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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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re] 모두 그립소이다

2005.06.30 11:44

최영숙 조회 수:308 추천:30

저두요. 모두 그립습니다. 멀리 흩어져 있어서 그런가
봐요.
폭탄 후유증은 여전해서 이선배님, 배역이 아주 중요하시던데요.
나마님이 선배님을 그렇게까지 챙기시는 거, 저 솔직히 부러워요.
아무튼 단테스 까마귀 아버지를 빼놓으면 진도를 못나가시잖아요.
모두 여행 중이시라니 갑자기 서부에 휑하니 바람이 부는 기분입니다.  여름의 절정으로 치닫는 가운데서도 바람이 부는 기분, 잘 아시지요?
가을이 가까워 오네요. 그리고 크리스마스도.....
선배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다들 떠나버린 천사의 도시에서.
요즘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가 아주 재미있다던데요.
독서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이럴 때는 그저 복수혈전이나
드라마가 최고이지요. 대신 욕도 해주고 대신 사랑하고 대신 울어
주고.
선배님, 아무튼 늘 그 자리에 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흔들어도 도로 거기에 늘 계시리라고 믿으며.  

  


>최영숙 선생님, 안녕하시지요?
>방선생님과 신혼의 아드님, 그 아들의 새각시들께서 두루 재밋게들 지내시지요?  
>새아기 손잡고 입장하신 방선생님...
>전에 LA의 웨스턴가에 있는 호텔에서 조정희 선생님과 함께 그 여학생을 만났으면서도, 그때 최영숙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저런 사연을 들었을텐데, 이 둔한 머리가 다 잊어버리고는 사돈네가 오시질 못했나? 아니 안계신다고 했던가, 하며 어쨌든 방선생님께서 며느리의 손을잡고 입장 하셨다는 말씀에 오,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일단 감동적으로 슬프다, 하는 감정으로 늦은 답신을 드립니다.
>또 방선생님께서 이번에는 멕시코 선교를 다녀오셨군요.
>저도 십여년전에 샌디에고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멕시코의 엔세나다 라는 곳으로 교인들과 함께 1일 선교를 갔던 적이 있었어요.
>나무도 한포기 없는 모래구릉에 70년대 한국의 면목동처럼 코딱지만한 판자집을 다닥다닥 지어놓고 사는 그 나라 사람들을 보며, 또 10 여년 거기 살아서 이젠 얼굴이나 손발의 모양과 색갈이 원주민보다 더 원주민 같이 변한 한국인 목사님과 사모의 모습을 보며,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인지 무엇이 참 이고 무엇이 허 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흙먼지 날리는 언덕길을 라면박스 들고 선교한답시며 원주민들의 판자집을 두드리던 부끄러움이 다시금 떠오름니다.
>지난 겨울 저희 성당에 칠레의 원주민들과 생활하시는 수녀님 두 분이 재정적인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다녀가셨는데, 그분들의 모습도 여성으로서의 기본을 팽개쳐버린 원시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도대체 이 기름진 땅에서 배뚜드려 먹고 다이어트나 궁리하는 나는 뭔놈의 동물인지 한심스럽기만 합니다.
>
>아, 우리의 근황이나 말해야겠습니다.
>(1) 조정희 선생님은 며칠전에 중국엘 가셨습니다.
>그렇다고 놀라지는 마세요, 선교를 떠난 것이 아니라 연변으로 문학여행을 가신 것입니다. 아마 한 주일쯤 후면 돌아오실 것 같습니다.
>(2) 이성열 형은 어제 캐나다로 떠났습니다.
>한 분뿐인 한국의 고모님께서 뱅쿠버에 있는 조카네 집을 방문하셔서 겸사겸사 여행을 간 것이지요. 한 두 주일 예정으로 떠나며 저에게 이틀에 한 번씩 자기 집 잔디에 물뿌려주라는 소임을 맡기고 갔습니다.
>(3) 우리의 공주 홍미경이는 공주답게 유럽으로 보석쇼 참관을 위해 떠났구요.
>(4) 나마스테, 아니 지금은 '고추스테' / 이 잉간분께서 가장 문제인데 오늘 여길 들어와 보니 요 아래 본인까지 조연으로 등장시킨 쫄편을 하나 찍 갈겨놓고 나갔습니다 그려. 끝마치라고 목이 터지게 응원한 소설은 워찌되었는지... 지난 주 통화에 750 매는 썼다고 하던데, 예정이 1200 매라면 아직 끝내지는 못했을테고... 아마도 잠깐 머리식히려고 들어왔지 싶습니다.
>서울로 격려 전화 한 통 때려야하는데 수첩을 몽땅 잃어버려서리...
>
>네, 이정도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그린이가 토이샾에 가자고 아까부터 타임을 재고 있거든요.
>다음 서신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