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진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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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네모난 창/전희진

2023.02.07 18:38

전희진 조회 수:32

 

네모난

 

 

 문 앞에 네모난 상자가 배달되었다  텅 빈 상자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네모난 상자를 뒤집어 썼다

네모난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았다  그 상자는 불안하게 들썩거렸다  마치 뱀이 가득 든 상자처럼 내가

가만히 있어도 창 밖의 풍경은 쉬지 않고 바뀌었다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는 사물과 사람들 틈에서 끝까지 펼쳐진 

창의 내륙을 따라 마치 짐칸의 수화물처럼 나는 어딘가로 떠나고 있었다 

 

유리같은 마음이 안정적이지 못해서 언젠가는 주인에게 닿겠지 윗니와 아랫니가 잘게 부딪쳐 허공이 미세하게

떨렸다  옥수수 옥수수 옥수수밭이 풀려나고 옥수수 옥수수 옥수수 끝도 없는 옥수수밭 그때 수평으로 길게

네모난 틈으로 암말의 대퇴부같이 부드러운 산의 능선이 보였고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한 계집아이가 그녀의 앙증맞은 작은 손을 끄집어내어 나를 향해 흔들었다  손뼉을 치며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새삼 내가 중요한 것들을 두고 왔다는 것을 꺠달았다  누군가를 기쁘게 해줄 언어와 노래는 내가 살아 있다는 유일한 증거

 

눈이 왔다  붉은 벽돌집에 붉은색이 보이지 않게 함박눈이 많이도 내렸다  네모난 창에는 크리스마스트리의 알록달록

불빛이 깜빡였다 추위에 떠돌던 나의 어꺠를 잡아 주는 손길, 주인의 따스한 체온이 느껴졌다  나는 더이상 밀려가는 낯선 풍경 속에 밀려가지 않았다  나의 옆에는 눈이 크고 눈썹이 안정적으로 두터운 나의 반려가 있었고 그녀의 긴 목덜미가 내 귀를 자꾸 간지럽혔다 

먼데서 삼나무 숲 삼나무들이 눈을 터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