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오연희

짜장면을 먹으며

posted Apr 0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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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을 먹으며/오연희


오빠 월급타는 날은 하루 해가 참 길기도 했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면 우리집 기둥인 오빠가 돌아왔다
오빠 뒤를 여동생 넷이 졸졸 따르며 짜장면 집으로 향하는
좁다란 골목길은 천하무적 우리의 것이었다
“ 쭐루리 어데가노?”
젊은 여자한테 남편 뺏기고 혼자사는 옥켜이 엄마가 물었다
“짜장면 먹으로 가예 ”
여자 넷이서 신명난 합창 남긴자리에 그녀의 젖은 그림자
오래 서 있었다

오늘
친구들과 복해루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요리를 시켜서 실컷 먹고
입 가심으로 짜장면을 주문 했다
세 사람당 한 그릇인데도 짜장면이 남아 돌았다
짜장면 한 그릇 씩 앞에 놓이면 부러울게 없었던
그 맑은 가난이 그립다

입 주위가 짜장으로 온통 범벅이 된 오빠를 보고
동생 넷이 킥킥대면 흐뭇하게 웃어주던 오빠
세번째 기일이 한달 남았다
결국엔 미쳐서 온 동네를 중얼거리다 소리지르다
하루종일 바삐 돌아다니던
옥켜이 엄마는 어떻게 됐을까?

빙글빙글 돌아가는 식탁위에 남은 음식들이 어지럽다
남은 짜장면 위에 웃음소리 울음소리 간간이 배어나고
빙빙 돌아가는 세월에 나도 어지럽다



2005년 1월 26일


2005년 미주문학 봄호
2005년 "심상" 5월호
2007년 6월 라디오서울 시가 있는 아침 방송-


-미주문학 2005년 여름호 이승하시인의 시평-

오연희 시인의 이 시는 지나친 산문조가 마음에 걸리지만 분명한 것은 이시가 은유나 상징을 지향하지 않고 이야기 드려주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빠 월급날을 기다려 짜장면을 먹으러 가는 네 여동생. 그 즐거웠던 날은 이제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짜장면 한 그릇씩 앞에 놓이면 부러울 게 없었던/ 그 맑은 가난이 그립다”는 제 2연의 마지막 문장에 이르러 미소를 머금게 되지만, 그 시절의 사람들은 어떻게 변한 것일까?

시간은 무섭다. 동생들을 그렇게 위해주던 오빠가 고인이 된지도 어언 3년, 젖은 그림자를 데리고 오래 서 있던 옥켜이 엄마는 결국 미쳐버렸는데 생사 여부도 알 수 없다. “빙빙 돌아가는 세월에 나도 어지럽다”는 시의 마지막 행이 가슴을 아프게 친다. 어차피 인간은 모두 죽게 되어 있는 것, 문제는 지금 어떻게 사는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