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 줍는 여자

2009.03.21 13:46

백남규 조회 수:1095 추천:110



              



   경자는 공원벤치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오늘따라 다리에 힘이 없고  온 몸이 노곤했다. 목이 말랐다. 가져온 물병은 벌써 바닥이 났다. 하늘을 쳐다보니 쨍쨍한 햇살이 뜨거웠다.  ‘오늘은 그만 들어가야겠다.’ 고 일어서는데 저쪽 모퉁이에서 김선생이 땀을 씻어내면서 느릿느릿 걸어오고 있다. 얼굴을 알아볼 정도로 가까이 오자 그는 손을 들어 “ 미세스 박, 벌써 들어 갈려우.” 라고 소리쳤다.

“날도 덥고 오늘은 기운이 없네요.”  

정말  사흘굶은 여인처럼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조금만 찔러도 터져버릴 것같은  슬픔이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얼굴이었다.

“어디 아파요?”

경자는 한숨을 쉬었다. 가슴이 송곳으로 쿡쿡 찔리는 듯이 아팠다.

“몸살인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일어섰다.

  몸 구석구석이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쑤시고  저려왔다. 아파도 아플 수 없었던 지난 세월이 흘러가는 구름모양 머리속에 떠올랐다.

“일찍 들어가 쉬시구려.”

“그래야 겠네요. 날도 더운데  그쪽도 그만 들어가시구려.”

  김노인은 한국서 중학교 선생이었다. 은퇴후 딸네집에 다니러 왔다가 눌러앉아 산다고 했다.  지난해에  안사람이 저 세상으로 떠난 후  긴 긴 시간을 견딜 수 없어서 공원 산책을 나왔었다. 그 때 깡통을 줍고 있는 경자와 만났다. 공원 수돗가에서 더러워진 깡통을 깨끗이 씻은 다음 발뒤꿈치로 납작하게 밟고 있는 중이었다. 사소한 일에도 열과 성을 다하여 열심히 하는 모습이어서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김노인은 “거 더운데 좀 쉬었다하시구려” 라고 말한 뒤 찬 물병을 건네주었다. 벤치에 앉아서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시든 오이지처럼 쪼글쪼글한 얼굴에 머리칼은 산발한듯이 엉클어져있다. 언뜻보기에 세상살이에 찌든 모습이었지만 가만히 지켜보면  단단한 무엇이 배어있는 얼굴이었다.보는이로 하여금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뭔가가 그녀의 모습에서 풍겨나왔다.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고 거실에 들어섰다. 아들과 며느리,손자,손녀들이    없는 집안은 철지난 바닷가처럼 썰렁하다. 조용하고 조용하다. 바늘하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듯하다. 막내손자가 유치원을 다니자 시간은 태평양처럼 널브러졌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을 견딜 수  없어 시작한 것이 깡통줍기이다. 경자도 김선생처럼 무료한 시간을 견딜 수 없어 공원 산책을 나섰다가 미국노인이 깡통줍는 것을 보고 무릎을 딱 쳤다. ‘바로 저거구나.’ 다음날로 바로 유모차를 끌고 공원으로 나왔었다. 어제  아들녀석이 눈치채고 난리를 쳤다.거실 소파에 쓰러질 듯 드러누웠다. 온 몸에서 열이 불이 붙듯 뜨거웠다. 부엌쪽을 쳐다보니 아들녀석 먹으라고  마련해둔 된장찌개가 다 식은채 식탁에  아침에 놓은 그대로 놓여있다. 아침 식사를 거의 못하고 나가는 아들을 위해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밥과 국을 끓여 놓지만 거들떠 보지도 않고 나가버린다. 가는길에 맥도널드에 들러 드라이브 드루(drive through)로 커피와 샌드위치조각을 급히 삼킬 것이다.

  널따란 식탁에 둘러앉아  남편이 숟가락을 들때까지 배가 고파도 참던 아들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기억에도 희미하다. 평생 아이들에게 마음을 붙이고 살았다. 그런데 이제와서 늙은 에미보고 나가 살라고 하니,괘씸한 놈.  어제 그 말을 듣는 순간 경자는 눈에 불이 나고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녀석을 믿고 이제까지 살아왔는데…배은망덕한 놈. 지나온 세월이 분하고 억울하고 허망했다.

어제 일이다.  여느때처럼 아들내외가 출근하고 손주들은 등교한 후  부엌이며 거실 청소를 마친 후 집을 나섰다. 깡통을 줍기 위해서다. 손주들이 어릴때는  아이들 뒷바라지 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었다. 지난해부터 막내손주까지 유치원에 다니자  시간이 남아돌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이 경자를 너무 힘들게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깡통줍기이다. 경자는 아들이 싫어할 것 같아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일찍 퇴근하는 동혁이 그것을 본 것이었다.

  “어머니, 이렇게 더운 날씨에  집에 계시지 않고  넝마주이가 뭡니까?  남들이 보면 뭐라 하겠어요?”

“괜찮다. 운동도 되고   용돈도 생기고…”  

“ 아니, 연금때문에 그러세요?”

“ 그래 이제 너도 살만하니 그거 좀 돌려다오.”

“   어머니 ,무슨 돈이 필요하세요?  그거 어머니 앞으로 보험도 들고 적금도 들고 있어 당장은 힘들어요.”

“ 내가  손주들 생일에 옷가지나 사줄려해도 수중에 돈이  없으니 불편해서 그런다. 그러지 말고  돌려다오.”

동혁은  왠지 흥분이 되어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나왔다.

“ 그래요. 그럼 돌려드릴테니 나가서 사세요.”

“뭐라고?  너 나보고 나가라 고….이 몹쓸 놈”

마른 하늘에 벼락같은 소릴 들으니 경자는 기대고 있던 벽이 무너지고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느낌이 들었다. 한동안 멍하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마음에 없는 소릴 한 것이겠지만 아들 입에서 집을 나가라는 말이 나오다니 믿겨지지 않았다. 괘씸했다.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길 몇  번이고 했다. 아들녀석이 며느리와 한 통속이 되다니…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밤새도록 엎치락 뒤치락했었다.

부모자식관계란 무엇인가. 자식은 빚쟁이, 밉지 않은 도둑놈 등등의 말이 있는 것을 보면 부모는 자식에게 끝없이 뭔가를 주고 싶은가보다. 그래,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관계인가? 경자는 자기도 모르게  의문이 들었다. 경자는 어려서부터 주위에서 보고들은 대로 살았다. 물론 지금도 거리에 버려져도 자식의 이름을 끝내 밝히지 않는 어머니가 있다. 자식에게 땅문서,집문서 다 내놓아 사업자금을 대다 마침내 빈 털털이로 쫓겨나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자식이 달라는데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느냐면서 말이다. 아무튼 경자는 자식을 위해서  그녀의 평생을  송두리째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엔 항상 자식에 대한 미안함이 자리잡고 있었다. 왜냐하면  홀로된 이후에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먹이고 입히지도 못했기때문이다.   그저 몸이 부서져라  일했지만 손에 쥐어지는 건 늘 입에 풀칠하기에도 모자랐다. 그래서인가  자식들이  저마다 제 앞가림을 하고 잘 사는 이즈음에도 자식들이 주는 용돈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저
건강하고 잘 살기만 빌었다.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쓴 적이 없었다.  

부모자식관계는 이해관계도 아니고 계약관계도 아니다. 어떤 경우엔 지긋지긋해도 떨칠 수 없는 관계이고 진절머리나지만 외면할 수 없는, 그런 관계가 핏줄이다. 그러나 요즘 세태는 고부관계든 뭐든 간에 인간관계의 실상은 자잘한 손익관계에 바탕을 두는 것으로 변해버린 것같다. 손주를 돌봐 주고도 베이비시터  삯을 요구하는 친정어머니.시어머니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신영은 행운아였다. 시어머니가 무상으로 손주를 돌볼 뿐 아니라 자신의 소셜연금까지 자진해서 내놓았기때문에 금전적으로 손해볼 건 없었다.





   창밖을 보니 바람에 날려 자카란타꽃잎이 눈발처럼 흩날리고 있다. 꽃이 지는 풍경을 바라보노라니 그녀의 마음은 더욱 쓸쓸해졌다.보라색 꽃잎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바라본다. 덧없는 청춘이 무더기로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떨어지는 꽃잎에 화사했던 신혼초의 라일락꽃이 겹쳐졌다. 앞마당에 봄이면 진한 향기를 뿜어내던 라일락꽃이 있었다. 아이들이 하나,둘 태어나고 앞마당의 나무그늘아래 평상에서 수박을 먹으면서 까르르대던 아이들 웃음소리가 경자의 귓속에 아직도 뚜렷이 들려온다. 독자로 자라서 그런지 경자의 남편은 아이 욕심이 많았다. 자식을  생기는 대로 많이 낳아서 시끌벅적하게 살고 싶어했다. 남편이 죽을 때 아이들이 딸이 넷,아들이 하나였다. 막내딸이 여섯살이 되었을때 남편은 저 세상으로 떠났다. 쉽게 눈을 감지 못하고 2년이나 병석에서 뼈만 남은 몸으로 안간힘을 쓰다가 눈을 뜬 채 죽었다. 간경화였다. 경자가 39살 되던  봄이었다.   남편이 저 세상을 떠나자  어린 자식들을 어떻게 키울건가 걱정되어 남편의 죽음에 대한 슬픔보다  두려움에 잠이 오지 않았다. 5년뒤에 둘째딸 마저  저 세상으로 보냈다. 영양실조와 폣병이었다. 살릴 수 있는 병이었는데 살리지 못했다. 그 고통은 경자의 가슴을 벌겋게 달군 부젓가락으로 지지는 것처럼 아팠다.




   여자 혼자 몸으로 아이들 다섯을 키운다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그래도 때로 밥을 굶었었다. 배고파 우는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엉엉 운 적도 몇 번 있었다. 억척스럽게  부지런히 일했지만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천금같은 아이들을 잘 먹이지도 못하고 고생시키는 걸 생각하면 남편이 같이 죽자고 할 때 따라 죽지 못한 것이 한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눈망울을 볼때 다시 기운을 차리고 닥치는대로 열심히 일을 했다. 산이라면 넘어주고 물이라면 건너주마. 이런 심정으로 이를  악물고 살았었다. 때로는 큰 물진 강을 건너기도 여러번, 가까스로 강을 건넜다 싶으면 절벽 같은 산이 가로막고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산넘고 물건너 이제 막바지에 다다렀나 싶은 이즈음에 막다른 골목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정녕 몰랐다.아들과 헤어져 산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언젠가부터  며느리는 물어도 대답도 없고 야단을 쳐도 묵묵부답이었다. 아무리 소리를 높이고 얼굴을 붉히며 이야기해도 오불관언 ‘너는 떠들어라’ 였다. 얼굴 표정의 변화도 없이 경자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환장하고 미칠 노릇이었다. 한 집에 살면서 대화없이 지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드는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답답하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아들녀석도 마누라 눈치를 보는지 슬슬 피했다. 먹는 것도 저들끼리 조용히 먹고 슬며시 나가버린다. 주말에는 반드시 애들을 데리고 아침 일찍 외출했다. 동네공원으로 혹은 텐트와 버너등속을 챙겨서 멀리 다녀오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물속 같은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가 쉽지 않다. 운전을 할 줄 모르니 움직이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곳은 모든게 죽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항상 라디오를 켜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뉴스며,노래를 들었다. 세상 어디선가 또 폭탄테러가 일어났고 그에 대처하는 중요한 회의가 날마다 열렸다. 미국 동부에 있는 대학교에서는 한 외로운 청년이 무고한 학생을 32명이나 죽이고 자살했다. 양로원의 한 외로운 할아버지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목매 자살했다고 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식은 늘 어둡고 무거웠다. 누군가 죽고,죽이고, 홍수가 나지 않으면 가뭄이 계속 되어 농작물이  말라 죽는다고 했다. 지진에다 해일이 일어나 수백명이 죽고 다치고 몇 해전엔 한 도시가 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세상 소식을 들은지 수십년이 되지만 밝고 희망적인 소식보다 늘 좋지 않은 일이 세상에서는 많이 일어났다. 그래도 손주녀석들이  무럭 무럭 자라는 것을 보면 가슴이 흐뭇했다.

  창문 아래로 넓은 주차장엔  차들이 두어대 보이고, 그 건너편에는 오래된 아파트건물이 시야를 막고 솟아있다. 아파트 창문들은 이 더위에도 커튼이나 블라인드로 가려져 안을 볼 수 없다. 나뭇잎이 넓은, 이름 모를 나무 세 그루가 삐죽이 서있다. 세찬 햇살이 주차장과 건물위에 무자비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조용하고 삭막한 풍경이었다. 고향의 여름풍경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눈을 감으니 매미소리가 이명처럼 들려온다. 투명하고 화창한 햇볕아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폭죽처럼 터진다.

‘따르-릉’  전화벨 소리에 흠칫 놀라 경자는 얼른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엄마, 나야. 별 일 없지?”

“ 그래 더운데  철이는 잘 크고?”

“ 네 이제 유치원 다녀요.”

딸의 목소리를 들으니 뭔가 하소연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엄마, 무슨 일 있어요?  목소리에 기운이 하나도 없고….”


“지선아, 못 살것다.”

  직장에서 금방 돌아와 몸이 파김치가 되었지만 지선은 어머니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평소에 속마음을 잘 털어놓지 않는 어머니이기에 무슨 큰 일이라도 난 게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보름전에  잠깐 친정에 들렀을 때 어머니의 모습이 부쩍 초췌해 보여 가슴이 아팠었다.

   5남매를 혼자서 키우느라 뼈골이 다 빠졌는데  미국와서도 편히 사시기는 커녕  밤청소에다가 낮에는 봉제공장 뒷일로 온 몸이 쪼그라들었다.  동혁이가 결혼하고 첫 애를 낳은 후 어머니는 봉제일을 그만두셨다. 소셜연금이 나오는데다 손주 키우는 일이 더 중요했기때문이다.

“엄마, 무슨 일인데… 속 끓이지 말고 얘기 해 봐요. 어디 아프세요?”

“ 마이클 애비가  나보고 나가 살란다. 그 놈이..”

“ 뭐라구요?  엄마보고 나가라구....나쁜 놈”

“도데체  왜 그런데요?”

“ 글쎄다. 연금때문인 것도 같고…”

  지선은 할말을 잃었다. 평생 자식밖에 모르는 어머니에게 할 말이 아니었다.

   결혼초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동생에게 어머니는 소셜연금을 그대로 동생 통장에 입금되게 했다. 한푼이라도 살림에 보태서 빨리 자립하라는 뜻이었다. 나중에 형편이 좋아지면 돌려주겠노라는 며느리의 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맏손자가 초등학교 졸업할 즈음부터 경제적으로 형편이 좋아졌다. 아들이 하는 페인트 사업도 주문이 밀리고 며느리도 은행에서 승진하여 돈 걱정은 줄어들었다. 경자는 손주들 생일이나 졸업선물이라도 사려면 며느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기가 뭐했다. 그래서 달포전쯤 며느리에게 소셜연금을 돌려주었으면 어떻겠냐고 넌지시 운을 떼었는데 며느리 얼굴이 샐쭉해지며 한다는 말이 “ 어머니 연금으로 적금도 들구 있구요. 보험비며 상조회비 내고 나면 남는게 별로 없는데요.” 이랬다.

“엄마, 힘들면 나와 같이 살자.”

“그래, 말이라도 고맙구나.”

“혼자 속 썩이지 말고 딸한테도 효도할 기회를 좀 줘”

“ 걱정마라. 철이 애비 아침밥 꼭 먹여서 출근시켜라.”

   이튿날 지선이가 친정에 들렀을 때  어머니는 누워계셨다. 지난번  볼때보다 십년이나 더 늙어보였다. 오이지처럼 찌든 얼굴이며 굽은 등이 바람빠진 풍선모양이었다.  
지난 밤에 한숨도 잠을 못 잔 것 같은 어머니는 이불이 푹 젖도록 고열에 들떠 앓고 있었다. 고열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중에 딸이 찿아왔다. 지선은 화가 났다. 이렇게 아픈 엄마를 두고 그냥 나가버린 동생내외가 미웠다. 그동안 속앓이 하신 걸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아무레도 따로 사시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엄마, 아프면 약이라도 사오라고 전화 좀 하지.”

미련하게 혼자서 끙끙 앓고 있는 노모를 보자 화가 나고 눈물이 났다.


평생을 아이들 뒷바라지 하느라  자신의 몸은 돌 볼 겨를이 없었다. 까칠해진 얼굴피부에다 주름살투성이의 엄마를 바라보노라니 가슴이 칼로 저미는듯 쓰리고 아팠다.  어머니의 일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내 눈시울이 젖고 명치끝이 묵지근해진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해 드릴수 없다. 그저 어머니의 삶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는 수 밖에 없는 자신이 답답했다. 엄마에 대한 기억중에 가장 잊혀지지 않는 것은 새벽어스름에 나지막히  숨죽여 노래 부르던 어머니의 모습이다. 중학교 2학년때지 싶다. 신문배달을 했던 지선은 일찍 일어났었다. 이불을 들치고 일어나려는데 미닫이 창호지에 사람그림자가 비치고 희미하게 무슨 소리가 들렸다.   ‘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오마아는…..”  한쪽 무릎을 세운 자세로 오두마니 앉아서 어머니가 소리죽여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어린 지선의 가슴에 슬픔이란 저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이 뼛속깊이 새겨졌었다. 5남매를 혼자서 키워야했던 어머니의 어깨가 가장 무거웠던 때였다.  폣병으로 오래 앓던 둘째가 죽은 직후였다.

둘째딸 은숙이 폣병에 걸리자 어머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개를 잡고 뱀탕도 끓였다. 어디서 구했는지 굼벵이까지  달여서 먹였다. 그런 음식-약이겠지만-을 만들때 어머니의 표정은 엄숙하고 비장했다.  그럼에도 차도가 없었던 것은  어두운 골방에서 계속 담배를 피워대고 몸을 돌보지 않았기때문인지도 몰랐다.

   은숙이 소생치 못하고 죽었을때 경자는 정말 죽고 싶었다. 죽어가는 딸을 그저 지켜 보고만 있는 자신이 미워서 죽을 지경이었다. 아이를 살릴 수 있는 가망이 사라졌을 때 자신의 무능함에 가슴이 갈갈이 찢겨졌다. 그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식을 지키지 못한 에미의 불행에 분노했고 절망했다. 딸을 화장하고 돌아온 날 경자는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었다. 죄책감에 온종일 몸부림치며 울었다. 오래    억눌러둔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렸다.


  빼빼마르고 핼쓱한 모습으로 죽은그 애를 생각하면 가슴을 바늘로 콕콕 찔리는 듯 아프다. 항상 잔 기침을 하며 캑캑거리고 피를 토하던 딸의 모습이 꿈에 나타나 잠자리를 땀으로 젖게했다. 그래서 한국을 떠났다. 도무지 살 수가 없었다. 남 편과 자식을 연거퍼 잃은 슬픔에다가 애들을 학교에 보내기도 힘들었기때문이다. 미국은 돈 이 없어도 학교에 다닐수 있고 병원에서 쫓겨나지도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남은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했다. 세상물정에 어두운 어머니의 모습은 급격히 헐벗고 초라해졌다. 동교동 이층양옥에서 독산동 지하셋방까지 겨우 일년반이 걸렸을 뿐이다. 아버지 사후 어머니는 항상 허둥지둥하는  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차분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면 어머니는 바로 나무토막처럼  쓰러져 곯아떨어지셨다.

  통장의 잔고가 줄어들자 어머니는 아현시장 한 구석에 국밥집을 차렸었다. 벌지 않고 쓰는 돈이  곶감처럼 금방  줄어든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동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녹슨 쇠파이의자와 낡은 나무탁자 몇개 놓고 시작한 아현시장 골목 안쪽 식당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주로 노동자풍의 배고픈 손님들이 국밥 하나 시켜놓고 밥 좀 더 달라, 국좀 더 달라하면 어머니는 거절 할 줄 몰랐다.지금 기억해보면 어머니는 식당주인이 아니라 배고픈 걸인에게 공짜로 밥을 퍼주는 교회나 저선단체에서 나온 사람같았다. 준비한 음식물은 금방 동이 났지만 남는 돈은 없었다. 한푼 없이 재산을 날려 버린 후 어머니는 이것,저것 궂은 일은 겪은 다음 동네 버스종점근처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셨다.

그 당시 어머니는 배고픈 것도 잘 참았고 아무리 아파도 자리보전하고 눕지 않았다. 약도 사먹지 않으셨다. 몸살이 나서 끙끙 앓으면서도 새벽같이 일어나  도시락을 챙겨놓고 그 와중에  골목까지 깨끗이 쓸어놓고 일하러 나가셨다.  당시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자신보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보람으로 여기셨듯이 어머니는 자신의 몸을 전혀  돌보지 않으셨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자식들 입에 먼저 먹을 것을 넣어주셨다. 그러던 어머니께서 한 번은 화를 내셨다. 하루는 어머니가 입에 뭔가를 먹고 있었다. 둘째가 ‘엄마 ,뭐 먹어?” 물었다. 어머니는 ‘응. 껌 씹는다.’ 하셨다. 잠시 후 동생이 학교에서 돌아와 ‘ 엄마, 뭐 먹어?” 했다.  ‘ 아무것도 아니다. 껌이다.” 하셨다.  사단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세째가  어머니를 보자 또 물었다. ‘엄마 , 머 먹어? 나  좀 줘.’ 하자 드디어 어머니가 불같이 화를 내셨다. ‘이년아 , 껌이다 .껌. ‘하고 껌을 홱 뱉으시더니 등짝을 소리나게 때렸다. 지금은 자매들이  만나면 옛날이야기 하며 얼굴이 새빨갛게되도록  웃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시리다.

살만하게 된 이후에도 어머니는 욕심이 없으셨다. 죽을 날이 가까운데 무슨 새옷이냐,너희들이나 사입어라며 어쩌다가 용돈이라도 드리면 한사코 거절하셨다.해마다 돌아오는 어머니날,  명절, 크리스마스는 물론 생일 선물조차  받으시지 않았다. 처음에는  용돈이나 선물때문에 실랑이을 많이 했지만 차츰 어머니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아예 준비도 안하게 되었다. 받지 않는 어머니가 처음에는 야속하고 가슴이 아팠지만 그것이 나름대로 어머니의 사랑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며느리 신영은 심성이 무던했다. 요즘 여자들에 비해  다소곳하고 착하다고 할 수 있었다.  동혁이가 결혼조건으로 시어머니와 같이 살아야한다는 것을 받아들인 여자였다. 물론 처녀때는 블라우스를 다려 놓지 않았다고 엄마에게 신경질을 내고 조그만 일에도 투정을 하던 여자였다.  내심으로는 썩 달가운 것은 아니었지만  힘들게 사신 시어머니를 거부할 수 없었다. 처음 시어머니를 뵐 때  공연히 가슴이 아팠다. 잘 해드려야지. 속으로 그렇게 생각도 했었다.


신영은 시어머니의 기세에 오랫동안 눌려 살아왔다. 거실의 소파며 탁자의 위치도 마음대로 바꾸지 못했다. 자신의 취향대로 옮겨놓아봤자 퇴근해보면 또 어머니가 이리 저리 배치를 바꾸어버렸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와 싸울 수도 없고 남편만 들볶았다.  먹는 것만해도 그렇다. 피자나 햄버거로 가볍게 한끼 때우고 싶어도 어머니때문에 꼭 찌개며 생선을 구워야했다. 결혼 초기에는 어머니의 식성에 맞춰 한국마켓에서 김치며 생선.두부,콩나물등속을 주말마다  잔뜩 사왔다. 밥과 국, 김치와 나물무침이 없으면 며느리에게 아무렇지도 않은일에 까탈을 부리고 심하게 닥달을 했다. 그래도 신영은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어머니뜻을 따랐다.
그러던 것이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차츰 성가시고 짜증나는 일이 한두가지씩 쌓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요리를  좋아했다. 자식에게는 물론 친척이나 친구들을  불러모아 음식대접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셨다. 동혁이 어린 시절을 기억하면 늘 음식냄새와 함께 사람들의 크게 떠드는 소리, 웃음소리가 귀에 쟁쟁했다. 특히 자식에게 맛난 것을 배불리 먹이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의 생일은 물론이고 명절이며 돌아가신 아버지 제삿날이면 시집간 딸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손수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김치도 직접 담그어서 딸들이 돌아갈때 한 보따리씩  싸주었다. 며느리 신영은 결혼초기에는 묵묵히 어머니를 도와 음식을 만들고 시누들과 어울렸다. 그러나 때마다 찿아오는 어머니의 손님들때문에 집에서 마음놓고 쉴 수가 없었다. 주말마다  세째 시누는  어머니 몸 보신될만한 ‘삼계탕’이며 소갈비를 사들고 찿아왔다. 막내시누는 근처에 살기때문에 무시로 들락거렸다. 시누 가족들이 한바탕 휘젓고  가고 나면 일주일치 먹거리가 동이났다. 언제부터인가 주말이 되면 바깥으로  남편을 꼬드겨 나간 것이 이제는 버릇이 되어버렸다.

  아들 동혁이가 결혼하고 며느리가 들어와 손자가 태어나고 갓난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진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며 키운 것도 경자였다. 처음에는 아들 부부가  어머니집에 들어와 사는 것같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시나브로 아들네에 더부살이 하는 느낌이 들었다. 설겆이며 빨래며 집안청소까지 도맡아 하는 어머니를 처음에는 그러시지 말라고 제가 하겠다고 하던 며느리도 어느덧 그게 버릇이 되어버려 퇴근해 집에 오면 겨우 세수나 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언제부터인가   신영의 짜증과 신경질이 늘어갔다. 어른과 함께 사는 것은 쉬운일은 아니었다. 다소곳이 무릎꿇고 앉아서 시어머니의 말씀을 조용히 들을 며느리가 요즘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해마다 지내는 제사지만 몇 해전부터 신영은 이런 저런 핑계로 친정집에 가버렸다. 시누내외와 조카들이 전부 참석하는 제사는 밤 늦게까지 이어지기 일쑤였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제사에 참석하지 않는 며느리를 질책 한 번 못하셨다. 세상이 변한 것이다.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며느리가 드문 시대이다.봉제사며 봉양소홀 어쩌고 해봐야 콧방귀도 안 뀌는 세상인 것이다. 물론 예외가 있기는 있다. 부모님이  물려줄 재산이 많은 경우는 자식들의 태도가 조금 달라진다는 소문이 무성한 시대이다. 딸들이 기억하는 어머니의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혼자된 어머니가 금고에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며느리며 딸네들이 어머니방에 들어가면 어머니는 황급히 금고문을 잠가버린다.  자식들은 어머니를 정성껏 모셨다. 이윽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금고문을 열었것다. 그 속엔 돈다발  모양의 신문지가 가득 들어있었다고 한다.

친정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신영은 짜증섞인 투정을 했다.

“여보,어머니때문에 식욕도 떨어지고 생머리가 지끈거려 살 수 없어요.”

동혁은 그녀의 엄살이 지나치다고 생각했지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며칠전 처제가 집으로 찿아왔었다고 했다. 그런데 처제의 옷차림이 좀 요란했던 모양이다. 어깻죽지가 훤히 보이는 얇은 웃옷에다가 요즘  유행하는 골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처제가 거실바닥에 떨어진 뭔가를 줍고 있을때 마침 부엌에서 나오던 어머니가 처제의 모습을 보고 기겁을 하셨다.

“아니, 사돈처녀 어찌 옷을 반만 입고 다니나?”

골반에 걸치게  된 바지때문에 쪼그리고 앉을때 엉덩이가  훤히 보였던 모양이다. 앞가슴도 반이상 그대로 노출되었으리라.

“어머니.요즘 젊은 여자들 옷차림이 다 그래요. 세상이 변했어요.”

   어머니는 혀를 차며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처제는 다시는 언니집에 안 온다고 화를 내며 가버렸다고 한다. 친정식구들이 어머니때문에 불편해서 찿아오지 않고 친구들도 비슷한 이유로 방문을 거북해했다. 구식어머니의 비위을 맞추기도 힘들뿐더러 일일이 설명하기도 힘들었다.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하자 신영이도  시어머니가 점점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고부사이가 결정적으로 틀어지게 된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지난  봄,고생끝에 겨우 아담한 집을 구입하게 되었다. 온 가족이 뛸 듯이 기뻐했었다. 어머니도 환하게 웃으시며 대견해 하셨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집이 좋다고 자랑하셨다. 그런데  아내의 여름휴가를 이용하여 오랫동안 별렀던 여행을 다녀와서 집에 들어선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뒷뜰의 파란 잔디가 채소밭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저렇게 넓은 땅을 그냥 놀려두면 죄 받는다며 한사코 양보하지 않으셨다. 그 해 여름 어머니는 식탁에 풋고추며 상추를 부지런히 올렸지만 아이들과 아내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신영의 두통이  날이 갈수록 심해졌을뿐이다..

동혁이 신영에게 ‘우리도 언젠가는  늙는다’며 어머니가 무슨 낙으로 사시겠냐, 조금만 참고 살자고 다독였지만 토라진 아내를 설득하기 힘들었다.

젊어서 혼자 되신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하셨는가를 잘 알지만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누구편을 들어야할지 난감했다. 날마다  아내의  밝지 못한 표정을 견뎌야 하는 것이 고역이었다. 그렇다고 어머니를 내칠 수도  없지않은가, 동혁은 저녁이 되었지만 집에 돌아가기 싫었다.  공연히 친구를 불러내어  좋아하지도 않는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가기도 했다. 아내에게   조용히 타일러도 보고 애원도 했지만  그녀의 냉냉한 마음을 돌이키기 어려웠다. 오히려 이렇게 살 바에야 헤어지자고 했다. 혼자서 어머니 잘 모시고  살라고도 했다. 화가 났지만 아내를 무조건 비난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홀어머니에게  이제 와서 나가 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러던 중 며칠 전 어머니는 연금을 돌려 달라고 했다.   설왕설래중 불쑥  못 할 말을 내뱉고 말았다. 이틑날   어머니는 아침밥도 차려 놓지 않고 방에서 꼼짝을 안 하신 것을 보면 충격이 심했던 모양이다.

어릴 적 동혁이는 어디를 가든 엄마 뒤를 졸졸 따라 다녔다. 아현시장 골목에서 국밥집을 할 때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펄펄 끓는 국물이 엎어져 허벅지에 화상를 입기도 했다. 정신없이  동혁을 업고 병원으로 달리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콧날이 시큰했다. 당신 본인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사지 않고 오직 5남매를 키우시느라 펄펄 뛰던 어머니 였다.

밤늦게까지 주무시지 못하고 뒤척이는 어머니의 심정이 얼마나 편치 않을까 가슴이 쓰렸지만  ‘어머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걱정마세요.제가  끝까지 모실께요.’ 라고 말할 수  없는 자신이 싫었다. 아내와 사이가 나빠지더라도 어머니에게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동혁은 답답했다. 퇴근후에  어머니방에 들어갔지만 어머니는 쳐다보시지도 않았다. 몹시 섭섭하신 모양이다.

    그 사이 연금때문에 속을 끓이는 어머니소식을 들은 샌디에고에 사는 큰 딸이 보다못해 올케를 찿아갔다.
  
   “ 영호엄마, 연금 어머니에게 돌려주지,그래.”
  
“ 네,저도  그럴 참이에요. 그런데 당장은 힘들어요. 적금이며 보험을 그 돈으로 들고 있거든요.”
  
“ 그거 해약하고 어머니에게 드려.시어머니  모시고 사는 것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그러나 사실 영호에미에게 도움이 되면 됐지 손해본게  없잖아,손주 셋을 노인네가 허리 휘어지게 키우셨잖나, 이제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시겠니. 용돈은 못 드릴지언정 나라에서 주는 연금을 자식이 가로채서야
쓰겠니?”


     언성이 높아지고 티격태격한 끝에 간신히 연금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싸늘해진 집안 분위기가  더욱 냉기가 깊어졌다.  

   경자의 성격은  단순했다. 즉 직선적이며 분명한 성격이었다.  물론 복잡한 면이  없는 건 아니었다. 때로 신경질적이며 섬세한 면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대체로 단순,명쾌한 편이었다.천성적으로 낙천적이며 농을 좋아하고 어찌보면 조금은 경박하고 유쾌명랑한 성격이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떠들썩하게 이야기하고 크게 웃으셨다. 그러던 분이 사흘너머  말한 마디 안 하시고 끙끙 앓으셨다. 집안 공기가  서릿발같이 싸늘해졌다.



    일주일후 경자는 다시 공원으로 나갔다.  김노인이 먼 발치로 보였다. 그는 경자의 근황이 궁금해 매일이다시피 공원에  나와 기다렸나보다. 경자를 보자 발걸음이 급해졌다.

젊고 발랄한 여자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은 손에 풍선을 들고 뛰어다녔다. 한무리의 어린아이들이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까르르’ 하얀이를 내보이며 웃었다. 웃음의 파도가  숲을 너머 멀리로 사라졌다. 남편인듯한 남정네들은 고기를 굽고 있었다. 경자는 그 모습을 그리운 듯 한참 쳐다보았다.

“ 몸은 어떠시우?”
“ 열은  좀 내렸는데 아직  어지럽내요.”
“더 쉬시지 않구..”

다람쥐 한 마리가 오솔길을 달려갔다. 꼬리가 크고 털이 아름다웠다. 경자는 공원에서 주인없는 개를 돌보거나 다람쥐에게 땅콩을 주었다. 개나 고양이나 다람쥐나 도통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았다.

경자는 며칠 동안 앓으면서 지난 세월을 생각해보았다. 고달픈 생이었지만 아이들 덕분에 외롭지 않게 지내온 것을 감사했다. 잘 먹이고 입히지 못한 자식들이 성장하여 제 앞가림을 하고 사는 것을 보니 가슴이 뿌듯했다. 한편 섭섭하기도 했다. 이제 저마다 제 앞가림을 하고 살게 되자 어머니는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같아서 씁쓸했다. 이제 40이 넘은 아들을 보내야할 것 같았다. 너무 오래 품안에 두었다. 처자식과 오손도손  사는 것만해도 효도지 꼭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애써 스스로 위로했다. 자식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 이제 아들집에서 나와야 겠어요.”
“그래요?  나도 조만간  노인아파트에 나가 살 계획이요.”
“왜요? 아들 부부가 그리 잘 한다면서요?”
“잘 하긴요? 그저 아직 통장에  돈이 좀 있으니…”

  김노인은 퇴직금에다 서울의 단독주택을 판 돈이 고스란히 은행에 입금되어 있었다. 물론 생활비조로 얼마를 내놓지만 아직 목돈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했다.
며느리와 아들이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를 빠뜨리지 않고 때마다 ‘뭐, 드시고 싶은거 없으세요?” 라고 간살을 떨지만 언제 태도가 바뀔지   모른다고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에이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요.”

유식한 김노인의 말이 아니더라도 세상이 많이 변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진실한 인간관계가 붕괴된 시대라구 한다. 사랑도 우정도 모두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비분강개하는 김노인이 안타까웠다. 폐기처분되는 것이 깡통뿐만은 아닌 듯했다.  

공원 저 편에서 날렵하게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가까이 오는 것을 보니 바퀴달린 스케이트를 탄 젊은 여자였다. 탄탄한 다리가 구리빛으로 빛나고  경쾌하게 미끄러져 오는 모습을 보니 ‘아름답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다시 한 번 산다면  경자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느낌이 가슴을 스쳐 지나갔다.

경자는 소중한 것을 재생하고 싶은 듯 깡통을 하나  주어 봉지에 넣었다. 하늘은 더할 수 없이 청명했다.    

10-28-2007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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