 향해져 있었다.  

놀이시간이 끝날 즈음에 그와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그가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그 사람은 오지 않았어요.”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그녀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하던 중에 그가 계속 이야기를 했다.  
“그 사람을 만나면 전해 주세요.  기다린다고...”
“그 사람이 누구에요?  내가 어떻게...”
그녀의 말에 그는 실망하는 표정을 짓더니 잠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이내 아득하게 먼 곳으로 시선을 두며 돌아서 가는 것이었다.  

가슴이 꽉 막혀왔다.  그가 기다리는 사람이 누구이며 왜 그녀가 그 사람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돌아서 가는 그의 뒷모습이 그녀의 가슴을 깊숙히 찔러왔다.
그의 아득한 시선과 서글픈 표정에서 되살아나는 흐려져 가는 엄마의 기억, 엄마의 얼굴이 그녀의 눈에 어렸다.  
두 발로 땅을 버티며 세상 속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가엾은 엄마,  구름 속을 걷듯 허적허적 걷던 걸음걸이, 허공을 맴돌던 아득한 시선을 여섯살 먹은 어린 소녀는 보았었다.  그녀는 혼란스러움으로 머리가 아파왔다.  
두번째 병원을 찾은 후, 그 다음 일주일 동안을 그녀는 과거의 잔영과 겹쳐지는 그의 얼굴때문에 내내 혼란스러운 채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를 떨쳐낼 수가 없었다.



아버지, 전직 인쇄기술자. 마흔이 되지 않은 나이에 사고로 한 팔을 잃었다.  불구가 된 몸을 비관한 그가 그 후로 한 일은 술 마시는 일밖에 없는 무능한 가장의 역.
어머니,  많이 배워야 많이 번다는 단순한 논리로 아들을 기어이 의대에 보내고 갖은 고생도 아랑 곳하지 않고 뒷바라지를 했다.  시장 좌판을 돌며 어떤 허드렛일도 마다않는 억척스러움.  남편의 무능을 탓하는 정도가 심해지는 만큼 자신의 신세 한탄의 소리는 커져가고 어머니의 원망에 찬 푸념이 집 안을 떨날 때가 없었다.  
누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사무소의 서기로 근무하고 있다.  서른을 넘기고도 미혼인 채 집 안의 살림을 떠맡고 동생의 뒷바라지를 한다.  집 안의 형편도 형편이지만 이미 결혼은 강건너 불구경처럼 남의 일로 치부해 버렸다.  
남동생, 고교시절 부터 정학, 퇴학을 반복하면서 이 학교, 저학교를 떠돌며 온갖 사고를 저지르다 군에 입대한 철부지 막내.

그녀가 그에 대해 알아본 것은 이랬다.
그는 정신분열증이었다.  그가 병원에 입원하기는 1년이 지났을 뿐이지만 의사의 소견으로는 아주 오랜 시간을 병을 앓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결벽증과 대인기피의 증세가 나이가 들수록 유난스럽긴 했지만, 워낙 하는 공부가 힘들어서 혹은 보통사람이 아닌 수재들이 보이는 까탈스러운 성격이려니 넘기고 가족들은 그리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다.  
며칠 씩 방문을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하기를 수시로 했어도 그건 그의 남다른 성격이었을 뿐 그것이 정신병적인 소인이었다고는 그의 어머니나 다른 가족이 전혀 짐작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가족에게 하나 남은 희망이었고 미래였다.  그가 있으므로 해서 그의 가족에게는 내일이 있었다.  잃어버린 한 쪽 팔로 비관된 삶을 사는 아버지에게 그는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아 피폐한 생활 속에서 자신을 건져줄 것이라고 믿었고, 자신의 일에 대한 대가를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는 한 푼도 비축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동생의 뒷바라지로 쓸어넣은 누나도 동생의 약속된 장래가 자신의 장래인 양 기껍게 모든 것을 내주었다.  형에게 돌려진 가족의 관심에 반해 자신 앞에 놓여진 불투명한 미래때문에 형을 원망하는 동생도 형의 앞날에 드리우는 먹구름을 원 할 리는 없었다.  
하물며 그의 어머니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어머니가 겪는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이었으며 살아 있는 의미였다.  그는 어머니의 떠 받들어진 우상이었다.  

1년 전 여름.
아무 것도 입에 대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누군가를 찾는다며 날마다 온 도시를 헤매다니고 아무에게나 뜻 모를 이야기를 해 댈 때, 그 때서야 그의 가족들은 그의 병을 짐작하기 시작했다.  
그는 점점 야위고 황폐해 져갔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냐며 아들의 병을 인정할 수 없었던 어머니도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불길한 예감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밤, 시장에서의 하루가 늘 고단하여 눕자마자 잠들기 일쑤인 어머니는 숨이 차 올라 눈을 떴는데 그게 목마름도 아니요 가위 눌린 꿈도 아닌 자신의 우상인 아들이 자신의 목을 내리누르고 있는 것을 환상처럼 보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병원에 입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