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아찌를 담그며/오연희
세일에 눈멀어
대책 없이 사들인 오이무우양파
펄펄 살아 들판으로 뛰쳐나갈 것 같은
야성
소금 솔솔 뿌려 아이 숨 죽인다
한풀 꺾인 기
시커먼 간장 속에 쳐 박고도
모자라 돌로 꾹꾹 누른다
향취라고 고집했던 성깔
여지없이 누그러진다
매콤한 고추와도 덤덤하게
어우러진다
슴슴한 맛
사각거리는 소리가 정겨운
조촐한 밥상
올망졸망 순한 눈빛이 사는 세상
알맞게 삭아
누굴누굴해 진 이대로
담백한 그대가 되고싶다
-2008년 심상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