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2023.02.01 13:14

조형숙 조회 수:12

이제는 잊어야 한다  너를 보내야 한다
이렇게 나약한 나를 본다면 네 마음이 더 아플테니 
 너의 행복을 위해서 밝은 곳으로 나가기로 했다 
 
 비닐 하우스 안의 미지근한 공기  
습하고 시린 비닐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바람과 비에 펄럭이는 비닐벽 
가슴떨던 그 초침들    
 
흰 국화 노란국화 사이에 멍하니 있는 나는 영정 사진속의 망자였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어정쩡하게 일그러진 표정
길게 헝클어진 머리카락 쾡한 눈망울 
멋대로 자라난 수염 두뺨에 깊이 파인 볼 우물
그렇게 몇달을 살았다
 
내가 보석을 친구에게 빼앗긴 그 새벽 
한밤을 꼴딱 삼킨 시간속의 긴장 욕심 원망 기대 
새벽별이 손을 흔들때까지  나와 함께 해야 그사람이 행복할거야 다투던 날 
 
 기찻길 양 옆으로 토마토  고추나무 나란히 붉고  파란 열매를 자랑하고 있다
희고 붉은 자갈이 가득 쌓여있는 사이로 뻗은 
선로는 녹이 슬었고  기차바퀴와 부딛느라 반질반질 윤이 났다
 
날갯짓 하는 나비를 따라 터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조금 있으면 다음 기차가 기적을 울리며 달려올 것이다  
터널의 길이를 가늠할 수 없다  
어둠이  깊어지면 더 오래 안에 있어야 할까 두려웠다
출구를 향해 허우적거린다  싸늘한 공기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다시 일어섰다
끝이 있을 것이다 
멀리 보이는던 산봉우리가 가까이서 손짓하고 빛이 내게로  다가왔다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폈다
 
나비가 저멀리로 날아간다 
 
 
* "한 남자가 어두운 터널 속에서 밝은 빛을 향해 나가는 사진을 보고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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