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날선 빛 / 성백군
어둠 속
유령 같은 것이
가시나무 울타리에 걸려 있다
그냥 지나치기가 의뭉스러워 다가가 보았더니
흰 비닐봉지가 바람을 잔뜩 먹음고 있다
뉘 집 울을 넘어
탈출한 걸까, 쫓겨난 걸까
한때는 주부 손에 이끌리어
장바닥을 휩쓸고 다니면서 영광을 누렸을 텐데
그 영화도 잠시, 짐을 다 비우고 할 일이 없어지니
사랑도 떠나 가드라며
사십 대 실직자처럼 버럭버럭 고함을 지른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교과서 말만 믿고 큰 소리치며 뛰쳐나온 비닐봉지
그 기세는 어디로 가고
품 안에 안겼던 애처로운 눈망울들이
옆구리를 가시처럼 파고들어
아프다는 말도 못 하고 조금씩 조금씩 제 몸을 비틀며
주변을 살핀다
이제는
자기가 흔해빠진 비닐봉지임을 알았는지
제 몸 찢어지는 것도 개의치 않으며
세상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펄럭거린다
날선 흰빛이 어둠 속으로
가물가물 사라진다
634 - 10112014
번호 | 분류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930 | 수필 | 우리가 문학을 하는 이유 | 김우영 | 2014.11.23 | 348 |
929 | 시 | 엉뚱한 가족 | 강민경 | 2014.11.16 | 247 |
» | 시 | 어둠 속 날선 빛 | 성백군 | 2014.11.14 | 209 |
927 | 시 | 얼룩의 소리 | 강민경 | 2014.11.10 | 321 |
926 | 수필 | 김우영 작가의 (문화산책]물길 막는 낙엽은 되지 말아야 | 김우영 | 2014.11.09 | 615 |
925 | 시 | 10월의 제단(祭檀) | 성백군 | 2014.11.07 | 217 |
924 | 시 | 숙면(熟眠) | 강민경 | 2014.11.04 | 202 |
923 | 시 | 가을비 | 성백군 | 2014.10.24 | 204 |
922 | 시 | 군밤에서 싹이 났다고 | 강민경 | 2014.10.17 | 333 |
921 | 시 | 내가 세상의 문이다 | 강민경 | 2014.10.12 | 202 |
920 | 시 | 가을 밤송이 | 성백군 | 2014.10.10 | 348 |
919 | 시 | 그늘의 탈출 | 강민경 | 2014.10.04 | 246 |
918 | 시 | 비굴이라 말하지 말라 | 성백군 | 2014.10.01 | 194 |
917 | 시 | 바람의 독도법 | 강민경 | 2014.09.27 | 173 |
916 | 시 | 종신(終身) | 성백군 | 2014.09.22 | 263 |
915 | 시 | 시간은 내 연인 | 강민경 | 2014.09.14 | 222 |
914 | 시 | 얼룩의 초상(肖像) | 성백군 | 2014.09.11 | 217 |
913 | 시 | 끝없는 사랑 | 강민경 | 2014.09.01 | 337 |
912 | 시 | 유쾌한 웃음 | 성백군 | 2014.08.31 | 177 |
911 | 시 | 한낮의 정사 | 성백군 | 2014.08.24 | 38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