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속에서도 자란다/오연희
아무 스케줄도 없고 말할 누구도 곁에 없는 주말
거실 바닥에 폭신한 담요를 길게 깐 후
배와 가슴 아래 말랑한 쿠션을 집어넣고 엎드려, 책을 펼친다.
글 속에 등장하는 각양의 인물과
작가의 정신 속으로 빠져드는 즐거움이 읽을 때마다 다른,
가능하면 손때가 약간 묻은 책.
세월은 많은 것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하는 묘약이다.
감동의 물결 중에도 잠깐잠깐 엄습하는 졸음
책 속의 기구한 혹은 반짝이는 인생들 때문에
잠은 얕고 분분하다.
길게 늘어진 몸은 잠을 불러들이는 지름길인 줄 알면서도
포근한 바닥과 맞닿은 가슴 속에
책 속의 이야기가 둥지를 트는 두둑함. 포기할 수 없는 단맛이다.
많은 말을 쏟아 낸 어느 날의 가난해지던 마음과
허망한 잠자리를 떠올린다.
부질없는 것으로 메꿔질 뻔했던 시간이 알곡으로 가득 차는 기분
하루를 접는 잠자리가 흐뭇해지고 잠 속에서도 나는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