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그 아련한 추억

2018.08.25 18:44

한성덕 조회 수:1

태풍, 그 아련한 추억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역대급 폭염이 역대급 태풍 ‘솔릭’의 위력을 한껏 키웠다. 이 태풍이 23일과 24일 한반도를 관통하면서 약해지기는 했어도 피해가 적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태풍은 열대지방에서 발생하지만 ‘솔릭’은 태풍이 만들어지기 힘든 고위도에서 생겨났다. 특히 제주도는 태풍이 생각 밖으로 더디 지나가는 바람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런 태풍의 일반적인 이야기는 글을 쓰는 이들의 몫으로 놔두고, 기독교 신자요 목사로서 성경에 기록된 바람과, 개인적인 이야기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기후와 날씨를 언급한 게 성경에 나온다. 이를테면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을 것이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날이 궂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소위 종교지도자라고 하는 자들의 소행이 곱지 않고, 또 시대적인 감각이 둔한 것을 지적하면서 비유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다.

 성경에서 태풍 같은 비바람을 광풍, 대풍, 폭풍우 등으로 묘사한다. 구약성경 시편 107편을 기록한 기자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 도다.(시편 10725)라고 했다.

  이처럼 바람은 하나님께서 만드신다. 그 바람을 불게 하시고, 장중에 모으시며, 바람의 세기와 속도와 좌우로 움직임을 조절하신다. 바람의 이동경로까지도 한 눈으로 파악하시는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분이다.

  위대한 과학자의 실력이 바람을 만들거나, 최첨단을 자랑하는 기기에서 바람을 뿜어내는 게 아니다. 70억 명의 지구촌 사람들 전체가 입으로 불고, 부채질을 하며, 발을 동동거리고, 지상의 모든 에어컨을 총 동원하면 광풍이 일어나는 것인가?

  동심의 세계에서 바람이 부는 것을 신기하게 느낀 적이 있었다. 그 때 ‘저 바다 끄트머리에서 도깨비가 바람을 일으킨다’고 하신 어른의 말씀이 생각난다. 무주 촌놈이 바다를 본 적도 없었지만, 도깨비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의심만 더 커졌을 뿐이다. 철이 들고 신앙이 돈독해진 지금은, ‘하나님께서 바람을 일으키시는 일’로 확고히 믿고 있다.

  태풍이 발생하는 해역에 따라 태풍, 허리케인, 사이클론, 윌리윌리 등으로 부르는 것처럼, 고대 이스라엘 지역에서 불던 광풍 ‘유라굴로’가 있었다. 사도인 바울이 배를 타고 로마로 압송되어 가는 도중 만났던 태풍이다. 얼마나 풍랑이 심했던지 그 이튿날부터 배안의 짐들을 바다에 던지기 시작했다. 사흘째 되는 날에는 모든 기구들을 다 내던졌다.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을 볼 수 없는 칠흑 같은 밤이었다. 먹지 못하고 굶주린 지 열나흘이 되었다. 구원의 여망이 온전히 사라진 절벽 같은 나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객들 276명 전원이 어느 육지에 안착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이었다.

 

 태풍 때문에 겪었던 단 한 번의 쓰라림이, ‘태풍’ 소리만 들어도 되살아나곤 한다. ‘곤파스’가 전국을 강타하던 20108월로 기억한다. 가족휴가를 떠나 경기도 쪽에 머물고 있었는데 장로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태풍으로 교회 종탑이 날아가고, 지붕 일부가 벗겨졌다는 것이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제일 먼저 인명피해를 확인했다. 다행스럽게도 교회가 논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곡식 이외의 다른 피해는 없다고 하셨다. 새 예배당을 건축하고 20099월에 입당했으니 1년만의 사건이었다. 얼마나 가슴이 쓰라렸는지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야 하지만 내려가 본들 뾰족한 수가 없어서 하루 더 머물다 온 적이 있었다.

  곤파스가 지나간 현장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빨간 지붕 한 쪽이 벗겨졌는데 옷을 벗긴 듯 볼썽사납고, 종탑의 강판 대부분이 종이쪽지처럼 찢겨졌다. 그 찢겨진 강판은 50여 미터를 날아가 논바닥에 처박혀 있었다. 찢겨진 만큼이나 내 가슴도 아팠다. 나오는 것은 눈물과 한숨, 그리고 ‘주여!’ 부르짖는 탄식뿐이었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이삭들은 이 괴물(?)을 빨리 치워달라고 아우성치는 듯해서 가슴은 더 미어터졌다.

  여기저기에서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시련은 새로운 도전을 낳는 게 아닌가? 지붕을 다시 입히고, 새로운 기법으로 종탑을 다시 올렸다. 훨씬 멋져보였다. 어려울 때 어려운 자를 돌아보는 것이, 어려운 이들에게는 생각 이상으로 큰 기쁨이 된다. 태풍 ‘곤파스’를 통해서 느꼈던 깨달음이었다.

                                                                    (2018.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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