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힘

2009.03.19 15:26

백남규 조회 수:635 추천:116

아름다움의 힘



백남규




  무엇이 세상을 구하는가?
  ‘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언제,누구에게서 들은 것인지는 잊었지만 실없는 소리라고 웃어 넘긴 기억은 있다. 마치 ‘정의는 이긴다.’라는  경구처럼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다. ‘돈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라는 말이 오히려 실감있게 들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한다는 말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돈으로만 채워지지 않는 여백이 있는 법이다. 세상은 구원 받아야 할 위기에 처해 있음을 전제로한 이 글귀는 무엇을 뜻하는가? 아름다움이란 과연 무엇인가? 정말 세상을 구할 정도로 대단한 것인가?


   미의 개념도 시대마다 사람마다 다를텐데 그 일정하지 않은 것이 세상을 구한다니 무엇을 아름다움이라고 하는지 알아보고 싶다. 유명한 사람들이 내린 정의를 훑어보면, 아름다움이란 두렵고 무서운 것의 시작,거대하고 순진한 괴물(보들레르),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호프만 슈탈), 균형,조화,절제( 플라톤), 현대에 와서 미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고 무상의 성질을 띠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된다. 고요한 질서속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고 동적인 생명감의 발로로 관능의 도취를 느끼게 하는 생명의 연소이며 소멸해 가는 것에서도 미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추함 속에서 미를 발견할 수도 있다. 꽃이나 아침햇살처럼 밝고 이쁜 것이 아니고 썩어 문드러지는 쓰레기나 연탄재에서도 미를 발견해 내는 예술가들도 있다.

요컨대 미란 일정하게 정해진 것이 아니고 사람의 이성과 감성에 와 부딪혀 뭔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대상이리라. 가슴이 뭉클하게 되는 경험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각자의 경험에 따라  갑에게는 미적인 감흥을 주는 대상도 을에게는 그저 무덤덤한 물건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순간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곧 사라질 젊음, 갓 피어난 싱싱한 꽃,  언젠가는 시들어 갈 것이기에 그토록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공중에서 흩날릴때가 가장 아름답다. 지상의 흙먼지에 더럽혀지기 전의 눈이, 젊음의 순수가 사라지기 전의 청춘의 빛나는 웃음이 그래서 서럽도록 아름다운 것이리라. 곧 사라져 가기때문에, 물론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선 여인처럼 성숙한 아름다움도 있기는하다. 그러나 그것도 관능의 아름다움이 스러지기 전의 마지막 모습이기에 더욱 애처롭게 아름다운것이라 여겨진다. 곧 사라지는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상실과 변모,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은 지상에서 오래 견디지 못한다.  그리하여 아름다움은 혹시 슬픔속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국의 남해에 가면 금산이라는 산이 있다. 그 산에 상사암이라 불리는 바위가 있는데 이름이 지어진 유래는 이렇다. 이조 숙종때 전남 돌산 사람이 남해로 이사를 왔다. 그런데 그 주인집 여자가 너무 예뻐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 사랑을 이룰 길이 없어  고민하던 그는 금산 기슭을 헤매다가 어느 바위에 서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바위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으려 했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 돌산 사람에게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상사병에서 놓여나게 된 것이다. 그가 상사병에서 놓여난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그 바위에서 바라본 남해의 아름다움과 그 바위 주면의 빼어난 풍광에 넋이 빠져 여자의 아리따운 모습 따위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자살을 생각할 만큼 심각한 상사병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남해의 상사암에 서 볼 일이다. 지독한 상사병에서 놓여날 지도 모른다. 풍경이 얼마나 아름답기에 인간의 애욕마저 가져가 버렸을까?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세상을 구하진 못해도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아름다운 전설이다.

한 사람씩 구하다보면 세상을 구할수도 있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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