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연재> 침묵의 메아리 9

2011.03.11 11:38

김영강 조회 수:510 추천:40

-토요연재소설-

침묵의 메아리


제 9회


어느 날, 여자아이 하나가 집 앞에서 울고 있는 것을 이민우의 동생이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아이는 옷을 아주 깔끔하게 입고, 백팩을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옷가지 몇 벌,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혀 있는 봉투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곰인형을 안고 있었다. 아이는 세 살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아이를 붙들고 꼬치꼬치 물었다. 아이는 엄마가 조금만 기다리면 올 테니 꼼짝 말고 여기 있으라고 해놓고 안 온다고 했다.

   아이는 아주 똘똘했다. 얼굴도 예뻤고, 나이에 비해 덩치가 컸다. 아들만 넷 있는 이민우의 집안에 어떤 여자가 개구멍받이로 여자아이 하나를 들이민 것이다. 그러나 소문엔 그의 아버지가 밖에서 낳은 아이라고 했다. 이민우 아버지는 아이가 자기를 많이 닮았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아니라며 잡아뗐다.
    
“솔직히 말을 하라고. 밖에서 바람 펴서 낳았다고 불란 말야. 내가 길러준다고. 길러준다는데 왜 거짓말 하냐? 얼굴에 니 새끼라고 딱 쓰여 있는데 잡아 떼?  잘 봐라. 네가 봐도 딱 닮았지?”

   딱 닮았다는 말을 강조하며 그녀는 아들 앞에서 아이의 얼굴을 요리조리 우악스럽게  돌렸다. 그녀의 손아귀에 든 아이는 아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고 민우 아버지도 질세라 고성을 질렀다.

   “아니라고. 아니라니까. 어떤 년이 하필이면 우리 집 앞에 애를 버려 애매한 사람을 잡아? 내 이년을 꼭 잡아 경찰서에 처넣어 콩밥을 멕일 거라고.”

   아이를 흘긋 쳐다보고는 아이 엄마를 잡으러라도 가는 듯, 그는 휑하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야, 이 새끼야 어딜 가? 저 도망치는 거 좀 봐라. 저게 네 아빠 십팔 번이다.”

   아이는 그의 어머니에 의해 고아원에 맡겨졌고, 부부 사이는 더 나빠졌다.

   그의 악조건은 계속 이어졌다. 동생들도 다 말썽꾸러기들이고 그 중 하나는 소년원까지 들락거리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장남 하나만은 잘 두었다고 했으나, 알고 보니 이민우의 생모가 따로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생모에 관해서는 아무도 몰랐다. 이민우가 있는지를 모르고 결혼을 한 어머니는 그를 볼 때마다 눈을 흘겼다고 한다.  

   “민우가 있는 거를 속이고 결혼을 했으니 이건 완전히 사기를 친 거 야. 사기를 친 거라고. 난봉꾼에 사기꾼에····. 지 새끼도 고아원에 맡겨놓고 나 몰라라 하고 있으니, 그게 어디 사람이냐? 그 피가 어디로 가겠니? 민우가 생긴 것도 딱 지 애비를  빼박았단다.”

  얼마 전에는 지 아버지 안 닮고 반듯하다고 칭찬을 해놓고는 이제는 어머니답지 않게 막말까지 했다. 어머니만은 내 편이 돼주실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머니의 언성이 떨리고 있었다.

  “나쁜 놈,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너를 꼬시다니, 지가 감히····.  그래도 그렇지. 똑똑한 네가 어떻게 그리 쉽게 넘어갈 수가 있니?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더니, 내가 너한테 완전히 속았구나, 속았어. 민우랑 연애질을 하고 다니다니····, 정말 이건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다.”

  너무나 큰 충격에 눈물까지 글썽이는 어머니 앞에서 나는 “그런 게 아니에요. 엄마. 내가 좋아한다는데 왜 그래요.’ 하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말이 하나도 가슴에 와 닿지가 않았다. 딸의 심정을 조금도 이해 못하고 속았다는 말을 반복하는 어머니가 서운하기만 했다.  

  “민우 그 녀석, 앞으로 절대 만나서는 안 돼. 네가 정 고집을 부리면 집으로 끌어내릴 거다. 여기 지방 대학으로 말야.”

  다들 들어가려고 기를 쓰는 A대학에서 설마 시골대학으로 끌어내리지는 않겠지 하는 확신은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악조건으로 등장한 그의 가정환경이 아픔이 되어 내 가슴을 저몄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얼마나 불행하게 자랐을까 하는 생각에 앞서, 만날 눈을 흘기는 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자란 그가 너무 가여웠다. 그런 얘기를 나한테 일체 안 한 그 마음까지 내 가슴으로 들어와 더 슬펐다.

  ‘아픈 상처를 안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가 누려온 현실들이 미안하기까지 했다. 어깨에 가지런히 주름을 잡아 볼록하게 만든 원피스를 입고, 발목 부분에만 레이스가 달린 하얀 양말에 까만 구두를 신고 엄마랑 아빠랑 같이 나들이를 할 때, 그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을까? 그리고 내가 헤드보드에 조각된 두 천사의 취침 나팔소리를 들으며 날아갈 듯한 폭신한 양털 이불을 덮고 침대에 파묻혀 있을 때, 그는 딱딱한 바닥을 등에 지고 잠 못 이루고, 뒤척이며 밤을 지냈을 지도 모른다는 그림을 그려보니 가슴이 무너지듯 아팠다.  
  
   그와 계속  만나고 있는 것을 눈치챈 아버지의 강압에 못 이겨 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시골대학이 아닌 멀리 이국땅으로 유배를 온 것이다.

   미국유학이라는 불호령이 떨어진 때부터 이민우의 태도에는 냉기가 흘렀다. 감정이 현실에 따라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나와 헤어지려고 마음을 굳힌 게 분명했다. 아버지께 불려가 불벼락을 맞았다면 그의 자존심이 땅바닥에 내팽개쳐졌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를 그처럼 냉랭하게 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기약 없는 이별을 하고 미국에 온 후로도 그에게서는 완전 연락 두절이었다.

   그러나 우린 미국에서 다시 만났다. 그가 나와 같은 B대학에 유학을 왔기 때문이다. 같은 학교에 유학을 오면서도 어쩌면 내게는 한마디 상의가 없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유학준비를 하고 있는 것조차도 나는 몰랐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소식을 알리면 내가 너무 신경을 쓸 것이 뻔해 나를 위해서였다고. 그리고 공부 외에는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를 도무지 모르는 나이기 때문에 상의 같은 것을 할 상대가 못 된다는 것이었다. 온실 속의 연약한 화초가 바깥세상을 어찌 알겠냐고.

   그는 나를 따라온 것은 아니라고 했다. 사법고시에 낙방을 해 미국으로 현실도피를 한 것이라 했다. 부모와 동생들이 언제나 자신의 어깨에 잔뜩 매달려 걸음조차 떼놓을 수가 없어 그 짐 덩어리를 바닥에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고시에 낙방을 한 후, 유학준비를 위해 부지런히 일을 해서 돈을 마련했고, 그리고 앞날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세상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 자신의 힘으로 날개를 달아 바다를 건널 수밖에 없었다고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여러 학교에다 원서를 냈는데 B대학이 가장 조건이 좋았어. 수속도 아주 순조로웠고. 알고 보니 바로 네가 다니는 학교지 뭐냐?”

   내가 다니는 B대학을 목표로 유학 수속을 했음이 분명할 텐데도  그는 시치미를 뗐다.  물론, 내가 무슨 대학에 다니는 지는 아주 쉽게 알아냈을 것이다. 아버지가 대전운수에 다니는데 그걸 몰랐을 리가 없다.  집안 때문에 받은 자존심의 상처로 인해 그 반동 작용이 내게 적용됐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의 흐름은 순식간에 그 물꼬를 달리했다.

   그는 그동안 내가 까마득히 몰랐던 아버지 소식을 전해주었다. 나는 아버지의 사업이 좀 부진하다고만 생각했지 아주 파산을 한 것은  몰랐다. 빚에 몰려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채 피해 다니는 것도 몰랐다. 어찌할 줄을 몰라 울기만 하는 나를 그는 꼭 감싸 안았다. 그의 품에 안기니 이 모든 시련과 고통을 그가 다 해결해줄 것만 같았다.

   “사업의 흥망은 정한 이치 아니니?  떠나기 전 날, 어머닐 잠깐 뵈었는데, 어떻게 해서라도 학비조달은 할 테니까 집 걱정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랬어. 아버지도 분명히 다시 재기하실 거야.”

   이민우와 사귀는 것조차도 반대하시던 아버지 어머니가 이제는 그 에게 나를 부탁하는 입장이 돼버렸다. 그러나 그 후, 내게는 하늘과 땅을 온통 뒤흔들어놓는 크나큰 슬픔이 연이어 닥쳤다.

   심장마비로 아버지 사망이라는 비보가  날아들었고, 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머니마저 저 세상으로 가버리셨기 때문이다. 불과 2년 동안에 한평생을 살아도 격지 못할 비극을 나는 체험했다. 허지만 그가 내 곁에 있었기에 나는 그 비극을  딛고 일어설 수가 있었다. 부모처럼 그를 의지했고, 남편처럼 그를 믿고  따랐다.

  그렇게 2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결국 나는 내 모든 것을 그에게 맡겨버리고 말았다. 사실, 그가 미국에 왔을 당시, 처음엔 좀 서먹서먹하기도 했었다. 한국에서는 그를 며칠만 못 보아도 밤잠을 설치곤 했는데, 미국에 온 이후에는 그런 감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이상했다. 매몰찬 그의 반응에 나 자신도 마음을 다잡았고, 어려운 공부에 힘들고 지쳐 딴 데 정신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슴 한구석에는 나도 모르는 불씨가 남아 있었다. 그 불씨는 서서히 다시 타올랐고 잠재해 있던 감정들이 눈을 말똥히 뜨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또한, 현실의 문제가 더 급했던 나는 갑자기 불어닥친 회오리바람 속에서 이민우라는 끈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이민우를 기다리는 마음은 간절했으나 몸은 마음을 따르지 않았고, 그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나를 대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뿌리치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보며 나는 그의 도구에 불과한가 하는 회의에 빠져 허우적거린 적도 많았다.  

   그러다가 임신이라는 커다란 고민 덩어리를 안게 되고 말았다. 그 당시, 우리는  절대로 임신이 되면 안 되는 처지였다. 그는 날 의아하게 바라봤다.

   “정말 이상하네. 임신이 될 리 없는데····.”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는 것인 양, 믿지 못하는 그의 눈빛이 송곳이 되어 나를 찔렀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임신이 될 리가 없는데 임신이 되다니··· ···. 그럼 내가 거짓말하는 것으로 보여요?’ 하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으나 나는 왠지 그 앞에서는 늘 주눅이 들어 할 말을 제대로 못했다.

   "암만해도 병원에 가봐야 되겠어요."

   "그러지 뭐. 임신이 확실하면 유산을 시켜야 되겠지?"

   예리한 칼이 내 온몸을 난도질하는 듯한 통증이 왔다.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면서 숨을 고른 다음에 용기를 내어 말했다.

   "뱃속의 아이도 한 생명체인데 어떻게 아이를 죽여요? 왜요? 나으면 안 돼요?"

   형편을 뻔히 알면서도, 그의 관심 없는 태도와 무책임한 소리에 반동으로 튀어나온 말인지도 모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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