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한테 가려고 인터넷으로 뉴저지행 비행기 편을 알아보았다. 여행 삼아 가는 길이니 한두 시간 더 소비해도 문제될 것이 없기에, 직항의 반값인 미네소타를 거쳐 가는 비행기 표를 샀다.
새벽부터 부산을 떨어 비행기 출발 한 시간 전인 아침 6시 반에 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비행기가 2시간 늦게 출발한단다. 그리되면 다음 비행기와 연결이 되지 않을 텐데 어떡하지? 걱정하며 스페셜 서비스 데스크를 찾아갔다. 그런데 일정을 다시 잡기 위해 줄 서 있는 사람들 표정이 '어떡하겠어? 내 힘 밖의 일이잖아!'라는 듯 담담해 보인다.
부글거리는 속을 누르고 최선의 비행 일정이라며 내민 시간표를 받았다. 뉴저지 공항 도착이 밤 11시란다. LA와 미네소타 공항에서 무려 8시간을 보내고, 딸 집에 도착하니 거의 초주검이다. 일주일 후, 돌아오는 비행기 역시 취소되었다며 다음 비행기로 스케줄을 잡아준다. 갈아타는 비행장은 달라졌고 집에 오는데 또 하루 걸렸다.
비행기를 어쩜 이렇게 마구 취소하죠? 열을 냈더니 "비행기 회사 방침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비행기 정시 출발 가능성 %가 나와 있을 거예요"라고 누군가 말해준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산 비행기 표는 정시 출발 가능성이 60%라고 되어 있었다. 그제야 출발이 늦어져도 담담해 보이던 그들에 대한 의아심이 조금 풀린다. 그래도 억울한 기분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는다.
몇 달 전 한국에서 온 여동생들과 함께 유니버설 스튜디오 갔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매표소 직원이 기다리는 줄을 건너뛸 수 있는 비싼 입장권을 몇 번 권하길래 '그렇게 시간이 아까우면 뭐하러 놀러 오냐?' 구시렁대면서 일반 입장권을 사서 들어갔다. 줄 설 필요가 전혀 없는 한가한 날인데도 비싼 것을 권한 심보가 얄미웠다.
사람들과 여행 이야기를 하다가 놀이기구 하나 타는 데도 가격에 따라 서비스가 달라지는 것은, 평등을 부르짖는 미국의 정신에 어긋나지 않느냐고 툴툴댔다. "자본주의의 평등이지." 누군가가 아주 간단명료하게 답한다. 그런가? 그러네, 머릿속에서 '퉁'하는 소리가 들린다.
비행기에서 놀이공원까지 차별화된 서비스에 대한 고객들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자칫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는 소식이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차별화된 서비스를 받아야 할 상황이 오면 그것을 누리고, 아니면 나에게 맞는 것을 찾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렇게 자본주의식 평등에 잘 순응하며 사는 것 같다.
그렇다면 소득 없는 불평에 시간 쏟지 말고 좀 더 현명한 소비를 위해 경험을 나누고 배우는 수밖에 없다. " 미리 알아보면 직항도 비싸지 않게 살 수 있어요. 한 달 전에 샀는데 그보다 더 미리? 그래요. 한 달 전에는 며칠 사이로 가격이 요동 치기 때문에 신경을 바짝 써야 해요. 인터넷에서 할인쿠폰을 찾아보면 절약할 기회가 의외로 많아요. 유니버설 스튜디오 입장권도 AAA카드가 있으면 혹은 코스트코에서 사면 싸지요" 등등.
요즘 나는 아이들이나 이웃들 말에 귀를 쫑긋 세운다.
미주 중앙일보 5/20/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