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트리

2023.05.05 21:56

조형숙 조회 수:14

미국에 처음 왔을 때 경이롭게 나의 시선을 끌었던 나무가 있다. 바로 팜 트리다. 차를 타고 바닷가를 지날 때에도, 동네에 들어섰을 때도 팜 트리는 큰 키를 자랑이라도 하듯 높은 곳에서 고고하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시원 시원하게 사방을 향해 뻗은 팜트리는 높이 솟아 있지만 바람과 함께 흔들리는 리듬감이 탁월하다. 나무마다 표정이 다르고 흔들림이 다르지만 부러지지 않고 굳굳이 도로를 지키고 있다. 여왕팜트리는 키가 높이 자라고 중간에는 가지가 없이 매끈하다.  나무둥치는 뻗어 올라가 위에서 우산을 펼친듯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낮게 자라며 나무기둥이 굵은 종류도 있다. 잎은 세고 강하다.  파란 잎이 손바닥처럼 펴져 있어 palm이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일까?
 
 
       목을 길게 뽑아
       머리를 하늘에 걸었다
 
       나는 
       오직 긴 몸 하나
       덥수룩한 머리 하나
 
       사막의 금빛 햇살
       미치도록 사랑했던
       그 곳에 가고싶다
 
   어제 심하게 불던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높이 달려 마르고 변색해 버린 팜트리 잎이 땅으로 많이 떨어져 내렸다. 자기 세월을 다 살아온 거인처럼 조용히 널부러져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채이고 있다. 줄기를 떨어뜨린 나무는 키가  더 커진 듯  높아 보인다. 
 20m는 족히 될 것 같은 높은 곳에서 잎이 떨어지는 중력으로 인하여 아주 세게 내려와 바닥을 친다. 떨어진 잎으로 나무 밑에 주차한 차는 지붕이 찌그러지기도 하고, 차 앞유리가 깨지기도 한다. 운전자들은 버석거리는 줄기가  떨어져 어질러진 곳을 피해 지그재그로 간다. 
 
누렇게 된 줄기들을 미리 떼어주어 바람이 심하게 부는 때를 대비한다고 한다. 저렇게 높은 곳을 어떻게 올라 가서 잎을 뗄까 궁금했다. 혹시 사다리차라도 대동하는 것일까? 그런데 알고보니 팜트리 가지를 떼어 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다람쥐처럼 나무를 타고 올라가 누렇게 변색하고 말라버린 나무가지를 떼어 낸다고 한다. 밀림 속에서 야자 열매를 따기 위해 맨 발로 나무를 오르는 사람의 모습이 떠 올랐다.  그런 쉽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좀 놀라웠다.
 
바람이 불기 전에 우리의 마르고 고루한 생각도 스스로 떨구어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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