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화 연가

2011.07.22 02:14

김수영 조회 수:977 추천: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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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화 연가


   봉선화 꽃은 나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안겨주는 아주 귀한 꽃이다. 또한, 우리 민족이 매우 사랑하는 꽃이다. 특히 일제하에 서러움 받던 울분을 토한 홍난파 선생님의 작곡으로 널리 애창되던 ‘울 밑에선 봉선화’란 가곡으로 봉선화는 우리 민족으로부터 널리 사랑을 받던 꽃이다. 육이오 전쟁 이후에도 그 당시 매니큐어가 없었던 시절이라 손톱에 물감 들이는 재미가 여성들에게 대단해서 봉선화 꽃은 여성들에게 아주 인기 있던 꽃이었다. 시골에 가면 장독대 옆에, 혹은 울타리 밑에 널려 있는 것이 봉선화 꽃이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한국에 가도 봉선화 꽃을 잘 볼 수가 없어서 아쉽기 그지없다. 긴긴 여름날 밤 시골에서는 동네 처녀들이 모여 툇마루에 앉아 빨간 봉선화 꽃을 따다가 짓이겨 백반 가루를 썪어서 열 개의 손톱에다 얹어놓았다. 그리고 천으로 덮고 실로 동여매는 재미에 잠을 설치곤 했다. 밤새자는 동안 빨간 물이 배어 아침에 일어나 두근거리는 마음은 손톱을 풀 때 떨리고 신나던 시절, 작은 것에 그토록 행복해했던 게 기억났다. 어린 눈에는 물이 든 손톱이 씻어도 안 없어지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예쁘게 보였다. 

   이곳 미국에서도 봉선화 꽃을 참 보기가 쉽지 않아 향수에 젖곤 하는데, 하루는 동네에 산책하러 나갔다가 아름답게 핀 봉선화 꽃을 발견하고 감격한 일이었다. 너무나 놀랍고 반가워서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꽃잎과 잎을 따다가 손톱에 물들이고 싶은 충동이 나도 모르게 발동을 했지만, 경범죄에 몰릴까 봐 자제하면서 지나쳤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릴 적 시절과 커서 어른이 된 다음 봉선화에 얽힌 사연이 물안개처럼 아련히 피어올라 옛날 추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였다. 죽마고우였던 친구로부터 약혼식에 참석해 달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일가친척만 부르고 친구는 나와 또 다른 친구 모두 두 사람뿐이었다. 우리 둘은 그녀에게 절친한 친구였기에 초대해 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약혼식이 진행되면서 신랑 쪽 친구들이 신부에게 노래를 요청해 왔다. 친구는 딴 재주는 많았는데 노래를 잘 못 불러 난색을 하면서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했다. 얼른 옆에 앉아 있던 친구에게 귀띔하면서 ‘네가 노래를 잘 부르니 대신 축하 노래를 불러주지 않을래? 하자 이 친구는 쾌히 승낙을 했다. 친구는 수줍은 듯 일어서서 매무새를 가다듬고 두 손을 모았다. 신부 될 친구는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기뻐하는 눈치였다. 장내가 기다림에 조용한 가운데 아름다운 미성을 가진 친구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바로 ‘울 밑에 선 봉선화’ 노래였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나도 놀랐고 신부도 놀라는 안색이었다. 우리는 어릴 적 한동네 같이 살면서 학교도 같이 다니며 우정을 꽃피워갔다. 여름에 봉선화 꽃으로 손톱을 엄지손가락만 빼고 여덟 개 손가락을 모두 물들이고 좋아라, 기뻐하며 네 잎 클로버를 찾아 헤매곤 했었다. 하얀 클로버 꽃을 따다가 반지를 만들어 끼고 클로버 꽃을 꽃줄기와 함께 여러 개 따다가 한 데 이어서 꽃 화환을 만들어 머리에 둘렀다. 두 사람이 손 네 개로 꽃가마를 만들어 한 친구를 손등에다 태우고 시집 보낸다며 장난하던 어린 시절이 눈에 아른거렸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피어나는 봉선화처럼 천진난만하기만 했던 우리는 어른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고향을 떠나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 직장생활 할 때도 우리는 자주 만났고 우리들의 우정은 봉선화에 물던 손톱처럼 오래갔다. 세 사람 가운데 한 친구가 먼저 결혼을 앞두고 약혼식에 우리 둘을 초대했다. 

   일생 단 한 번뿐인 경사스런 약혼 식장에서 축하 노래 불러야 하는데 놀랍게도 ‘울 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홍난파 선생님께서 작곡한 이 노래를 부르지 않는가. 나는 당황해서 안절부절못하면서 신부의 표정을 살피니 창백했고 실내는 어수선한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나는 얼른 일어서서 변명하느라 진땀을 뺏다. ‘이 친구가 축하노래를 준비했었는데 긴장하는 바람에 가사를 깜박 잊어버려서 어릴 적 소꿉장난 할 때 봉선화 꽃 손톱 물들이던 생각만 하고 이 노래를 불렀으니 결혼식 때는 정말 잘 준비해서 좋은 축하 노래를 골라 부를 것입니다.’ 이 말을 하자 박수가 터지면서 분위기가 삽시간에 바뀌어 무사히 약혼식을 마칠 수가 있었다. 이 일 후에 두 친구의 사이는 서먹서먹한 사이가 되었고 드디어 친구의 우정은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나는 노래 부른 친구에게 찾아가 따지고 물었다. ‘어쩌자고 그 경사스런 약혼식에 그런 슬픈 노래를 불러 친구의 마음을 상하게 했는가 하고 캐물었지만, 친구는 자기도 모르게 어떨결에 튀어나왔다고만 했다. 약혼식이 끝난 후 곧 결혼하게 된 친구는 나를 찾아와 하소연하는 것이었다. 남편이 그 친구 때문에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고 기분 나쁘다며 친구와 절교하라고 해서 만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라는 가사가 계속 귓전을 맴돌며 자기가 불행해지면 어떡하나 하는 망상에 불면증에 시달리며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 너 같으면 속상하지 않겠어. 하면서 나를 원망이라도 하는 듯 슬픈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달래면서 이렇게 권유를 했다. '울 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아름답다.’ 이렇게 가사를 바꾸어 매일 아침 한 소절씩만 불러보라고 했더니 그 참 좋은 생각이라며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해주었다. 한참 후에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정말 고마워. 시킨 대로 노래를 바꾸어 부르니 꺼림칙하고 찜찜하던 마음이 사라지면서 내 앞으로의 인생이 정말 아름답고 행복해져 밝게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왔다고 했다.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연거푸 말하던 친구, 정말 고맙다며 한 그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결혼기념일엔 꼭 나를 집으로 초대해 주곤 했다. 축배를 들면서 두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며 ‘울 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아름답다.’라고 듀엣으로 부르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얼마나 흐뭇한지 이 노래는 그들의 사랑 노래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그들의 애정은 깊어 갔고 사랑하던 친구를 잃었지만, 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은 열망으로 계속 친구를 찾고 있다고 했다. 우정을 잃게 되어 외롭게 살아가던 또 다른 한 친구는 그 후 연락이 끊겨 어디서 무얼 하며 사는지 지금도 무척 궁금하다. 그 친구도 우리들의 우정을 그리워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단 한 번의 실수를 반성하여 생을 긍정적으로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봉선화와 얽힌 내 추억은 한 친구를 잃은 슬픔으로 가슴이 아리지만, 봉선화 연가에 심취해 시집간 또 한 친구의 행복이 잔잔한 물결로 내 가슴에 일렁일 때면 미소를 머금게 한다. 내일은 봉선화 곱게 핀 그 집주인을 만나서 봉선화 꽃씨를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조언을 구할 참이다. 손톱을 빨갛게 물들이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을 수 있어 행복감에 함초롬히 젖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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