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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샤워 후 사용하는 큰 수건, 며칠 지나지 않아 빨래통이 가득 찬다. 매일 벗어내는 속옷에, 겉옷도 한국 살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자주 갈아입는다. 문화 차이에서 오는 청결이 습관처럼 굳어졌다.하지만 아이들 제 갈 길 가고 나니 빨래도 예전처럼 자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어쩌다가 몇 주 건너뛰면 눅눅하게 젖은 수건과 땀에 절은 옷이 뒤범벅되어 빨래통에서 꿉꿉한 냄새가 난다. 언제부턴가 몸 깨끗하게 씻고 닦는 수건인데 뭐 그리 더럽다고 매일 빨래통에 내놓나 싶어 말려서 한두 번 더 쓰기도 하고, 몇 주 묵히면 옷에 묻은 땀이나 얼룩이 찌들어 버릴 것 같아 손으로 빨아버리는 때도 있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주일날 교회 갈 때 입었던 남편의 면 남방셔츠, 정원의 큰 나무들을 자른다며 부스럭대더니 나중에 보니 그 차림 그대로 입고 해서 땀과 시커먼 먼지와 거미줄로 엉망이 되고 말았다. 아무래도 빨건데 싶어 그냥 입고 했다나.

세탁소 다녀온 지 엊그젠데 어쩌냐고 구시렁대면서 플라스틱 대야에 세제를 풀어 담가 놓았다. 몇 해 전에 다친 오른 손목이 요즘 부쩍 상태가 나빠진 것을 빌미로, 옷을 조물조물해서 땟물을 빼라,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헹궈라, 물기를 적당히 빼고 옷걸이에 반듯하게 걸어라, 쫑알쫑알 명령을 내렸다. 얼굴 닦는 수건, 발 닦는 수건을 구별해서 사용하는 나와는 달리, 같은 몸을 왜 차별하냐며 하나로 통일시킨 남편과 툭탁거리다가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우리 부부, 외출복과 작업복 구분에 대한 나의 주장에는 완전히 꼬리를 내렸다.

해질녘, 뒷마당 포도나무 아래 걸어놓은 하얀 남방셔츠를 걷었다. 세탁소에서 드라이클리닝 한 것처럼 감쪽같지는 않지만, 햇살 아래서 말린 바삭거림이 정말 좋다. 마음 속에서 뽀드득 소리가 나고, 색색의 옷이 모두 하얀색으로 기억되는 어린 시절이 뽀글뽀글 비누 거품처럼 일어난다.

여덟 살 터울의 막내 여동생 똥 기저귀를 빠느라 아줌마들의 눈총을 받던 동네 빨래터. 봄이 오면 이불 홑청 뜯어 아버지 자전거에 싣고 엄마와 딸 넷 졸졸이 따라 나서던 아홉산 언덕배기 저수지. 삶아 빤 눈부신 홑청 돌담에 펄럭이면 건빵 봉지 조롱조롱 매단 아버지 자전거, 봄보다 더 으스대며 오셨다. 그때 그 동네 빨래터도 없어지고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떠나셨지만, 햇살 아래 반짝이던 그 투명한 빨래터의 바삭거림이 하얗게 살아난다.

요즘이야 일회용 기저귀가 가족의 수고를 덜어주고 이불을 빨아주는 빨래방이 있어 손빨래 할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며칠 전처럼 남편이 일을 내거나 옷에 김치나 매운탕 국물이라도 튀면 아무튼 조치를 해야 한다. 깜빡하고 그냥 뒀다가 얼룩이 빨래 건조기에 완전히 익어버린 적도 있다.

문화생활, 매일 샤워하고 매일 옷 갈아입으니 하루가 상쾌하다. 변형될 우려가 있는 옷은 옷걸이에 걸어 말리는 경우가 더러 있긴 하지만, 씻고 말리고 기계가 다 해주니 참 편하다. 그런데 건조기의 뜨거운 기운에 풀이 다 죽은 후들후들한 옷을 펼쳐 놓으면 기분이 산뜻하지가 않다. 영 찜찜한 날은 "빨았으니 깨끗하게 된 거야!" 최면을 건다. 햇살 아래 잘 마른 하얀 빨랫감을 만질 때의 빳빳하면서도 보송보송한 느낌이 사무치게 그리운 날이 있다.

미주 중앙일보 2014.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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