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12.09.04 05:52

신선하고 재미있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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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은 만큼만 계산하는 사람들'


지난 5월 딸의 학교 졸업식에 참석하러 뉴욕주에 있는 로체스터를 다녀왔다. 우리 동네와는 달리 학사 석사 박사까지 졸업식을 하는 날인데도 꽃을 주고받는 사람이 드물었다. 혹시나 해서 엄마인 내가 한 다발 사간 꽃으로 딸은 사진 찍을 때마다 제법 졸업식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 이틀 동안 거행된 졸업식이라 다음날 그 꽃을 다시 들고 갔다. 딸의 친구들도 사진을 찍을 때면 그 꽃다발을 안고 폼을 잡았다. 딸은 사용가치가 끝난 꽃다발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선물로 주었다. 친구의 기뻐하는 표정이라니 도무지 궁상맞고 이해가 안 가는 장면들이다.

딸의 친구들과 주위에 아는 분들의 축하인사는 넘치게 받았지만 그것으로 그만인지 맹숭맹숭 그렇게 헤어지는 것 같았다. 딸의 친구 부모들도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나서서 뭔가 하자고 하기는 여러모로 망설여지는 분위기였다. 내심 섭섭했지만 이 동네는 매사 이렇게 무덤덤 무드인가 보다 기대를 접고 레스토랑을 찾아 나섰다.

차창 밖을 내다보며 도대체 재미없는 동네야 속으로 구시렁대고 있는데 딸과 절친했던 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럿이 모일 예정이며 운하가 흐르는 유원지 근처에 있는 한 레스토랑으로 오라고 했다. 그러면 그렇지 속으로 손뼉을 쳤다. 모두 배가 고픈 시간이라 사람 수가 많으면 혼자 부담하기에는 무리일 텐데 대부분 이곳 사람들이니 더치페이로 갈지 몰라 레스토랑으로 가는 동안 여러 생각이 오고 갔다.

우리 가족이 자리를 잡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의 친구들과 부모 형제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스무 명이 넘었다. 유일한 한국인인 우리 가족을 비롯해 미국 프랑스 이태리 도미니카 공화국 페루… 인종도 다양했다.

모두 흥겨운 표정으로 담소를 나누었고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시작하자 내 옆에 앉아 있던 나이 지긋해 보이는 남자가 술을 시켰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영어 선생을 했는데 일본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왔다며 자신의 인생역정을 호기롭게 늘어놓던 생긴 모습도 털털한 한 졸업생 아빠였다. 비싼 술을 너무 편안하게 주문하는 모습을 보며 뻔뻔한 사람이 아닐까 살짝 의구심이 들었다.

얼추 식사가 끝났을 때쯤 요금 청구서가 나왔다. 청구서를 먼저 받은 사람이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자기가 먹은 음식값에 세금과 팁을 토닥토닥 두드리더니 체크를 끊었다. 청구서와 체크가 들어있는 까만 계산대가 옆 사람에게 가면 그도 똑같이 그렇게 했다. 두 명은 크레딧 카드로 자기 몫을 계산했다. 한 바퀴 돌고 난 후 마지막 사람이 전액이 맞나 확인했다. 웨이트레스에게 현금과 체크와 크레딧카드가 섞여 있는데 괜찮으냐고 물으니까 괜찮다고 한다. 바로 옆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며 그 학생이 계속 아이디어를 냈다. 역시 모두 줄을 서서 자기 몫 만큼 지급했다. 아이스크림 하나씩 손에 들고 수다를 떨며 운하를 따라 걷기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모두 너무도 즐겁고 행복한 표정이다.

전체 금액에서 사람 수를 나누어 낸 적은 있어도 내가 먹은 만큼만 정확하게 계산해서 낸 적은 없는 나로서는 솔직히 정나미가 떨어졌다. 하지만 그들의 밝은 표정을 보며 다르다는 것은 참 신선하고 재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사이의 다른 점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


-미주 중앙일보 '삶의 향기' 2012.8.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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