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를 드라이브 하던 중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무심코 창 밖을 내다보다가 휠체어에 몸을 실은 몸이 아주 작은 남자를 보았다. 상체는 어른인데 얼굴은 아주 작고 하체는 거의 없는 듯이 보이는 장애인이었다.
대로에서 장애인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건만 그날 따라 멀어져 가는 그의 잔상이 내 가슴에 오래 남았다.
언뜻 얼마 전 동네 레스토랑에서 본 얼굴이 떠 올랐다. 식당 벽면에 붙은 TV 속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세상 행복을 다 가진 듯한 얼굴표정에 잠시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거의 마지막 장면이었던지 노래는 금방 끝이 났고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식당 안을 가득 채웠다. 기쁨으로 가득찬 그녀의 얼굴에서 빛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순간 카메라가 그녀의 전신을 비추었다. 화면에 눈을 박고 있던 나는 그만 훅 숨을 몰아 쉬었다. 몸통만 있고 양 팔이 보이지 않았다. 사회자의 설명에 나도 모르게 귀를 바짝 세웠다. 다리도 한쪽만 있어 의족에 의지하고 있다고 했다. 시종 웃음 띤 차분한 표정으로 사회자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었다. "행복이 완전한 몸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녀의 마지막 말이 잊혀지지 않았다.
종종 목과 어깨가 쑤시고 허리도 결리고 나도 이제 슬슬 몸에 고장이 나기 시작하는 나이로 진입 중이다. 몸이 많이 좋지 않을 때는 '혹시 이러다가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닐까' 방정맞은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우울해 지기도 한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분들을 만나는 이런 날은 배부른 투정을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된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중병에 걸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몸의 상태에 민감하게 대처할 것 같은 의사 가족이든 평소 열심히 운동하는 탱탱한 건강의 소유자든 우린 모두 병에게 무차별 공격의 대상이다.
이런 저런 병에 걸려 몸이 아픈 것도 마음의 고통으로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도 장애가 아닐까.
오랜 장애 속에서도 "행복이 완전한 몸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잖아요"라던 그녀의 깨달음은 완전하지 못한 이땅의 모든 생명에게 더할 수 없는 희망이다.
그 행복한 여인의 이름은 '레나 마리아'. 장애를 축복으로 만들어낸 그녀가 '밀알 장애우 장학복지기금' 모금을 위해 지난 주말 LA에 왔다. 내 마음에 남겨진 그녀의 한마디 때문에 더욱 기대가 되었다. 공연장 입구부터 온통 축제분위기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밀려 드는지 발 디딜 틈이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선천성 중증장애아로 태어난 어린 시절의 모습부터 88서울 올림픽 때 장애인 수영선수로 참가했었다는 그녀의 수영하는 모습도 한쪽 발로 요리하고 음식 먹고 피아노치고 운전하는 모습도 모두 보여주었다.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열창하는 그녀를 보며 공연장 안은 감동과 감탄의 물결로 출렁거렸다. 행복했고 감사했고 따뜻했다.
불완전하지만 긍정적이고 당당한 삶의 자세를 보며 "생각의 차이가 사람 인생을 바꾼다"던 말이 떠올랐다. 청아하면서도 불꽃처럼 타오르던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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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봉사의 힘
오연희 시인
지난 토요일 샌디에이고를 다녀왔다. 화마의 자국이 선연한 검게 그을린 산과 아침햇살 출렁이는 바다를 끼고 5번 프리웨이를 달렸다. 불에 타오르는 산을 대책 없이 바라보았을 바다 산도 바다도 서로 속만 탔겠구나…혼자만의 상상에 젖어보았다.
아는 목사님 자제분의 결혼 리셉션이 있어 가는 길이었다.
떠나기 며칠 전부터 샌디에이고에 거주하는 문인 몇 분과 개인적으로 잘 아는 몇 가정에 직접 통화를 했던 바라 그 쪽 상황은 대략 알고 있었다.
불길이 극심했던 지역 중 한 곳이 랜초 버나도 일 것이다. 우리 가정이 5년 동안 살았던 정든 곳이기도 하다.
이웃으로 살던 분들이 궁금해 전화를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고 랜초 버나도 옆동네인 파웨이 지역에 사는 잘 아는 선배언니와 연결이 되었다. 선배네 집은 다행히 타지 않았지만 같은 (미국) 교회에 다니는 57가구가 이번 산불로 집이 완전히 다 타버렸다고 했다.
대피하라는 명령에 따라 선배는 호텔로 가려고 했지만 빈 호텔이 없어 퀄컴 스타디움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경험했던 일들을 기쁨이 가득찬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질서'라고 했다. 미국 사람들이 얼마나 질서있게 행동하는지 '정말 살만한 나라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그 다음은 '봉사'라고 했다. 봉사자들의 대부분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의 젊은 층으로 구세군이나 적십자 같은 봉사단체는 할 일이 없을 정도로 일반인 봉사자가 많았다. 음식을 바로 요리해서 가져왔고 빵이나 음료수는 산더미처럼 쌓였다.
선배는 이번 일을 겪으며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어려움은 언제든지 올 수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느냐 또 어떻게 도와주느냐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 것이다.
봉사자가 넘치는 것을 보며 미국의 힘이 느껴지더라며 선배도 앞으로는 그동안 무심했던 기부와 봉사에 마음을 써야겠다고 했다.
결혼 리셉션장에서 오래 전의 이웃 분들과 9년 만의 해후를 가졌는데 산불이 자연스레 화제거리가 됐다. 이런 저런 걱정되는 집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고 '퀄컴에는 이재민보다 봉사자가 많았다네' '담요랑 물이랑 한 밑천 장만했다네' 등 우스개소리도 했다. 하지만 이십년 동안 샌디에이고에 살았어도 산불이 나리라고는 짐작도 못했다며 염려 가득 담은 대화로 끝을 냈다.
샌디에이고는 세계에서 제일 살기 좋은 도시로 뽑힌 적이 있다. 안전하고 깨끗하고 평화로웠던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샌디에이고! 이번 화마의 자국을 깨끗이 씻어내고 다시 일어설 것을 믿는다. 그들의 질서의식과 봉사정신이 굳건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신문발행일 :2007. 11. 06
대로에서 장애인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건만 그날 따라 멀어져 가는 그의 잔상이 내 가슴에 오래 남았다.
언뜻 얼마 전 동네 레스토랑에서 본 얼굴이 떠 올랐다. 식당 벽면에 붙은 TV 속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세상 행복을 다 가진 듯한 얼굴표정에 잠시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거의 마지막 장면이었던지 노래는 금방 끝이 났고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식당 안을 가득 채웠다. 기쁨으로 가득찬 그녀의 얼굴에서 빛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순간 카메라가 그녀의 전신을 비추었다. 화면에 눈을 박고 있던 나는 그만 훅 숨을 몰아 쉬었다. 몸통만 있고 양 팔이 보이지 않았다. 사회자의 설명에 나도 모르게 귀를 바짝 세웠다. 다리도 한쪽만 있어 의족에 의지하고 있다고 했다. 시종 웃음 띤 차분한 표정으로 사회자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었다. "행복이 완전한 몸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녀의 마지막 말이 잊혀지지 않았다.
종종 목과 어깨가 쑤시고 허리도 결리고 나도 이제 슬슬 몸에 고장이 나기 시작하는 나이로 진입 중이다. 몸이 많이 좋지 않을 때는 '혹시 이러다가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닐까' 방정맞은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우울해 지기도 한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분들을 만나는 이런 날은 배부른 투정을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된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중병에 걸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몸의 상태에 민감하게 대처할 것 같은 의사 가족이든 평소 열심히 운동하는 탱탱한 건강의 소유자든 우린 모두 병에게 무차별 공격의 대상이다.
이런 저런 병에 걸려 몸이 아픈 것도 마음의 고통으로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도 장애가 아닐까.
오랜 장애 속에서도 "행복이 완전한 몸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잖아요"라던 그녀의 깨달음은 완전하지 못한 이땅의 모든 생명에게 더할 수 없는 희망이다.
그 행복한 여인의 이름은 '레나 마리아'. 장애를 축복으로 만들어낸 그녀가 '밀알 장애우 장학복지기금' 모금을 위해 지난 주말 LA에 왔다. 내 마음에 남겨진 그녀의 한마디 때문에 더욱 기대가 되었다. 공연장 입구부터 온통 축제분위기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밀려 드는지 발 디딜 틈이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선천성 중증장애아로 태어난 어린 시절의 모습부터 88서울 올림픽 때 장애인 수영선수로 참가했었다는 그녀의 수영하는 모습도 한쪽 발로 요리하고 음식 먹고 피아노치고 운전하는 모습도 모두 보여주었다.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열창하는 그녀를 보며 공연장 안은 감동과 감탄의 물결로 출렁거렸다. 행복했고 감사했고 따뜻했다.
불완전하지만 긍정적이고 당당한 삶의 자세를 보며 "생각의 차이가 사람 인생을 바꾼다"던 말이 떠올랐다. 청아하면서도 불꽃처럼 타오르던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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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봉사의 힘
오연희 시인
지난 토요일 샌디에이고를 다녀왔다. 화마의 자국이 선연한 검게 그을린 산과 아침햇살 출렁이는 바다를 끼고 5번 프리웨이를 달렸다. 불에 타오르는 산을 대책 없이 바라보았을 바다 산도 바다도 서로 속만 탔겠구나…혼자만의 상상에 젖어보았다.
아는 목사님 자제분의 결혼 리셉션이 있어 가는 길이었다.
떠나기 며칠 전부터 샌디에이고에 거주하는 문인 몇 분과 개인적으로 잘 아는 몇 가정에 직접 통화를 했던 바라 그 쪽 상황은 대략 알고 있었다.
불길이 극심했던 지역 중 한 곳이 랜초 버나도 일 것이다. 우리 가정이 5년 동안 살았던 정든 곳이기도 하다.
이웃으로 살던 분들이 궁금해 전화를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고 랜초 버나도 옆동네인 파웨이 지역에 사는 잘 아는 선배언니와 연결이 되었다. 선배네 집은 다행히 타지 않았지만 같은 (미국) 교회에 다니는 57가구가 이번 산불로 집이 완전히 다 타버렸다고 했다.
대피하라는 명령에 따라 선배는 호텔로 가려고 했지만 빈 호텔이 없어 퀄컴 스타디움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경험했던 일들을 기쁨이 가득찬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질서'라고 했다. 미국 사람들이 얼마나 질서있게 행동하는지 '정말 살만한 나라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그 다음은 '봉사'라고 했다. 봉사자들의 대부분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의 젊은 층으로 구세군이나 적십자 같은 봉사단체는 할 일이 없을 정도로 일반인 봉사자가 많았다. 음식을 바로 요리해서 가져왔고 빵이나 음료수는 산더미처럼 쌓였다.
선배는 이번 일을 겪으며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어려움은 언제든지 올 수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느냐 또 어떻게 도와주느냐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 것이다.
봉사자가 넘치는 것을 보며 미국의 힘이 느껴지더라며 선배도 앞으로는 그동안 무심했던 기부와 봉사에 마음을 써야겠다고 했다.
결혼 리셉션장에서 오래 전의 이웃 분들과 9년 만의 해후를 가졌는데 산불이 자연스레 화제거리가 됐다. 이런 저런 걱정되는 집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고 '퀄컴에는 이재민보다 봉사자가 많았다네' '담요랑 물이랑 한 밑천 장만했다네' 등 우스개소리도 했다. 하지만 이십년 동안 샌디에이고에 살았어도 산불이 나리라고는 짐작도 못했다며 염려 가득 담은 대화로 끝을 냈다.
샌디에이고는 세계에서 제일 살기 좋은 도시로 뽑힌 적이 있다. 안전하고 깨끗하고 평화로웠던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샌디에이고! 이번 화마의 자국을 깨끗이 씻어내고 다시 일어설 것을 믿는다. 그들의 질서의식과 봉사정신이 굳건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신문발행일 :2007. 11.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