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초록 예찬

2003.04.15 11:21

김영강 조회 수:1136 추천:152

    며칠 전, 어느 모임에서 '당신은 무슨 색깔을 가장 좋아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하나의 색깔이 금세 떠오르지 않아 대답을 못하고 좀 망설였다.  특별히 좋아하는 색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특별히 싫어하는 색도 없다.  색깔마다 제나름대로의 특성이 있으므로 내게는 모든 색깔이 다 예뻐 보인다.  그러나 꼭 한 가지를 집어내라고 한다면, 그것은 초록이다.

    초록, 거기에는 무한한 생명이 숨쉬고 있다.  고목의 앙상한 가지에도 봄이 되면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겨울 바람에 몸을 떨던 거무티티한 나뭇가지에서 신비스럽게도 연초록의 생명들이 코끝을 내미는 것이다.  춘삼월의 초봄이 지난 후에는 빛깔도 점점 짙어지고 잎새들도 무성해진다.  또한 무성한 잎새들이 울창한 숲을 이룰 때, 그곳에서 풍겨지는 숲 향기는 마치 향수처럼 달콤하고 싱그럽다.  그 싱그러움에 이끌려 눈부신 햇빛도 숲을 향해 달려들고 새들도 숲 속에서 노래를 부른다.  온통 초록으로 뒤덮인 숲에서 생명의 힘이 용솟음 치고 있는 것이다.

    로스앤젤레스는 겨울에도 가로수가 온통 초록의 잎으로 뽐내며 서 있고, 집 앞의 잔디들도 새파란 지역이 많다.  사계절 내내 푸르름 속에 생명이 숨쉬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거리마다 넘치는 초록의 향기가 코끝을 스칠 때 우리의 기분은 상쾌해 지고 마치 에너지를 공급받는 것 같아 활기에 찬 힘이 솟아오른다.
    묘지에 가도 나는 그곳의 의미와는 상반되는 생명력을 느낀다.  파아란 잔디가 끝없이 펼쳐지고 푸른 소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모습이 내게는 생명력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죽은 이들도 초록의 싱그러움을 한껏 마시며 숨을 쉬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초록은 무한한 가능성을 심어주는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파란 잔디밭에 꿈을 심으며 뛰노는 어린아이들을 상상해 보라.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눈동자는 즐거움으로 빛나고 입가엔 저절로 미소가 떠오를 것이다.  꿈을 가지고 전진하는 아이들이 곧 우리의 미래가 아니겠는가?
     전진이라는 말을 쓰고 보니 갑자기 파란 신호등 생각이 난다.  여기서 말하는 파란 색깔은 정확히 따지면 파랑이 아닌 초록이다.  그 초록은 멈춰 서 있던 차들을 줄줄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동시에 우리의 두 눈에도 반짝하고 생기를 띄어준다.  컴퓨터에 시달렸을 때도 잠깐 밖으로 시선을 돌려 푸른 나무를 바라보면 눈의 피로가 풀린다.
이리하여 초록을 희망 속에 건강을 회복시켜 주는 색깔이라고 하면 너무 지나친 표현이 될까?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초록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었다. 초록은 조화와 화합의 일치를 이루고 침착하게 균형을 잡아주어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색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 정의는, 하나하나 단어만 나열해 놓은 것을 내 나름대로 정리를 해본 것이다.  그러므로 초록은 사람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색깔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 나라 속담에 '초록은 동색이다' 라는 말이 있다.  어떻게 쓰여졌든 간에 그 뜻은 끼리끼리의 단결을 일컫는 것이니 의리와도 일맥 상통하는 데가 있다고 하면 좀 꿰맞춘 감이 들까?  그 많은 색깔 중에 왜 하필이면 초록이 선택되어 속담에 인용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겨 속담책을 뒤져보았으나 별 신통한 해답이 없었다.   빨강은 동색이다, 까망은 동색이다, 라고 해도 그 뜻은 같지 않은가?  그런데도 왠지 이 속담에는 초록이 제격 같다.  입에 익어서 그럴까?  '초록은 동색이다' 라는 말에서 <초록>이 초록 색깔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친구가 있었다.  <초>는 풀을 가리키는 말로서 '풀들은 다 같은 초록으로 동색이다.'  라고 해석을 했다. 그러니까 풀은 초록색이고, 또 보편적으로 사람들에게 제일 많이 눈에 띄는 색깔이 초목의 초록색이기 때문에 그런 속담이 생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부님들도 특별한 절기가 아닌 연중시기에는 초록색의 제의를 입는다.  가톨릭 연력에서 볼 때, 일년 중 연중시기가 가장 길기 때문에 신부님은 다른 색깔보다도 초록색의 제의를 입는 횟수가 많다.  그러므로 제의하면, 가톨릭 신자들은 초록색을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된다.
    만일, 인류가 걸어야 할 바른 길을 색깔로 표현하라면 아마 그것은 초록이 아닐까?

    이왕에 종교 얘기가 나왔으니, 대림환에 대해서 잠깐 말하고 싶다.  대림환이란 가톨릭의 절기인 대림절 크리마스 무렵, 주로 집 문앞에 걸어놓는 동그란 장식을 말한다.  그런데 대림환은 반드시 초록색을 띈 푸른 나무로 만들어야 한다.  이 초록은 태어나실 예수님의 새생명과 구세주를 기다리는 우리의 희망을 상징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원의 시작이 어디서부터인지도 모르고 또 그 끝이 어디까지인지도 모른다.  원이란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그란 원의 모양을 한 대림환에는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는 천국의 뜻이 담겨져 있다.  변함없는 믿음, 영원한 생명, 희망에 찬 기다림, 이 모두가 다 초록과 연관되어 있어 초록예찬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초록은 보호색이라는 데에도 그 특성이 있다.  물론 보호색에는 다른 색깔들도 많이 있지만, 나는 초록이 그 대표적인 것 같다.  잎새에 붙은 극히 보잘 것 없는 작은 벌레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초록으로 자기 자신을 감싸고 있기에 그렇다.

    허나, 사람에게도 장단점이 있듯이 색깔의 느낌도 다 긍정적일 수만은 없다.  내 생각에 초록은 왠지 패션감각과는 좀 거리가 먼 것 같기 때문이다.  다른 색깔과 조화를 이룬다면 또 모를까....  물론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니 초록색의 옷을 즐겨 입는 이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이에게 초록색에 대한 느낌을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진한 초록은 굉장히 차갑게 느껴지는 색깔이라 사람에 비교하면 찬바람이 쌩쌩 도는 깍쟁이 같은 인상을 준다고 했다.  그리고 욕심쟁이 구두쇠가 연상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으니 참 보는 눈도 가지가지다.  또 어떤 이는 초록은 사랑과 직결된다는 말을 했다. 뜻밖이었다.  사랑은 보통 붉은 계통의 색깔을 떠올리게 하는데 말이다.
    "자연에만 나무가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도 푸른 나무가 있죠.  누구를 사랑할 때, 그 대상은 상대방의 마음속에서 늘 푸른 나무처럼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니까요."
    남녀간의 사랑뿐 아니라 어떤 사랑이라도 그것은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원동력이 됨으로 그의 말에 이해가 되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초록의 대상은 다 다르다.  골프 치는 사람은 골프장을, 군인들은 국방색의 군복을, 해녀들은 초록바다와 해저에 나풀거리는 해초들을, 그리고 운동선수는 초록색의 운동복을 연상할 것이다.
    그러나 새싹, 잔디, 나무 그리고 숲을 떠올리는 것은 다 공통된 생각이 아닐까?

    거기엔 늘 생명이 숨쉬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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