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수레바퀴 사랑

2009.07.12 07:41

김영강 조회 수:1279 추천:171

                                
   오래 전, 텔레비전에서 어느 청소원 부부에 관한 이야기를 방영한 적이 있다. 쓰레기를 수레에 잔뜩 싣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그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남편은 앞에서 끌고 아내는 뒤에서 밀어주고 있었다. 그러나 수레는 뭐가 그리 심통이 났는지, 떡 버티고 서서 끌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래도 계속 끌고 밀고 하니 수레는 한 발짝씩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처음엔 거북이 걸음마였으나 조금씩 속도가 붙으면서 정상운행을 하고 있었다.
  
   시작부터 나는 콧잔등이 시큰했다. 희뿌연 새벽 안개 속에 펼쳐진 화면, 우울하기 그지없는 배경음악과 해설자의 착 가라앉은 음성이 나를 더 슬프게 했다. 반면에 열심히 수레를 끌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사랑과 꿈을 보았다.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같은 방향을 향해 계속 전진하면 언젠가는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이다. 화면에 심취하다보니 수레바퀴는 어느새 내 인생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남편을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고 살아온 지가 어연 40여 년이 되었다. 40년이면 강산이 네 번이나 변할 세월인데도 내 생활은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그냥 그렁저렁 굴러왔다. 그러나 겉으로는 그렁저렁 굴러왔지만 내 속은 강산이 변한 그 네 번보다도 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유교의식이 철저하게 밴 봉건적인 집안에서 자란 나는 이북사람과 결혼을 했다. 해방 직후 7남매를 거느리고 목숨 걸고 남하한 집안이었다. 다행히 그들은 모두 3.8 선을 무사히 넘었고 서울에 둥지를 틀어 보금자리를 꾸몄다. 그리고 한참 세월이 흐른 후에 나는 그 집 막내딸과 친구가 되어, 그녀의 바로 위 오빠랑 결혼을 했다. 사 년을 한반에서 공부를 했지만 한번도 서로의 집안을 왕래한 적이 없는 친구였는데, 어느 날, 우연의 만남이 인연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중매쟁이가 된 친구와 양쪽 부모님의 참석 하에 맞선을 본 그 삼 개월 후에 약혼을 하고, 또 그 삼 개월 후에 결혼을 했다. 급하지도 않았는데, 남편이 내 손을 기술적으로 잡아끌고 어른들이 등을 떠밀어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었다.          
  
   결혼을 하고보니 시댁의 문화가 내게는 너무나 생소했다. 어떨 땐, 아주 이상한 나라에 온 기분이었다. 남의 험담을 신이 나 죽겠다는 듯이 떠벌이다가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방바닥을 치면서 깔깔거리다가 그것도 모자라 발랑 드러누워 떼굴떼굴 구르며 배를 쥐고 웃는 시누이들, 그것도 부모님 앞에서. 한데 언제부터인가 나 역시 그 분위기 속에 휩쓸리고 있었다. 늘 자로 잰 듯 반듯반듯하고 한치의 오차도 용서치 않는 친정집의 침묵보다는 정겹기까지 했다.
  
   그러나 남편의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개인적인 면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그것은 집안 문제와는 별개의 폭풍우가 되어 나를 휩쓸어갔다. 첫아기를 임신하여 배가 남산만하게 불렀을 즈음, 나는 한밤중에 홀로 마루에 걸터앉아 한없이 운 적이 있다. 정말 그때는 딱 갈라서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내가 왜 그렇게 울었는지는 지금 기억에 없다. 잊혀진다는 진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모두가 하나하나 가슴 한복판에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고 있다면 지금까지 그렁저렁 살아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받은 상처가 세월의 강물에 씻겨 흘러가 버렸다고 말을 한다면, 남편 역시 내게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수레바퀴는 두 바퀴가 균형이 맞아야 정상적으로 굴러가니까. 균형이 깨져 한쪽 바퀴가 삐걱거리면 다른 한쪽도 구르지를 못한다. 그래서 부부도 발 묶고 뜀뛰기 시합을 하는 것처럼 항상 서로 맞춰 가면서 속도를 조절해야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일 게다.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을 부르면서 때로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우고 눈을 마주쳐 가면서.  
  
   그러나 끝내 조화를 못 이루고 계속 삐걱거리면 새 바퀴로 갈아 끼워야 하는 것이 속세의 인생살이기도 하다. 자꾸만 삐걱거리다가 속도를 조절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 수레는 그만 통째로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두 바퀴가 다 작살이 나버린다. 한쪽이 멀쩡했다 하더라도 굴러 떨어진 후에는 회복할 길이 없다.
  
   내 친구 중의 하나가 60이 넘은 나이에 이혼을 했다. 친구 말을 빌리면, 그동안 잘 달려오다가 언젠가부터 삐꺽거리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다 망가져버려 도저히 수리도 할 수가 없게 돼버렸다고 했다. 계속 가다간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질 위기에 처했으니 어쩔 수가 없게 돼버린 것이었다. 그들은 정말 잘 달려온 부부였다.
   대학시절, 그들은 아주 열렬히 연애를 했다. 둘은 항상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고,  졸업 후 바로 결혼을 하고 미국유학 길에 올랐었다. 모든 친구들의 흠모 대상이 되었던 두 사람은 참말로 그림같이 아름다운 한 쌍의 부부였다. 그런데 남편이 근 10년 동안이나 여자를 감춰두고 있다가 육십 줄에 들어서서 들통이 난 것이었다. 나는 첨에 친구의 이혼을 말렸다. 이 나이에 어쩌겠냐고 그냥 참고 살라고 했다. 한데 남편이 완전히 맘이 돌아서서 이혼을 강력히 요구한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혼을 한 후의 친구는 한쪽 바퀴만 가지고도 잘 굴러가고 있다.

  부부가 손을 잡고 같은 길을 걷기 시작할 때, 그들은 그 길이 어떤 길인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발걸음을 떼어놓는다. 길의 시작이 당장은 눈에 보일 수도 있으나 그것이 결코 영원한 길은 아니다. 변화무쌍한 것이 인생길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펼쳐질 그 길이 아스팔트로 잘 포장된 탄탄대로일 수도 있고, 험난한 가시밭길일 수도 있다. 그리고 길의 끝이 보이지 않고 또 언제 목적지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그냥 주어진 길을 그대로 걸어가면서 발에 걸리는 돌부리는 걷어내고, 걷어낼 수 없는 장애물들은 피해서 가야 한다. 또 허옇게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들을 치워가며 걷고 또 걸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뻔히 알면서도 마음먹은 대로 되기가 그리 쉽지 않다. 달리다가 숨이 차면 쉬기도 하면서 꾸준히 노력하며 길을 닦다 보면 우리의 마음도 저절로 닦여지지 않을까? 여기 저기 부딪쳐 상처가 나고 또 그 상처가 아물다 보면 모가 나 있던 마음도 자연스레 둥근 모습으로 변해갈 수 있을 테니까. 뾰족뾰족한 바위들도 수천 년에 걸친 파도에 씻기우면 둥근 곡선을 그리지 않는가? 결국 마음만 잘 닦여지면 어떤 길을 가더라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이것이 곧 꾸준히 노력하며 쌓는 사랑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보니 내 수레는 첨부터 조금씩 삐꺽거렸다. 그랬다가 속도를 조절하니 다시 정상운행을 했고, 잘 달리기도 했다. 어느 때는 또 삐꺽거리는 것조차도 느끼지 못한 채 40여 년을 끌고밀고 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지난 날을 되돌아보니 참으로 부지런히 살아온 세월이었다. 그래도 넘어져 크게 다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이 참 감사하다는 마음이 든다. 육십을 훌쩍 넘어서고 보니 더 그렇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내 나이가 참 좋다. 오래된 수레바퀴이긴 하지만 성능에 맞추어 속도를 조절해 쉬엄쉬엄 가고 있으니 참으로 편안하기 때문이다.

   잘 달리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돌아가 보면, 남편도 그 시절로 돌아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을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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