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12 03:30

클레멘타인

조회 수 581 추천 수 5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클레멘타인


이월란(10/06/11)


내 늙은 아버지는 따땃한 아랫목에 푹신하게 누워 계시다
까맣게 물들인 올백 머리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쥐색 빵모자를 붉은 신생아처럼 쓰고 계시다
나는 아버지가 밉지도, 곱지도 않다
내가 살아갈 덧없음의 시간처럼 정들지 말아야 한다
늙은 아버지의 머리맡에서 새파랗게 젊은 귤을 까서 먹는다
아버지는 오돌도돌 귤피를 벗기고도
얇디얇은 과육의 살 껍질까지 더 벗겨야만 드신다
적어도 당신이 나보다 더 먼저 죽겠군요
그 땐 조금, 아주 조금만 울겠어요
혼자 오물오물 까먹다가 넌지시 물어 본다
아버지예, 까 드리까예?
우리 새끼가 까주면 맛있게도 먹지
속살까지 홀랑홀랑 벗겨선 끈끈한 과즙을
서늘한 피처럼 두 손에 홈빡 적시며
접시에 가지런히 담아드린다
까는 시간보다 휠씬 빠른 속도로 한 접시를 비우신다
그렇게 살아 오셨겠다
[나의 사랑, 나의 사랑,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늙은 내 아버지는 장차 태어날 나의 아기처럼
가슴 속까지, 시큼시큼 철없다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37 식기 세척기 이월란 2010.06.12 586
636 붉은 전사 이월란 2010.06.12 630
» 클레멘타인 이월란 2010.06.12 581
634 토끼와 거북이 이월란 2010.06.12 718
633 영문 수필 Shitty First Drafts 이월란 2011.01.30 15650
632 영문 수필 "Do You Speak American?" 이월란 2010.06.18 3492
631 착각 이월란 2010.06.18 524
630 견공 시리즈 種의 기원(견공시리즈 71) 이월란 2010.06.18 681
629 편지 1 이월란 2010.06.18 566
628 제3시집 편지 2 이월란 2010.06.18 793
627 유령 블로그 이월란 2010.06.18 534
626 그리움 7 이월란 2010.06.28 510
625 니코 이월란 2010.06.28 472
624 나를 파먹다 이월란 2010.06.28 564
623 견공 시리즈 아무도 몰라요(견공시리즈 72) 이월란 2010.06.28 754
622 제3시집 페르소나(견공시리즈 73) 이월란 2010.06.28 768
621 견공 시리즈 이불(견공시리즈 74) 이월란 2010.06.28 593
620 견공 시리즈 시선(견공시리즈 75) 이월란 2010.06.28 612
619 졸개 이월란 2010.06.28 506
618 마지막 키스 이월란 2010.06.28 600
Board Pagination Prev 1 ...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 ... 85 Next
/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