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사랑과 킹

2019.10.18 13:24

한성덕 조회 수:4

군산 사랑과 킹

한성덕

 

 

 

 

  이름난 곳은 그 지역의 대표성을 지닌 무엇인가가 있다. 예를 들어 ‘무주’하면, 천혜의 자연미와 함께 깊은 산골짜기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무주 적상산은 형형색색의 단풍, 고창은 고인돌의 역사성, 부안은 저녁노을의 해변, 임실이나 순창은 고고한 선비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내장산은 울긋불긋한 단풍들이 수놓은 가을을 연상하게 된다.

  군산은 무엇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초등학생시절부터 현재까지 군산과 엮어져 있다. 마치 촘촘히 짜여진  그물망이라고나 할까? 떼낼 수도, 잊을 수도, 모른 체할 수도 없다. 그 중 서너 가지는 남다른 면이 있다.

  먼저 초등학교 시절이다. 5학년 때 모내기철에 우리는 논으로 뛰어들었다. 담임이셨던 이상규 선생님은 군산 옥구군 미면이 고향이시다. 선생님의 착안으로 모내기한 돈을 모아 수학여행을 가자고 했다. 사실, 무주의 코흘리개 우리는 꿈같은 일이었다. 그걸 아신 선생님의 혜안이 얼마나 탁월하신가? 우리는 그 기쁨에 모내기를 열심히 했다. 동네마다 어른들은 ‘참 기특한 녀석들’이라며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셨다. 그 덕에 군산비행장과 동학사와 월명공원, 그리고 군산에서 배를 타고 장항제련소까지 다녀왔다. 여행하는 큰 기쁨과 즐거움이 내안으로 유입된 첫 사례다. 여행은 아예 꿈도 꿀 수 없는 가난하던 시절에 군산을 찾았으니, 내 인생에서 어찌 군산을 잊겠는가? 진하게 남아있는 군산 사랑이요, 잊을 수 없는 한 토막의 추억거리다.

  다음 군산 사랑은, 서천아가씨와 결혼한 탓이다. 명절이 되면 고향인 무주로 먼저 갔으나, 그 이튿날은 처가인 충남서천 비인으로 갔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하구언 둑을 타고 자동차로 씽씽 달리면 그만인데 그때는 어디 그랬던가? 무주에서 나오는 시외버스를 타고 전주까지, 전주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군산까지, 군산여객선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장항까지, 장항에서 시내버스로 서천읍까지, 마지막 코스로 서천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처가로 가곤 했다. 군산에서 배를 타야 장항을 갔으니 어찌 군산을 사랑하지 않겠는가? 군산을 갈 때마다 추억이 스멀스멀 묻어나는 이유다.

  그 다음의 군산 사랑은, 전북 진안군 부귀면 소재지교회에서 시무할 때, 동갑내기 집사님이 군산으로 회를 먹으로 가자는 게 아닌가? ‘회’란 말에 귀가 번쩍하면서 초장 바른 피라미새끼 깨물다가 놀라던 어린 시절의 경험에 움찔했다. 그러는 사이에 ‘회를 어떻게 먹나?’ 걱정하고 있었다. 어쨌든 군산에 갔다. 한상 가득히 차려지는데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 상차림은 생전 처음이었다.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계속 나오는 것에 놀라 ‘그만 가져오라’고 했으니 촌티가 줄줄 새는 목사였다. 회가 입안에서 살살 녹는데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때가 30대 후반이었으니 첫 맛의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다. 그렇게 해서 회맛을 들였으니 진정한 군산 사랑이 아닌가?  

 

  최근에는 군산에서 ‘킹’을 만났다. 그를 보려고 매주 토요일이면 전주에서 군산으로 간다. ‘킹(king)’은 왕이나 군주를 가리키는 건데 군산에 그런 위인이 있단 말인가? 고대국가에서나 있었던 정치적 상황을 민주발전으로 꽃피운 대한민국에서 ‘킹은 무슨 킹이야?’ 할 수 있다. 시대적인 상황에 썩 어울리지 않는 봉건적인 냄새도 짙다. 얼토당토 아닌 성 싶은 ‘킹’이란 별칭을 실은 내가 붙였다. 단연코 킹의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킹은, 노래를 퍽 좋아하고 사랑하며 즐겨 부른다. 여러 악기들도 킹의 손에서 놀아난다. 노래를 잘하면 악기가 시원찮고, 악기를 잘 다루면 노래가 변변찮은데 둘 다 훌륭하다. 그런 재주꾼을 어디서 본단 말인가? 그는 사비를 들여 콘서트홀을 운영하며 토요일마다 문을 연다. 누구든지 노래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열린 무대요, 문턱 없이 진행되는 무료입장이다. 한 사람의 서민이 시작한, 서민을 위한 서민의 장이다. 눈비가 억수로 쏟아져도, 회오리바람이 난타해도, 명절의 틈새 속에서도 쉬는 법이 없다. 전적으로 지지하는 두 딸들 앞에서 아내와 함께 기쁨으로 찬양하는 사명자인데, 관객이 있건 없건 무슨 상관이랴? 노래가 좋아서 노래를 부르며 노래 속에 사는 킹이다. 노래하다가 노래에 파묻혀 죽을 각오로 노래하는 강골의 킹은 정말 멋쟁이다. 이런 일을 8년째 하고 있다. 누가 흉내를 낸단 말인가? 이 분야에서만큼은 독보적인 존재다. 최고라는 생각에서 킹이라 했는데 역시 킹답다.

  아내가 노래하는 바람에 토요일 오후엔 군산에 있다. 201511월부터 합류했으니 어느덧 4년째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어김없이 군산으로 달려간다. 콘서트홀에서 찬양하는 사명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노래하는 게 좋아서 킹이 마련한 킹의 무대에 올라 하나님을 찬양한다.

  우리 부부의 마지막 사역을 킹이 마련했다. 군산에서 찬양으로 불태울 수 있어 감격스럽다. 어릴 때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군산이 날 불러주니 신바람이 난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줄줄이 엮어진 군산을 어찌 사랑하지 않겠는가? 군산 사랑이 사명처럼 느껴지는 게 참 묘하다.                      

                                               (2019.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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