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by오연희

[이 아침에] 아프니까 갱년기라고? 7/15/14

posted Jul 1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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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많은 호칭으로 불렸다. 10대에는 주로 이름으로, 사회생활하면서부터 미스터 김, 김 대리, 김 과장, 김 부장으로 불리다가 최근에는 사장님, 선생님, 아저씨 등으로 불린다. 어제 병원에 갔더니 간호사가 대뜸 '아버님 성함과 주민번호 써주세요'한다. 아버님이라니? 내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되었나? 머리 염색도 해서 나름 거울 보면 40대로 보이는데? 노인들이 주로 오는 한의원이라지만, 60대로 보이는 아줌마 간호사가 나보고 아버님이라니. 아픈 허리가 갑자기 부러지는 느낌이었다."

친구 홈페이지에 갔다가 친구 동생이 남긴 글을 읽고 배를 잡고 웃었다. 장난기 가득한 그의 눈빛이 떠올라 웃음이 나면서도 쌩쌩하던 그도 나이가 들어가는구나 싶어 마음이 짠했다.

이곳 한인업소에서도 헷갈리는 호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적절하지 않은 호칭을 사용하였다 하여 그 일을 마음에 오래 담아 두는 사람은 드물다.

친구 동생처럼 '센스 없는' 간호사라고 지인들 앞에서 광고 한번 세게 때리고 끝낼 것 같다. 사실 호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의 자신'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이와 상황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또래 중에는 갓 결혼을 했거나 결혼을 앞둔 자녀들이 많다. 어쩌다 멍석이 깔리면 우리 애는 왜 연애를 안 하는 거야를 시작으로 자신이 겪고 있는 갱년기 증세에 대한 하소연이 줄줄이 쏟아진다. 어깨가 아프다, 팔이 위로 안 올라 간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땀이 쏟아진다, 이런 정도는 기본이고 갱년기 우울증으로 식음을 전폐해 온 집안이 비상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모임에서 나눈 대화의 요지는 갱년기를 겪으면서 나이 드신 분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힘든 고비고비를 어떻게 다 건너오셨을까 정말 대단해,로 시작하더니 '우리나라 역사가 오죽 기구했냐?'까지 갔다. 그 말 속에는 그 나이에 이르기까지 한 인생이 넘어야 했던 모든 산과 강을 통틀어서의 아픔이 포함되어 있었다. 바르게 살아온 인생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환영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아플 때가 좋은 거야! "갱년기를 한참 지나온 어느 권사님이 던진 한마디에 '이것도 지나가는 거구나' 고통을 대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20 대에나 어울리는 그 말이 환한 불을 켜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 같다. 청춘, 좋지. 하지만 젊다는 사실 그 외에 별거 있었나? 문득, 그때처럼 방황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오늘이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 중 가장 젊은 나이니까 '청춘'이라고 이름 붙여본다.

갱년기 지나면 안 아플까. 아프단다. 그들의 청춘도 아픈 모양이다. 몸 아픈 이야기, 마음 아픈 이야기 온통 살아있다는 얘기들이다. 우리 전의 청춘도 우리 후의 청춘도 보이기 시작하는 갱년기, 생의 모든 시기를 통째로 바라볼 수 있는 지점이라고 하면 어떨까.

미주 중앙일보 201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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