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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집에 갔다가 같은 게이트 단지에 산다는, 오래 전 같은 교회를 다녔던 S집사님을 만났다. 언젠가 나에게 백합꽃을 한 아름 안겨 주었던 분이라 우연한 그 만남이 참으로 반가웠다. 자기 동생 주려고 집 정원에 있는 꽃을 꺾어왔는데 보이지가 않는다며 마침 눈에 띈 내가 얼떨결에 꽃 횡재를 맞게 되었었다.

그녀의 캐주얼한 차림과 털털한 말투 때문인지 꽃을 가꾸는 모습과 잘 매치가 되지 않아 사람 참 모르겠단 말이야, 속으로 킥킥 대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났다.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워 그녀 집에 가서 차 한 잔 나누기로 했다.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오밀조밀 정성스럽게 가꿔 놓은 화단을 보며 와, 감탄이 흘러나왔다. 오가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곳이니까 신경 쓴 것이겠지 내 못된 심보가 살짝 발동했다. 그런데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그녀가 아주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예고 없는 방문임에도 집안 곳곳의 가구나 살림살이들이 어느 한 곳 허술한 점이 없이 정갈하고 정숙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고 부엌살림은 그야말로 '꾼'의 진수를 보여주고도 남았다.

S집사님네 부엌 식탁 의자에 앉으며 준수네 부엌이 영상처럼 떠올랐다. 한국에서 아파트에 살 때 아래층 준수엄마는 자타가 공인하는 멋쟁이였다. 무용과 다닐 때 치어리더를 했다는 그녀는 미모도 출중했지만 당시 결혼한 여자들이 선뜻 입지 못하던 미니스커트에 야한 장갑과 삐딱한 베레모까지 쓰고 하이힐 소리 당당하게 찍어대며 길을 나섰다. 아파트 길 건너에 있는 초등학교로 향하는 길이라고 했다. 아들의 담임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 그렇게 화려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나의 딸과 그녀의 아들 준수가 또래여서 가까워지게 되었는데 그녀 집에 처음 방문한 날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녀 집 부엌 식탁에 덮여 있는 얼룩덜룩한 싸구려 비닐이 삼 분의 일은 찢겨나가 너덜대고 있었는데 바깥에서 보던 그녀의 화사한 모습으로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장면이었다. 집안 곳곳 또한 귀신이 나올 것처럼 어질러져 있었는데 이런 게 다 실제 우리의 삶이라는 듯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S집사님은 언제부터 살림꾼 기질을 발휘하게 되었을까? '변신의 여왕' 준수 엄마는 지금도 그렇게 멋쟁이로 살아가고 있을까? 옷을 사입는 것보다 꽃을 사다 기르고 집안을 아름답고 분위기 있게 만드는 것을 즐거워하는 S집사님. 옷장에 꽉 찬 옷을 두고도 맨날 입을 옷이 없다던 준수엄마, 실속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취향인 것 같다.

바쁜 이민생활에 외모 가꾸기와 살림살이 한 가지만 잘하기도 사실 쉽지가 않다. 그런데 요즘 내 주위에는 자신을 개성있게 가꿀 줄도 알고 살림살이도 딱 부러지게 잘하는 '알짜'들이 '꽤' 있다. 거기다가 자식 교육도 잘 시켜 성격까지 탁 트여 있으면 정말 어디 동네 하나 따로 만들어 떠나 보내고 싶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모든면을 다 갖추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S집사님이나 준수엄마처럼 겉과 속이 다를 때 처음에는 의아해하지만 그들도 나처럼 '보통사람'이라는 사실에 적잖이 위로를 받는다. '사귐'은 서로의 약간 기우뚱한 모습을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하는 것 같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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