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by오연희

[이 아침에] 불편하지만 재미있는… 5/8/2014

posted May 0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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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제목부터 안개가 드리워진 듯 은밀하게 다가왔지만, 아예 시작을 말아야지 싶어 의식적으로 외면했다. 드라마는 '시간 도둑놈'이라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설렌다, 불길하다'는 자극적인 포스트를 보며 저 정도로 누가 놀래? 연상 연하 커플이 새삼스런 스토리도 아니고, 대범한 척 넘어갔다. 그런데 '기황후'를 클릭할 때마다 '밀회' 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작년 11월 한국 갔을 때 언니네 집에서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 '기황후'. 빠른 전개와 간결하면서도 의미있는 대사가 내 마음을 꽉 붙잡았다. 미국 돌아와서 인터넷 서핑을 했고, 한 사이트를 발견해 연달아 쭉 보게 되었다. '기황후'는 원나라로 팔려간 고려의 공녀 기승냥이 원나라의 황후 자리에 오르게 되는 과정을 장황하고 파란만장하게 그린 작품으로,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난과 질타 속에도 시청률 고공행진을 계속해 왔던 드라마다.

사극이니만치 역사의 큰 줄기만은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라는 생각으로 보았다. 기황후의 강인하면서도 사려깊은 성품을 굵고도 섬세하게 잘 그려낸 작가의 필력이 부러웠고, 사랑, 권력, 삶의 가치, 신념 등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참 많이 공감했다.

그런데 마지막 회에서 극 중 한 번도 언급된 적 없던 역사 속 인물이 뜬금없이 등장하고, 이어지는 기황후의 행적을 몇 줄의 자막으로 때우는 등, 역사 왜곡에 대한 부담을 덜어보려는 제작진의 무리수에 어리둥절했다. 그럼에도 자신을 미워했던 사람, 또 자신을 목숨처럼 사랑했던 사람 모두 죽고 혼자 살아남은 기황후의 마지막 모습이 얼마나 처량 맞고, 그녀가 움켜잡은 권력이 얼마나 허망해 보이던지. 마지막회가 주는 메시지 또한 강한 여운으로 남아있다.

기황후를 보는 동안 결국 '밀회'도 보게 되었다. 매스컴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모임에서 '밀회'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와, 꾹 참았던 호기심에 불이 붙고 말았다. '밀회', 앞 뒤 형용사 다 빼고 한마디로 표현하면 마흔 살 유부녀와 스무 살 청년의 로맨스다. 여기까지 왔어? 한국의 발전상(?)에 난 또 뒷북이다.

파격적인 소재이니 그럴 만도 하겠지만, 절묘하게 엮어놓은 상황설정과 매력 철철 넘치는 배우들의 열연에 시청자의 뜨거운 반응이 연일 화제다. 눈멀고 귀 먼 사랑의 순수함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냐는 쪽과, 불륜을 합리화하는데 순수를 갖다 붙이지 말라는 반대의 주장이 팽팽하다.

또래 모임에서도 종영된 '기황후'에 대한 아쉬움에 관해서 이야기하다가 자연스럽게 '밀회'가 나왔다. 어느 드라마가 더 재미있나, 뭐 그런 이야기다.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긴박감 면으로 보면 역시 '기황후'가 아니겠느냐는 사람도 있고, 세태의 흐름을 반영하는 '밀회'에 표를 던지는 이도 있다.

아무튼, 밀회, 어디까지 가게 될까? 젊은 여자에게 남편 빼앗긴 여자들 이야기에 제대로 맞불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엄마 나이의 아내 혹은 연인? 불편하지만, 재.미.있.다.

미주 중앙일보 20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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