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천국의 초원에서 달리다

2008.10.10 23:51

김영강 조회 수:1017 추천:145

    그 날은 대입 체능고사를 치르는 날이었다. 그 당시, 문교부 입시정책이 어찌나 변덕이 심했는지 해마다 입시생들은 가슴을 졸여야 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그 해에는 대학 정원을 거의 반으로 줄여버렸고, 전국적으로 국가시험을 실시하여 그 정원만큼만 합격을 시켰다. 입시의 문이 아주 좁아진 것이었다. 게다가 체능고사 비율이 총점의 약 15% 를 차지해 학생들은 지정된 다섯 종목인 달리기, 팔굽혀펴기, 높이뛰기, 넓이뛰기, 공던지기에 매달려 죽기살기로 연습을 했다.

    달리기 시험 때였다. 모두들 긴장된 마음으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유난히 한 학생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부드러운 털이 잔잔한 물결을 연상케 하는 연파랑 반고트를 걸치고 서 있었다. 키도 크고 얼굴도 예뻤다. 미스코리아에 나가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모두가 단발머리였던 시절인데도 그녀는 긴 머리를 말꼬랑지 스타일로 높이 묶었었다.
    곁에서 아버지인 듯한 남자가 큰 목청으로 그녀에게 뭔가를 한창 설명하고 있었다. 운동시합에 나가기 전 코치가 작전지시를 하고 있는 것 같은 풍경이었다. 그 남자 역시 키도 굉장히 크고 체격도 컸다. 번쩍번쩍 빛나는 금테두리 모자를 쓰고 군인 장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꼭 맥아더 장군 같았다. 어쨌든 그들 둘은 내 눈에 참 멋있게 비쳤고, 보통 사람들과는 좀 다른 이국적인 인상을 풍겼다.

    그녀 차례였다. 출발 순간을 정확히 포착하고 그녀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갑자기 남자가 고함을 치더니 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라인 밖에서 뛰긴 했으나 어떻게 제 3자가 시험관의 제지 없이 같이 뛸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하니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만, 어쨌든 그는 달리면서 손뼉까지 쳐가며 소리를 질러댔다. 무슨 말이었는지 지금 기억에는 없지만, 그들의 뛰는 모습은 들판을 달리는 야생마처럼 힘차 보였다. 그리고 종착점에 도달하고서는 두 손을 마주잡고 팔짝팔짝 뛰었다. 정해진 타임에 꼴인을 하여 만점을 받은 게 분명했다. 아마도 겨우 해낸 것 같았다.

    한데, 그 날 그 달리기에 나의 인생여정이 걸려 있었음을 그 누가 알았으랴... ...

    나는 그 친구랑 4년 동안을 한반에서 공부했고, 그녀의 바로 위 오빠랑 결혼을 했다. 그래서 그 친구와 나는 시누올케 사이가 되었고 그 멋있는 남자는 내 시아주버니가 되었다. 그는 친구의 아버지가 아니라 스무살이나 나이 차가 나는 큰오빠였다.

    어느 날, 시누이가 말했다.
    "그 때 내가 왜 죽기살기로 뛰었는지 알아? 내 국가시험 점수가 시원치 않아 체능고사에 만점을 못 받으면 떨어질 수도 있었거든. 한데 달리기가 제일 문제였어. 그래서 큰오빠랑 매일 아침 효창공원에 가서 피나는 연습을 한 결과 만점을 받았지 뮈냐."    
    만일 달리기에서 만점을 못 받았더라면 우리의 인연은 그 날로 끝났을 것이다. 아니, 그녀의 시야에는 내가 비치지도 않았으니 인연이랄 것도 없다. 그러나 인연은 또 인연을 낳아 그녀의 달리기가 나의 운명을 결정짓는 일생일대의 대사건이 된 것이었다.

    남편과 데이트할 적에 나는 달리기 이야기를 얼른 풀어놓았었다. 알고보니 남편의 대학입학시험 때도, 또 유학시험 때도 시아주버니가 따라 갔었다. 더구나 유학시험 발표날에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 높이 두 손을 치켜들고 만세삼창을 외쳤다고 한다. 연로하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맨 아래 두 동생에게 각별한 정을 쏟아부은 것이다.
    집안에서 뿐만이 아니라 바깥에서도 시아주버니는 많은 사람들을 감쌀 수 있는 넓은 가슴을 가지고 있었다. 떡 벌어진 탄탄한 어깨에는 가족들은 물론이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기대고 또 기댔었다. 시부모님에게도 큰아들은 집안의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미국에 온 후부터 시아주버니의 가슴은 오그라들었고 탄탄했던 어깨도 축 쳐지고 말았다. 더구나 시누이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만 40세의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난 후부터는 마음까지 얼어붙은 듯했다. 자기 자식보다도 더 사랑하고 아끼던 막내동생의 죽음 앞에 그는 오열했고, 너무 일찍 떠나버린 것이 마치 자기 잘못인 양 괴로워했다. 잊어버릴 만할 때가 지나고 또 지났건만 그 세월 속에는 시누이의 형상이 잔존해 있었다.

    몇 해 전부터는 희미한 기억 속에 말까지 잃어버린 양, 시아주버니는 침묵했다. 든든한 자식들이 이제는 아버지의 버팀목이 되어 그를 받쳐 주었건만, 그는 계속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 막내동생의 아픈 기억만이 남아 있었을까?

    긴 세월이 흘렀어도 내게는 그 날의 달리기 광경이 어제 일처럼 눈앞에 선명한데, 그 모습은 흔적없이 사라져 버리고 생소한 형체만 남아 있을 뿐이다. 자신만만하고 패기에 찼던 그 혈기는 다 어디로 흘러버렸단 말인가. 타인이 늙어가는 과정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면서 유독 시아주버니의 늙음만은 내게 짙은 슬픔을 안겨다 주는 것이다.
    
    그런 시아주버니께서 며칠 전에 84세의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나셨다. 시누이가 저 세상으로 간 지 24년 만이다.

    그들은 지금, 두 손을 맞잡고 팔짝팔짝 뛰고 있을까?
    아니면 천국의 초원에서 달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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