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나의 힘’
오래전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질투는 여자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인지 주인공이 여자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 힘’을 다시 읽으며 이 영화가 기형도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시나리오를 썼다는 사실과 올해 칸 영화제에서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의 작품이라는 것도 알았다. 영화가 기형도의 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호기심이 발동해서 검색해 보았다. 문학청년인 주인공은 사랑을 찾아, 사랑 없는 얼굴로 헤매고 있는 시속의 기형도 이미지로 가득했다. 여러 가지 결핍으로부터 생겨난 욕망에 허덕이는 서글픈 영상이 남아서인지, 기형도의 질투뿐이었다는 그의 희망의 내용과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는 마지막 구절이 새삼 먹먹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질투는 다른 사람이 잘 되거나 좋은 상황에 있을 때 미워하는 것을 뜻한다. 개인이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을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나 두려움, 불안으로부터 생긴다고 한다. 질투가 삶의 동력이나 최소한의 자존감을 유지하는데 필요하다는 정신건강 의학상의 의견도 있었는데, 종합해보니 적절한 감정 조절이 관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투의 감정에 휘둘리면 마음의 평안함이 여지없이 허물어진다는 것과 마음의 평안 없는 행복이 드물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단어 질투, 그 반대말이 무얼까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부러움, 선망, 동경, 아량, 존경, 무관심, 멸시, 무시 등등 의견이 분분했는데, ‘축하, 칭찬, 찬사의 경험이 쌓이다 보니 스스로 타인과의 비교에서 점점 멀어지고 내가 내 삶의 기준이 되어가고 있더라’는 글이 마음에 진하게 와 닿았다.
대충 둘러보고 나오려는데 질투의 반대말은 ‘컴패션(compassion): 다른 사람의 행복을 기뻐하는 마음’이라는 구절이 눈에 크게 들어온다. 최근 내 친구들의 소박한 행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기쁨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친구는 따끈한 커피 한잔을 들고 뒷마당에 나갔는데 햇살이 어찌나 좋던지, 커피잔을 꼬옥 쥐며 자신도 모르게 ‘아 행복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나는 종종 커피잔을 들고 나가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며 행복감에 젖는다.
큰 사업가였던 두 번째 친구는 암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후 지속적인 항암 치료와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해 오고 있다. 운동으로 골프를 시작했는데 그린 잔디 위에서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 ‘아, 나 살아있구나’ 하는 감격이 밀려왔다고 한다. 그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전율이 이는 듯 행복하다.
그다음 친구는 자기 자녀가 없는 대신에 이웃 친구 아이들을 챙기는 일에 온 정성을 다하는데 친구 아이들 가방 사주고 싶다며 이것저것 고를 때 신나 하는 표정이 오래 나를 행복하게 한다.
친구들의 크고 작은 삶의 애로가 온전히 내 것이 되기는 어렵지만 그들의 행복이 내 행복이 될 수 있는 오랜 인연에 감사하다. 컴패션, 그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있겠지만 행복의 길을 제시해 준 것은 확실하다. 평생 경쟁 속에서 질투하며 살아가는 관계는 드물다. 인연의 시야를 조금 넓혀 감정 조절에 애쓰면 그만한 가치를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2022년 6월 13일 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