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희 작품평 / 김종회 교수

2004.04.21 14:37

김영강 조회 수:1020 추천:179

* 작품평

* 열등의식과 허위허식의 비극적 상거

    김영강의 '수희'는 소설의 제목인 '수희'라는 이름의 친구를 관찰한 '나'의 기록이다. '나'는 미국 로스안젤레스로 유학을 떠나는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가게 되고, 미국에서 팔 년만에 옛 친구 수희를 만난다. 의붓아버지 밑에서 어려운 환경을 견디며 성장한 수희는 '나'를 가장 친한 친구로 치부하고 있으나 '나'는 떨떠름하다.
    이 부자연스러운 두 사람의 관계는 소설의 처음에서부터 끝까지 관통하고 있으며, 마지막 대목에서 수희의 자살에 이르자 비로소 그 거리감을 걷어내게 된다.
    수희의 '나'에 대한 감정은, 요약해서 말하면 극심한 열등감이다. 그 열등감의 표출은 자신의 처지를 끊임없이 확장하는 허위허식의 발현에 잇대어져 있다. 수희는 자신의 가정과 남편, 그 부유와 능력에 대해 무모한 확대 포장을 서슴치 않는다. 그러나 그 무모한 언행은 다른 이야기의 장치를 통해 허위임이 드러나고, 이를 응대하고 있는 '나'는 분노와 연민의 감정을 함께 유발할 수밖에 없다.
    그 수희는 마침내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가 삶을 마감한다.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수희를 빤히 들여다보면서도 나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손을 내밀기는커녕 그녀의 아픈 가슴에 비수를 날렸다. 그리고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그녀를 조소의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내가 그녀를 감싸고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대해 주었더라면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화자는 후회하고 있다. 그렇다. 후회는 때를 놓쳤기에 후회이며, 이 두 인물의 케릭터는 때늦은 후회를 통해서만 그 유대감을 회복하도록 마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작가는, 그처럼 미세한 인간사의 진정성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소유자이며 그것을 소설의 문면에 잘 풀어놓는 능력을 닦았다.
    '나'와 수희가 공유했던 세월 저편 과거의 공간은 한국이고, 실제적 사건이 벌어지는 현재의 공간은 또 여전히 미국이다. 미주 한국문단이 숙명처럼 걸머지고 있는 이 배경 구조는 그것대로 익숙하면서도 성과 있는 디딤돌의 역활을 한다. 그러나 그 무난한 성과를 넘어서는 강렬하고 핵심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소설의 가치적 형상력은 어디에 있을까? 서구문학에서 그 예를 가져오자면 모파쌍의 '진주목걸이'나 오 헨리의 '20년 후'가 보여주는 일상 속의 탈일성과 같은 평이하면서도 극적인 소설 읽기의 체험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일일까?


계간 <미주문학> 2004년 봄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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