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의 시세계

2010.05.08 13:28

백남규 조회 수:859 추천:105

                             이상화의 시세계
                                     -‘나의 침실로’를 중심으로-

                                                                   백남규

1.들어가며

    여자만 보면 까닭없이 얼굴이 붉어지는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 때에 읽었던 시 중의 하나가 ‘나의 침실로’였다. 오지 않는 님을 기다리는 애절한 심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시절(1960년대)의  한국사회는 남자가 감정을 표현하는데 자유롭지 못했다. 남자도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인데도“사내대장부가 무섭기는..” 이라고 핀잔을 주거나 야단을 맞었다. 사춘기가 되어 이성에게 관심을 가지는 게 당연한데도 ‘사내대장부가 여자꽁무니를 따라다니면  쓰나.’ 면서 겨우 싹트는 연애감정을 억압했다.  이런 때 우연히 만난  ‘나의 침실로’ 는 가히 혁명적 내용을 담은 시였다. 남자가 여자를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훌륭한 시로 칭찬받고 있었다.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는 20년대 한국시의 수준을 한 층 더 높인 수작임은 부인할 사람이 없다. 그 점은 이 시가 갖는 수사(修辭)나 구성 혹은 정신이나 내용 면에서 확인된다. 우리의 현대 시사에서 이미 고전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는 이  시는 많은 비평가들에 의해서 그 의미와 구조가 해명되어 왔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2.나의 침실로 작품 분석.

   1920년대 대표적인 시 중의 하나인 ‘나의 침실로’ 는 이상화 시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시이다.

우선 전문을 읽어보자.
  
               -가장 아름답고 오랜 것은 오직 꿈속에만 있어라.-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야 돌아가려는도다.
아,너도 먼동이 트기전으로 수밀도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히도록 달려오너라.

마돈나, 오려므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하던 진주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댄지도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마돈나,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나는 떨며 두려워 기다리노라.
아,어느덧 첫 닭이 울고 뭇개가 짖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마돈나, 지난 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둔 침실로 가자. 침실로!
낡은 달은 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욱 소리 오 너의 것이냐?

마돈나, 짧은 심지 더우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 하는 내 맘의 촛불을 보라.
양털같은 바람결에도 질식이 되며, 얄푸른 연기로 꺼지려는도다.

마돈나 오너라 가자. 앞산 그리메가 독가비처럼 발도 없이 곧 가까이 오도다.
아, 행여나 누가 볼는지 가슴이 뛰누나,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마돈나,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 있는  내 침실 열 이도 없으니!
아, 바람이 불도다. 그와 같이 가볍게 오려므나, 나의 아씨여 네가 오느냐?

마돈나, 가엾어라, 나는 미치고 말았는가, 없는 소리를 내 귀가 들음은
내 몸에 피란 피 가슴의 샘이 말라 버린듯 마음과 목이 타려는도다.

마돈나,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 갈테면 우리가 가자 끄을려 가지 말고!
너는 내 말을 믿는 마리아, 내 침실이 부활의 동굴임을 네야 알련만...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얽는 꿈, 사람이 안고 궁구는 목숨의꿈이 다르지 않으니
아, 어린애의 가슴처럼 세월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마돈나, 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하고, 어둔 밤물결도 자자지려는도다.
아, 안개가 사라지기전으로 네가 와야지,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나의 침실로- 백조.1923.9


  제사로 ‘가장아름답고 오―랜 것은 오직 꿈속에만 있어라’는 글이 붙어 있다. 이 시에서 이상화는 아름답고 영원한 나라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다. 제사가 의미하는 것처럼 이 시는 아름답고 영원한 것은 꿈 속에만 있다는 꿈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보여주는 낭만주의 계열의 시이다.   1연에서 시인은 마돈나라고 지칭되는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기다림을 표현하고 있다. 마돈나는 이태리어로 성모 마리아를 뜻하는 단어지만 1920년대의 연애편지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되곤 했다. 그것은 상대방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고 또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의 뜻이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나를 구원해줄 구원의 여인이라는 뜻에서 마돈나라는 단어가 유행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시간적으로 밤도 기울어 새벽이 가까운 시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려는도다라는 첫행에서 목거지는 모꼬지의 대구방언으로 해석되어  잔치마당으로 해석되고 있다.먼동이 트기전에 수밀도의 젖가슴에 땀이 나도록 달려 오라고 호소하고 있다.
   2연은 마돈나의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눈으로 유전하던 진주’의 비유적 의미는‘눈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자의 눈물을 강요하는 제도와 관습과 규범을 버리고 몸만 오너라.  갑오경장이래 서구사상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시절에 유학생중심으로 자유연애에 눈뜨기 시작했으나 사회전체분위기는 아직 조선조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보통사람으로서는  제도와 관습과 규범을 쉽게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시의 화자는 상대방 여자인 마돈나에게 어려운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밝음이 오면 어댄지 모르게 숨는 두별이러라에서 마돈나와의 사랑은 밝음 속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만 가능한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3연에서 "구석지고도어둔마음의거리에서, 나는 떨며 두려워하며 기다리노라" 에서 우리는 이 시의 사랑이 떳떳한 사랑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사랑임을 알 수 있다. 두번째 행의 첫닭과 뭇개는 곧 날이 밝아온다는 시간적 상황을 보여주며 사랑하는 대상에게 그것을 주지시키고 빨리올것을 촉구하고 있다.
4연은 1, 2, 3연에서 기다림의 목적이 침실로 가는 데 있음이 드러난다. 2행은 낡은 달이 빠지려는 시간적 상황을 보여주면서 발자국 소리를 환청으로 듣고 있음으로 해서 님에 대한 그리움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  
5연은 촛불과 마음이 비유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초저녁부터 켜놓은 다 타버린 촛불은 화자의 애타는 심정을 드러내주며 "눈물도 업시하소연하는"이 보여주듯 간절한 기다림을 보여준다. 기다림에 지쳐 이제는 양털같은 바람에도 소멸되어 꺼지려는 촛불은 화자 자신을 의미한다.  
6연에서 시간적 상황은 더욱 긴박하게 제시되며 1행과 2행이 도치되어 있다. 더욱 아침이 다가와 앞산 그림자가 도깨비처럼 다가와 자신의 존재를 삼켜버릴 것 같은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그러나 가슴이 뛴다는 것은 설레인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설레인다는 것은 생명을 느낀다는 것이다. 떨리고 설레이는 순간의 인간이 나무라면 아마도 깊은 뿌리까지 떨렸을 것이다. 전신의 세포가 일어나 떨리는 이러한 만남은 육체만의 만남이 아니다.  
7연에서 사원의 쇠북은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면서 밤의 소멸과 낮의 시작을 가리켜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쇠북은 사원의 쇠북이기 때문에 윤리적 금기를 포함한다. 사원의 쇠북은 우리의 사랑을 비웃는 것으로 되어 있다.사원의 쇠북이 상징하는 내용은 윤리,계율이 지배하는 시간일것이다. 그것을 어겨야하기 때문에 두려움과 뉘우침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전에 낮이 오면 사라지는 밤과 같이 영원의 나라로 가자고 한다.  
8연에서 침실은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 다리 건너 있다고 말한다. 뉘우침과 두려움은 낮의 산물이다. 그 건너에 있는 침실은 누가 열 사람도 없는 비밀스럽고 안전한 장소로 되어 있다.
  9연에서 기다림에 지친 자신의 심정을 표출하고 있다. 환청을 들을 정도로, 피가 마르고 목이 탈 정도로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10연 침실은 언젠들 안갈 수 없는 곳이지만 대부분 끌려가는 곳이고 따라서 스스로 가자고 주장한다. 그것은 스스로 가는 침실은 부활의 동굴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스스로 찾아가는 침실이 부활의 동굴이라는 것은 상대방도 익히 알고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정이 있음을 암시해준다.
11연의 첫행은 꿈의 종류를 열거하면서 그런 꿈들이 모두 같다고 말한다. 즉 밤에 우리가 잠 속에서 꾸는 꿈이나 우리가 갖는 미래에 대한 꿈, 그리고 사람이 안고 궁그는 사랑의 꿈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니 우리 아름답고 영원한 그 꿈의 세계로 가기 위해 침실로 가자고 주장한다.
  12연은 간절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오지 않는 님에 대한 그리움과 절망감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시간은 밤과 낮으로 구분되고 있다. 밤 시간은 두 사람의 사랑이 빛날 수 있는 공간이지만 낮은 두 사람의 존재를 위협하는 윤리적 시간으로 설정되고 있다. 따라서 두 사람의 존재는 "밝음이 오면, 어댄지 모르게 숨는 두별", 얄푸른 연기에도 질식되어 꺼지려 하는 "촛불"로 설정되어 있다.새벽이 오는 공포감은 앞산 그르매가 독갑이처럼, 사원의 쇠북 등으로 표현된다.  침실의 의미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침실은 꿈을 꿀 수 있는 장소이다. 더구나 이 시에서 남녀간에 궁그는 사랑의 꿈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의 삶과 다른 새로운 부활의 삶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3. 마돈나, 침실, 눈으로 유전하던 진주.

  각연 2행으로 된 전 12연의 이 시의 표면적인 의미는 간단하다. 사랑하는 애인인 마돈나에게 침실로 오라고 간절히 호소하는 내용이다. 마돈나와의 결합을 강렬하게 원하고 있음은 ‘몸만 오너라’, ‘내 손이 내 목을 안아라.’라는 구절에서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는 단순한 연애시가 아니다.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 다리 건너에 있는 침실’,‘ 내 침실이 부활의 동굴임을 네야 알련만’에서 이 시에서 전개되는 사랑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님을 짐작 할 수 있겠다.

문학은 이야기이다. 아니 삶 전체가 이야기일  뿐이다. 이 시의 내용은  남녀간의 사랑이야기이다.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이 시에서는 ‘눈으로 유전하던 진주’로 나타나고 있다. 그것을 버려야 사랑을 완성할 수 있는데 화자가 사랑하는 마돈나는 그것을 끝내 버리지 못한 듯하다.
이 시의 핵심은 ‘침실’의 이미지에 있다. 시적 자아가 그토록 애타게 부르는 ‘마돈나’가 무엇을 나타내는가도 중요한 문제다. 시어의 해석이 어려운 것은 일상어와 달리 시어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에 쓰이는 단어 전부가 비유나 상징어로 쓰인 것은 아니다.그러므로 먼저 축어적 의미로 사용된 시어와 비유적의미로 사용된 시어를 구별해야한다. 일차적으로는 사전적의미에 충실하게 해석한 후. 축어적으로 해석을 하면 해석이 잘 안되는 부분은 비유적, 상징적으로 해석해야할 것이다. 이 시에서 사전적 의미로는 해석이 잘 안되는 단어가 ‘마돈나’, ‘침실’, ‘눈으로 유전하던 진주’ 등이다.

먼저 ‘마돈나’의 사전적인 뜻은 성모 마리아를 뜻하는 이태리말이다. 지금까지 이 시는 상당히 애국적이고 민족적인 시로 이해되어졌다. 따라서‘마돈나’는 구원의 여인상으로 조국을 상징하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것은 지나치게 소박한 해석이고 식민지시대에 씌어졌다는 것만으로 모든 시가 조국광복을 주제로 쓰인 것은 아니다. 이 시에서는 당시(1920년대)에 자유연애에 눈을뜬 신여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면 무리가 없을 듯하다. 당시 유행한 연애편지에 상대여인을 지칭하는 말로 ‘이브’나 ‘마돈나’가 상투적으로 쓰였다고 한다. (연애의 시대.권보드래,현실문화연구.2003) 시인의 전기와 관련해 보면 유보화라는 유학생일 가능성이 크다.(김용직,상화와 에로스.전형기의 한국문예비평,열화당,p278,백기만,상화와 고월.p150) 장안 3대 미남에 상화가 꼽힐 정도였고 매너 좋은 신사로 정평이 나 있는데다 문학적 재능과 지성까지 갖추었으니 미인들이 주위에 운집했다고 김팔봉이 평했다. 연시 ‘이별을 하느니’의 여인인 ‘너’의 실제인물도 유보화라고 한다.

‘침실’은 이 시에서 ‘아름답고 오랜 나라’이며,‘부활의 동굴’이며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곳’이기도 하다. 침실은 글자 그대로 잠자는 곳이지만 마돈나가 오면 그 곳은 아름다운 장소로 바뀌고 즐겁고 유쾌한 장소가 되며 아주 새사람으로 태어나는 곳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하는 곳은 무릉도원이고 천국이며 낙원이라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그러나 마돈나가 침실로 오려면 건너야할 외나무다리가 있다. 뉘우침과 두려움이라는 장애물을 건너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눈으로 유전하던 진주’  진주의 비유적 의미는 ‘눈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자의 눈물을 강요하는 제도와 관습과 규범을 버리고 몸만 오너라. 갑오경장 이래 서구사상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시절에 유학생중심으로 자유연애에 눈뜨기 시작했으나 사회전체분위기는 아직 조선조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보통사람으로서는  제도와 관습과 규범을 쉽게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의 화자는 상대방 여자인 마돈나에게 어려운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당시 결혼풍속은 중매결혼이었다. 청춘남녀들이 자유로운 교제가 허용되지 않았다. 부모가 맺어준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상례였다. 저희들끼리 아무리 사랑해도 소용없었다. 견고한 인습 때문에 한을 품고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 대표적인예가 사의 예찬의 주인공인 윤심덕과 김우진이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느낌, 가슴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태어난 이후 생각을 교육받는다. 생각이란 사회가 인간에게 부여한 것이다.  아이는 자라면서 꾸중과 비난을 받으며 자란다. 어떤 규범과 가치관에 맞게 행동하도록 교육, 훈련받으며 자란다. 다른 말로 하면 길들여지는 것이다. 강요받는다. 가족 특히 부모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강요당한다. 자연스러운 느낌은 억압당하고  부모,혹은 사회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된다.  진실을 느끼는 순간 사회는  그대에게 반기를 들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본래의 모습을 숨기고 점잖은 척 살 수 밖에 없다.     마돈나는 낯익은 가족이나 동네사람들에게 견디기 힘든 손가락질을 받았을 수 도 있고 수근대는 비난을 극복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상화시인도 당시 풍습대로  고향에서 백부의 엄명으로 18세의 절세가인 서온순양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러나 왠지 아름다운 마돈나의 침실은 아니었다고 한다. ( 이성교.이상화의 시세계.  p143. 현대시학 41호).

4.낮과 밤의 대립구조

  이 시에 나오는 두 남녀는 낮에는 만날 수 없다. 남이 보지 않는 밤에만 만나야한다. 이 시는 1연에서 12연까지 새벽이 오기 전에 마돈나가 와야 한다고 화자가 초조해 하고 있다. 환한 낮이 되면 만사 끝장이기 때문이다. 먼동이 트기 전에, 첫 닭이 울기 전에, 안개가 사라지기 전까지 와야 한다고 격정적으로 호소하고 있다. 마돈나가 침실이 부활의 동굴임을 알지만 오지 못하는 사정을 짐작할 수 있는 구절은 ‘눈으로 유전하던 진주’이다. 대대로 눈물을 강요하던 인습-혼인 풍속,부모가 짝지어 준 사람과 결혼해야했던 풍습이 지배하는 시간이 낮시간이라면 새로운 풍습인 자유연애를 할 수 있는 시간은 밤이다. 밤이라야  수밀도의 가슴을 가진 애인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낮에는 사원의 쇠북이 쩡쩡 울리기 때문에 두렵고 떨리는 것이다. 낮시간은 구습이 지배하는 시간이고 모던보이와 신여성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간인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가야할 곳이기에 끌려가지 말고 자진해서 가자고 화자는 회유, 호소하고 있다.





5.열정으로서의 사랑
.
1920년대초 자유연애라는 최신 유행병은 많은 이들을 들뜨게 했고 몽상가로 만들었고 또 삐딱하게 만들었다. 연애라는 것이 기존의 가치체계와 윤리규범에 균열을 내고 틈을 만드는 ‘전복적’역할을 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행이 열병처럼 퍼져서 떠들썩한 연애사건이후 이혼을 당하고 떠돌이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한 나혜석의 경우는 그 하나의 사례이다.


열정으로서의 사랑은 인류의 보편적인 감정이다. 인간이 살았던 모든 시대와 공간속에 그 혼적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낭만적인 연애는 근대의 산물이다. 남녀의 새로운 만남의 방식이었다.
한 번이라도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사랑만큼 우리의 존재를 뿌리부터 흔들어 놓는 사건은 없다. 그리고 사랑만큼 기존의 질서를 전복시키는 에너지도 없다. 가슴을 뒤흔드는 북소리에 사원의 쇠북소리는 들리지도 않는 법이다. 1920년대를 연애의 시대라고 이름지을 만큼 (권보드래) 당시 신문물을 접한 젊은이들의 자유연애에 대한 열망은 대단했다. 아마도 결혼 상대를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데에 열광했던 것같다. 평생의 동반자를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가히 혁명적인 변화였다. 이 시는 당대 식민지 현실이라는 정치적 상황보다는 자유연애라는 신풍속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6.나가며

  해석의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시이다. 사전적,일상적 의미가 아닌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시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시는 해석이 모호한 부분이 많은데 시의 비유적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입장에 따라 많은 편차를 보이고 있다. 수밀도의 가슴을 가진 젊은 여인과의 열정적인 사랑을 갈구하는 화자의 뜨거운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을 보면 남녀의 사랑은 시대를 초월하는 주제임에 틀림없다. 어느 시대나 인간의 자유을 억압하지 않는 시대는 없을 것이다. 제도와 풍속과 온갖 규율의 억압을 벗어버리고 관능적 도취의 세계로 도피 혹은 초월을 꿈꾸는 것-인간 내면에는 이런 것이 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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