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시차로 하루 꼬빡 헤맨 후에야 신문을 찾아 들었다. 방금 구워낸 빵에 쨈을 듬뿍 발라 한입 베어 문 후, 한 손에는 따끈한 커피를 다른 손으로는 신문을 펼치는 아침. 일상으로의 안착에 안도하며 습관처럼 엘에이 판부터 읽어나간다. 그런데 오피니언 면에서 딱 멈췄다. 뭐지? 이 환한 기분. 내 눈을 확인하고 싶어 떠나기 전의 신문을 찾았다. 맞다! 아래위, 중간, 옆. 경계가 사라졌다. 각각의 다른 의견들이 소통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이웃집 마실가듯 통과했던 몇 나라를 다녀와서 인지 경계가 걷힌 자유로움이 더 크게 보이는 것 같다. 나라 사이든 사람 사이든 마음이 열려야 풀리는 경계, 뮌헨공항에서 차를 렌트해서 독일·오스트리아·폴란드·체코를 아무 제약 없이 돌아다녔다. 차에 장착된 내비게이션을 보고서야 나라가 바뀐 것을 알 정도였으니 미국의 주와 주 사이를 넘나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마트폰의 대활약을 기대하며 선택한 자유여행, 궁금한 것을 처넣으면 대부분 답이 나온다. 시행착오는 여전히 겪지만, 그래서 얻는 어려움이 추억의 하이라이트가 될 수도 있을 터이니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명승지를 둘러보며 대한민국의 위상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된다. 한국인들의 해외여행 붐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지만, 자유여행 온 젊은이들, 여행사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몰려다니는 그룹들, 참 많이들 다니는 것 같다. 오스트리아 시골 호텔에서 만난, 독일에서 40년 살았다는 한국 부인 두 분과는 서로 소개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이런 시골에 무슨 일로 왔을까, 서로 놀랬기 때문이다.
그녀들처럼 유럽 쪽 언어에 익숙하거나 영어가 더 편한 우리 자녀들 세대가 아니라면 한국어 오디오가 준비된 곳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지구상의 대부분의 언어를 잘 구비해 놓은 곳도 있지만 중국어, 일본어까지 있으면서 한국어 오디오는 쏙 빠진 명승지나 시티 투어 버스들, 정말 속상하다.
여행을 마치고 뮌헨공항으로 돌아가기 위해 체코 국경을 지날 때쯤이다. 동네와 한참 떨어져 있는 길가에 스왑밋처럼 보이는 가건물 단지가 나타난다. 느낌이 이상해 차를 세웠다. 늦은 시간이라선지 손님은 없고 썰렁한 바람만 가게와 가게 사이를 돌아다닌다. 예상대로 주인은 모두 동양인,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다가갔더니 베트남인이며 이곳에 터를 잡은 지 35년이 넘었단다. 월남이 패망했을 때의 난민? 갑자기 가슴이 싸해진다.
국경 구분 없이 만발한 유채꽃 들판을 달리며 유럽의 흥망성쇠와 맞물려 있는, 눈과 마음에 담아온 거대한 성들과 성당들과 아우슈비츠를 생각한다. 그 위로 모차르트 박물관과 생가에 은은히 울려퍼지던 피아노 소나타가 배경처럼 흐른다.
아침 식탁에 앉으니 현실의 벽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 통과 시의 삼엄한 기운이 마음을 누른다. 남북한의 벽이 모두 허물어지기를 바라며 긍정적인 미지수로 남기기로 한다. 경계를 지운 중앙일보 오피니언 면의 글들이 한동네 친구 같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8년 5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