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 문고리

2023.01.31 13:29

조형숙 조회 수:25

"여보 남을 돕고 사는 것이  참 좋구려" 

아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웃기만 했다. 곱게 쪽진 머리에 꽂은 은비녀는 은근히 화려했다.  저고리의 동정은 백옥같이 희었다. 늘 깔끔했다.    
선비는 미소를 잃지 않고 다소곳한 아내가 늘 편안하고 좋았다. 아내는 남편이 든든해서 좋았다.  
 
대문은 바깥 경계에 있었다. 대문에 달려있는 청동의 문고리는 언제 만들어 달아놓았던 것일까.  문의 *배목은 아주 깊이 강하게 박혀 있어 제 책임을 다 하고 있다. 
사람의 손이 가장 많이 닿는 문고리는 닳은 흔적도 없이 여전했으나, 밑으로 둥글게 패인 나무는 긴 세월을 부르고 있다. 문고리가 달린 아래 쪽의 나무가  움푹 파인 것으로 보아 많은 사람들이 들고 났으리라 짐작이 된다. 
사람 좋은 곳에 사람이 모인다 했다. 관대하고 시비를 가리지 않는 황희정승을 닮은 선비가 살고 있을까? 너그럽고 후하게 사람을 대하고 불화와 갈등을 원만히 풀어주는 중재의 귀인이 살고 계실까? 
그 안채에는 어떤 부인이 살고 있을까?  마을 사람들은 늘 궁금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진 선비와 단아한 아내가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도 찾아왔다. 아내는 찾아오는 사람에게 작은 상을 차려 일일이 대접했다.  선비는 사람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상담해 주었고 필요한 일들을 지혜롭게 해결해 주었다.
문패도 없는 대문은 매일 두드려졌다.  사람들은 신문고를 두드리듯이 선비의 집 대문을 두드렸고 둥근 문고리를 찍어댔다. 문고리 밑의 나무는 조금씩 깊게 패여가고 사람들은 환한 얼굴로 돌아갔다. 
 
탁 트인 마당에 옆집과의 경계를 친 돌담이 있다. 담 안쪽에 튼실한 감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 담장 양 옆으로 뻗은 가지에는 주홍감이 주렁주렁 달렸다.
가을이면 언제나 풍성풍성 감이 열렸다. 이웃과 함께 나누는 열매의 맛은 더 달았다. 
사드락 사드락 감나무 꽃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밤이면 환한 달빛이 더 고왔다. 
"반가워요 달님."  "그래요 꽃님." 
선비는  감나무 밑에 눈처럼 내리는  하얀 꽃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아내에게 걸어 주었다.
 
세월을 따라 조금은 기울어진 문틈으로 볕이 들어와 마당으로 스민다. 스며드는 햇살은 밝고 따스했다. 
대문 안의 빗장을 열면 안쪽 벽에 많은 것이 걸려있다. 가마니와 온갖 농기구, 비료 포대, 쭉정이를 고르는 키도 걸렸다. 조금 안쪽에는 마늘과 시레기도 얌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여름 한껏 향기를 뽐내던 장미도 다발로 엮어 걸었다. 대문 안 생활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인다. 멀리 대청마루 안쪽 벽에는 긴 족자와 액자들이 서로 바라보고 걸려 있다.  
 
마을 중앙에 있는 선비의 집은 넓었다. 
처음 시집왔을때는 넓기만 했던 이집에 사람들이 드나들며 대화를 하고 소통을 하니 아내는 너무 좋았다. 다른 집은 대문의 위, 아래, 중간에 무늬있는 작은 쇠붙이를 달아 모양을 냈으나 선비는 그 것도 아꼈다. 
어느 집은좋은 주물이 아니어도 사자의 모양이나  국화꽃 모양의 주물을 대문에 장식했다. 선비는 그것도 필요없었다. 손잡이만 튼튼하면 되었다. 부귀와 안녕이 가득한 단아한 대문이면 되었다. 어려운 이들과 소통만 되면 되었다 
 
"마님! 양순네가 지금 막 사내 아이를 낳았대요." "그랬구나. 쌀과 미역과 고기를 잘 챙겨서 가져다 주거라." 
 
 
옛날 집의 문고리 사진을 보고 쓴 글이다
참고로 현재  북촌 한옥마을에 있는 문고리 밑에는 동그란 쇠붙이가 달려있다. 문이 패이지 않게 하는 역할이다. 
문고리의 구조는 고리와 사슬 *배목으로 구성된다. 낙랑시대의 유적에서도 청동으로 만든 문고리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청동문고리는 그 이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배목 : 고리와 겹쳐서 걸기 위해 다른 쪽에 박아 넣을 수 있게 만든 쇠붙이

댓글 3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5 페어 헤이븐 언덕 (Fair Haven Hill) 조형숙 2023.02.01 14
» 청동 문고리 [3] 조형숙 2023.01.31 25
73 송솔나무 조형숙 2023.01.06 25
72 작은 밤의 노래 [3] 조형숙 2023.01.03 33
71 크리스 조형숙 2022.12.04 8
70 만약에 조형숙 2022.11.18 14
69 용서 받고 싶은 사람에게 [1] 조형숙 2022.11.07 47
68 로살리토 조형숙 2022.07.31 40
67 유월의 스케이트 조형숙 2022.07.31 48
66 상징 조형숙 2022.07.09 51
65 6월이 왔다 조형숙 2022.06.16 52
64 청춘 [3] 조형숙 2022.06.09 56
63 패캐지 조형숙 2022.03.30 43
62 시옷 [1] 조형숙 2022.03.24 55
61 달 밤 조형숙 2022.02.25 59
60 어른 친구 [2] 조형숙 2022.02.19 25
59 튜닝 조형숙 2022.01.22 19
58 정전 [2] 조형숙 2021.10.21 69
57 호랑나비야 날아봐 조형숙 2021.10.01 78
56 기분 좋은 불합격 조형숙 2021.10.01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