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시집
2025.05.17 12:27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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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 이월란 

 

 

그것을

가둘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을 때

사과 하나를 반으로 잘랐을 때처럼 너무 쉬웠다

 

안에서 밖으로 나가거나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거나

둘 중 하나의 길임에 틀림이 없어

안과 밖 사이, 딱 중간에 있는 가슴을 관통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지칭하는 순간 보이지 않게 되고

인정하는 순간 관계 속에 놓여진다

 

심심하면 나타나 쑥대밭을 만들어 놓거나

깊게 긁힌 어제의 등처럼 기억을 돌려세우는 버릇을 가졌다

느릿느릿 다가오거나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그것은

깊은 곳에 살고 있음이 틀림없다

먼 곳에서 왔음이 틀림없다

 

자주 곰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곰 인형처럼 동그랗게 앉아 있는 고립을 세우면

한때 심장에 박혔던 붉은 송곳니를 세우며

뱅글뱅글 제자리걸음으로 울음 우는 그것을 지켜보며

멀리멀리 달아나는 상상만으로도 더 멀리 가 있는 나를 보았다

 

그것을 가두기로 맘먹었을 때, 정말 좋았다

엎드린 그것으로부터 멀어지는 점 점

우주여행이 꼭 이런 기분일 거야, 속삭이는 귀가 되었다

 

허술한 밤을 할퀴는 소리에 창살문을 열어준 뒷모습이 어딘가 낯익어

가둔 것이 맞냐고 묻고 또 물었는데

대답하는 나는 사라지고 의심하는 나만 남아 있었다

아픈 다리는 왼쪽인데 오른쪽 다리를 절단한 의사가 되었다

복사하려다 삭제 버튼을 잘못 누른 날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

 

철창 사이로 눈이 마주치고

가둔 것이 그것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고 속삭이는 입술이 되었을 때

커헝, 날렵해진 형상이 머리 위로 덮쳤고

방금 사과를 자른 칼을 떨어뜨렸다

발등에서 빨간 꽃이 점점이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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