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물농장

2010.02.20 10:19

김수영 조회 수:975 추천: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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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동물농장          


   두 외손녀가 한 살, 세 살일 때 4년 동안 키웠다.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서 힘드는 줄 도 몰랐고, 그러는 동안 정이 푹 들었다. 지금 다시 키우라면 못 할 것 같다. 외손녀들이 미시간 주로 이사를 간 후, 보고 싶어도 워낙 멀어서 방문할 엄두를 못 내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두 녀석이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면서 나를 보러 이곳 가주 오렌지카운티까지 찾아왔다. 보지 못했던 몇 년 사이에 꼬맹이적 모습은 간 곳이 없고 어엿한 숙녀들이 되어 있었다.    

   얼마나 기특하고 고마운지 두 손녀들을 데리고 몇 날 며칠을 함께 관광을 했다. 디즈니랜드와 샌디애고에 있는 씨월드 등 여러 곳을 구경 시켜주었다. 하루는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큰 녀석이 말을 타고 싶다고 해서 집근처에 있는 승마장으로 데려가서 등록을 했다. 일주일에 두 번 승마를 배우기 시작했다. 아직 나이가 어려, 승마장이 집에서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아이를 자동차에 태워 승마장까지 데려다 주고, 끝나면 데려오고 해야만 했다. 훈련을 받는 한 시간 동안 기다려야 했는데, 전혀 지루함이 없이 그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수 십 마리의 말을 키우는 승마장은 훈련생들로 늘 붐비고 있었다. 초보자가 있는가 하면 노련하게 말을 타는 승마자들도 있었다. 훈련이 끝날 때 까지 옆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퍽 재미가 있었다. 말이란 동물이 참 영특한 동물이었다. 조련사가 눈가리개를 씌우고 어떤 목표물을 앞에 갔다 놓고 말 한마디로 빙빙 돌게 하는데 눈으로 보고 걷는 것처럼 잘 돌아 다녔다. 그러다가 갑자기 앞 발로 발길질을 하는데 나는 놀래서 왜 그런가 하고 조련사에게 물었다. 배가 고파  먹이를 달라는 몸짓이란다.    

   한 번은 날씨가 더워서 양산을 쓰고 옆으로 지나가는데 조련사가 양산을 치우고 지나가라고 했다. 갑자기 이상한 물체를 보면 말이 놀래서 껑충껑충 뛴다는 것이다. 말은 몸집이 큰데도 겁이 많은 동물이란 것을 알았다. 나는 동물 중에 개를 무척 좋아 하지만 말도 그에 못지않게 좋아한다. 서부영화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 라든가 죤 웨인 등 명배우들이 푸른 평야와 초원을 달리면서 종횡무진으로 펼치던  명연기를 기억한다. 말이 아니면 그들의 연기가 그처럼 멋있게 보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곤 했다.    

   야생마는 야생마대로 멋있고 준마는 준마대로 멋이 있다. 달릴때의 그 늠늠한 위용은 어떤 동물에도 비교가 안된다. 특히 며칠전에 서거한 찰톤 헤스톤이 주연한 ‘벤허’(Ben Hur)의 적과의 마차 경주는 이 영화의 백미라 할수 있다. 찰톤 헤스톤이 이 장면에서 명연기를 보여 줌으로 일약 대 스타가 되어 이카데미 주연상을 휩쓴 것을 많은 분들이 기억하리라 믿는다. 말이 아니였으면 이런 행운이 그에게 주어 졌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승마장에는 말 뿐만 아니라 염소, 칠면조, 오리, 닭, 토끼, 고양이, 개 등여러가지 동물들이 있었다. 고양이와 개만 풀어 놓고  다른 가축들은 울타리 안에 가두어 키우는데 가끔 풀어 놓기도 하면 사방에 늘려 있는 먹이 때문에 서로 먹으려고 싸울 때가 있었다. 먹고 살기 위해 먹이를 놓고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한 번은  울타리에 갇혀 있는 동물 중에 제일 키가 큰 숫염소가 배가 고픈지 처량하게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승마장 한 켠에 놓여 있는 잘라놓은 토막당근을 먹이로 줄려고 두 손에 잔뜩 들고 염소에게로 가 보았다. 미국 염소는 한국 염소하고 달라서 뿔이 없었다. 뿔을 잘라 버렸는지 모르겠다. 갈색 염소인데 귀는 흰색이고 손바닥 길이 만큼 긴 귀가 축 늘어져 있는 아주 귀여운 염소였다. 나는 콧등을 여러 번 쓰 다듬어 주었다.   

   염소는 내가 가까이 가니까 울타리에 껑충 뛰어 올라 발을 디디고 서서 먹이가 생각나서 인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먹이를 입에 넣어주니 얼마나 잘 먹는지 계속  입에다 넣어 주었다. 다른 가축들은 키가 큰 염소에게 기가 죽어 옆에 얼씬도 못하고 칠면조는 뒤에서, 오리와 닭들은 멀찌 감치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염소 입에서 어쩌다 당근이 땅으로 떨어지면 두 번째로 키가 큰 칠면조가 달려 들어 얼른 삼켜 버리는 것이다.          오리들과 닭들은 먹이를 얻어먹을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가 않았다. 칠면조가 앞에 버티고 서 있기 때문에 먹이를 못 얻어먹는 신세가 된 오리와 닭이 측은한 생각이 들어 나는 뒤쪽으로 먹이를 던저 주지만, 칠면조가 번개처럼 달려들어 먹이를 가로채 가는 바람에 오리와 닭은 속수무책이었다.    

   저 힘 없는 녀석들에게도 먹이를 좀 먹여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갑자기 수탉 두 마리가 싸움이 붙어 뾰족한 부리로 서로 쪼아 대면서 푸드득 푸드득 날다가 서로 맹공격을 하였다. 처음에는 힘이 막상막하였는데 대세가 기울어져 한 놈은 계속  도망을 다니고 한 녀석이 계속 공격을 해댔다. 나는 도망 다니는 놈이 가엾은 생각이 들어 싸움을 말려 볼 방도를 찾고 있는데,  느닷없이 오리 두 마리가 넓적한 부리로  공격을 하는 수탉을 따라 다니면서 연거푸 쪼아대는 것 이 아닌가! 그 닭은 지레 겁을 집어먹고  상대방 닭 공격을 멈추고 도망을 가버렸다. 드디어 싸움은 막을 내렸다.    

   토끼장 안에 있던 토끼들은 구경꾼이 되어 눈이 휘둥그래져 놀래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오리 두 마리가 한 팀이 되어서 약자를 돕기 위해 강자를 공격했고, 약자를 위기일발에서 구출해 낸  용감무쌍한 투사가 된 셈이었다. 마치 007 첩보영화 공격작전을 보는 것처럼 스릴이 있어서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동물세계에서도 의리가 있는 것을 보고 인간으로써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몇해전 겨울, 경남 창원에 있는 주남저수지를 방문한 적이 있다.겨울철 그 먼 시베리아 바이칼호수에서 우리나라까지 수만리를 집단으로 날아와서 따뜻한 남쪽에서 겨울을 나는 청동오리를 보았다. 수만 마리의 오리가 군무를 하며 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새중에 오리가 참 영특한 동물이란 것을 처음 깨달았다..     

   죠지 오웰(George Orwell) 이 쓴 ‘동물농장’(Animal Farm)이 생각났다. 1945 년 출판되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농장 안에 있는 동물들이 폭군 농장주를 대항해 폭동을 일으키는  장면묘사가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물론 내용은 쏘련의 침략주의로 인한 전제주의를 은유적으로 비유해서 썼지만 그 당시의 사회상을 잘 묘사하고 있는 소설이다.    

   동물의 세계는 참 재미가 있다. 하나님께서 동물들에게  각각 다른 DNA를 디자인해서 살아가게 만든 창조주의 설계 솜씨가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마장 훈련이 끝난 다음, 손녀들의 손을 잡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월트 디즈니사가 만든 동물 만화영화 명작 한 편을 무료로 관람하고 가는 기분이었다. 화창한 날씨와 함께 참으로 유쾌한 날이었다. (3월 3일 2010년 중앙일보 오렌지카운티판 문예마당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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