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22 15:35

흙비

조회 수 966 추천 수 3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흙비



이월란(10/03/19)



절실하지 못한 것들에 목을 맬 때마다
바람이 나를 흔들고 간 것은 우연이 아닐 터입니다
뒤로 걷는 사람들의 앞모습에 얼굴이 없었던 이유
돌풍 앞에서도 날아가지 않는 사람들의 질긴 뿌리를
간들거리는 나의 가는 뿌리로 건드려 볼 때마다
나는 뿌리 뽑힌 나무처럼 머릴 풀어헤치고
통곡을 묻었습니다
저기압의 후면을 따라붙은 황사의 난을 닮아
일시적인 소강지역에 몸을 숨기고 나서야
간사한 꽃이 되어 계절의 틈 사이를 살아내었지요
몇 번이고 갈아 엎은 길이 이제야 제대로 뚫렸을까요
알약 같은 수면의 간지러운 늪에서 발을 건질 때마다
다시 들어가고도 싶었지요
영원히 깨어나오지 않고도 싶었지요
양손에 들린 창과 방패가 서로 맞부딪칠 때마다
나는 어느 손을 들어줘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습니다
잃은 것을 찾는 두 손이 빈 주머니 속에서 나오지 못해도
성큼성큼 나침반을 새기며 겁도 없이 걷는 두 발이
내 것이라고 여겨본 적이 없습니다
얼굴이 없는 사람이고 싶었을 때조차
나는 고개를 꺾는 것이 그리도 무거웠습니다


황사의 계절이 다시 왔나요
땅엣 것들이 저렇게, 하늘에서도 내리는 걸 보면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37 오징어의 배를 가르며 이월란 2010.03.15 645
736 휠체어와 방정식 이월란 2010.03.15 735
735 영시집 Longing 이월란 2010.03.22 1119
734 영시집 The Island of Language 이월란 2010.03.22 1295
733 견공 시리즈 그 분의 짜증(견공시리즈 59) 이월란 2010.03.22 738
732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월란 2010.03.22 581
731 기다림이 좋아서 이월란 2010.03.22 551
730 가시나무새 이월란 2010.03.22 536
729 절망에게 이월란 2010.03.22 532
728 호스피스의 유서 이월란 2010.03.22 609
» 흙비 이월란 2010.03.22 966
726 꽃시계 이월란 2010.03.30 516
725 타로점 이월란 2010.03.30 574
724 안개 이월란 2010.03.30 554
723 그대 없이 그대를 사랑하는 일은 이월란 2010.03.30 973
722 아이스크림 차 이월란 2011.09.09 515
721 고인 물 이월란 2011.09.09 429
720 영시집 The way of the wind 이월란 2010.04.05 1134
719 영시집 Rapture 이월란 2010.04.05 1435
718 봄눈 1 이월란 2010.04.05 573
Board Pagination Prev 1 ... 44 45 46 47 48 49 50 51 52 53 ... 85 Next
/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