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억새 / 성백군
늦가을
산마루를 거닐던 노신사
오름길이 힘든지 잠시 멈춰서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봅니다
실바람에도
흰 머리카락은 먼 길 떠나려 하고
굽은 등은 수렁에 빠진 양 휘청거리는데
발밑, 저 유년의 산기슭에는
아직도 세상을 이기려고 악착 떨던
초록의 모습이 선명합니다
버리면 되는데
이 나이 먹도록 포기가 안 돼
삶을 놓을 수가 없어서
골짜기에 이는 고운 단풍은 울긋불긋 피멍인 것 같고
언덕 위 나목의 힘찬 가지들은 쓸쓸합니다
그래도, 낙엽은 지고
떨어지면서 바람과 함께 멀리 뜨나 가는데
늦가을 억새는
몇 안 남은 홑 씨 그걸 놓지 못해서
바람에 목을 맵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보이는 것이 다인 것처럼
아둥바둥 살아가는 세상사 인간들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