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이와 삼순이

2006.09.20 01:26

고대진 조회 수:796 추천:129

그날 분양 광고에 나온 강아지들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전화를 걸었더니 두 마리가 남아있다고 했다. 더구나 강아지가 태어난 날은 두 달 전 우리 아이가 교통사고로 죽은 날이 아닌가. 오후 그 집에 찾아가기로 약속하고 나서도 흥분을 감출 수 없어 강아지물건을 파는 가게에 가기도 하고 개에 관한 책을 들쳐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분양한다는 집은 우리 집에서45분을 운전하고 가야 하는 집이었다. 문을 두드리자 여자주인이 머리만 삐끗 내밀고 우릴 보더니 강아지가 다 팔려서 볼 수 없다며 미안하다는 소리를 하곤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었다. 어찌 이럴 수가? 아침에 분명히 두 마리가 남아있다고 네 시에 오면 된다고 했는데… 운전을 하고 돌아오면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동안에 두 마리가 다 팔릴 리는 없고 아무래도 우리의 모습을 보고 분양을 거절하는 것 같았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사람들이 개를 잡아먹거나 잘 돌보지 않는다는 것은 이곳 텍사스까지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자식들을 시집 보내듯 개를 나눠주는 이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온종일 기분이 나빴다. 미국에 산지 25년 아무리 영어 발음이 매끄러워도 역시 피부를 보고 사람을 차별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이 날 난 또 응급실 신세를 져야 했다. 낮에 받은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았다. 그때 난 하나밖에 없던 아이를 잃고 생각 한다는 것 조차 힘들고 무섭기만 한 날들을 지내고 있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와 관련된 옛날을 생각하는 것 조차 싫었다. 우울증에 빠져 약이 없으면 하루를 버티기 힘든 날들이 계속되고 있었고 몸 여기 저기서는 약에 대한 부작용이 나와 응급실로 실려간 것이 다섯 손가락을 넘어서고 있었다. 새로 이사 와서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텍사스에서 이런 일을 당해 견디기 힘들어하는 우리에게 누나가 말했다. “집이 너무 썰렁하니 개를 좀 길러보는 것이 어떠니? 개도 좋고 너에게도 좋을 거야.“ 한 주를 다시 기다려 골든 리트리버를 판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간 곳은 이곳 산안토니오에서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우발디라는 시골이었다. 그 집에서는 찾아올 우리를 위해 강아지를 목욕시켜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여섯 마리가 다 팔리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석 달짜리 암 강아지였다. 아내는 벌써 강아지를 안고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강아지 값을 치르고 족보와 병원기록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어찌나 흐뭇하던지 지난 번 겪었던 인종차별조차 이렇게 예쁜 강아지를 만나기 위해 필요했던 일처럼 생각되었다. 아내의 품 안에서 강아지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아내와 눈맞춤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초롱이는 우리 식구가 되었다. 개를 키우는 것과 아이를 키우는 것은 너무 비슷했다. 그만큼 손도 많이 가고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했다. 관심을 받고 자란 개들이 주인과 의사소통을 잘 한다는 누나의 말에 많이 놀아주고 말도 많이 해주었다. 초롱이는 말을 얼마나 잘 알아듣는지 사람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대소변을 가리는 것은 물론 밖에 나가고 싶다 혹은 장난감이 어디 떨어졌다는 말을 코로 또는 발짓으로 우리에게 말하곤 했다. 엄마 아빠 그리고 할머니까지 구별하고 숨바꼭질 하기를 좋아했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깊은지 산보를 다닐 때도 같이 다니는 사람의 보조를 맞추어 걷고 또 먼저 가 있으면 같이 간 사람이 올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고 있자고 한다. 개는 ‘Love me’ 하는 개와 ‘Feed me’ 하는 개가 있다는데 초롱이는 당연히 ‘Love me’ 개다. 물론 같은 배에서 나온 아이도 성격이 다 다르듯이 개에게도 개성이 있다. 초롱이는 아이라면 모든 면에서 부모를 편안하게 만드는 아이다. 초롱이를 키우다가 보니 할 일이 많아져 우울한 생각에 빠질 시간도 줄어들어 병원에 가는 일도 차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또 직장이 끝나서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텅 빈 큰 집에 가는 일도 무섭지 않게 생각되었다. 두 달 학교를 다녀서 훈련을 끝내고 수석입학에 수석졸업을 하였다. 학교를 다닌 모든 개들이 다 수석입학에 수석졸업이지만 말이다. 여행을 다녀오면 어디 갔다 이제 왔느냐는 듯 칭얼거리며 오래 애처롭게 우는 모습을 보고 친구를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해서 우리 동네에 있는 수용소(animal shelter)에서 석 달 된 강아지를 입양했다. 조그만 녀석이 70 파운드가 넘는 커다란 초롱이에게 쌈을 걸기도 해서 ‘쌈순이’라고 불렀는데 연속극 주인공 이름을 따서 삼순이라 불렀다. 삼순이는 초롱이와 먹는 것부터가 달랐다. 허겁지겁 자기 것을 다 먹고 나서 초롱이 것을 빼앗아 먹는 것이었다. 몇 번 야단을 맞고서 고쳤지만 먹이만 주면 정신 없이 먹는 것을 보니 수용소에서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 항상 사람 곁에서 있고 싶어하는 초롱이와 달리 멀리 떨어져 앉아있곤 했다. 삼순이가 초롱이처럼 우리에게 애교를 부리고 우리 옆에 있고 싶어하게 된 것은 입양하고 나서 6개월이 지난 뒤였다. 요즘은 오히려 초롱이보다 더 애교를 부리며 곁에서 재롱을 떤다. 예쁘다고 쓰다듬어주면 멀리서 초롱이가 보고 자기도 쓰다듬어 달라고 달려와 두 팔이 바쁘다. 한동안 아이는 몇이나 됩니까 라는 질문에 머뭇거렸는데 요즘은 바로 딸만 둘입니다 라고 대답한다. 초롱이와 삼순이. 하나는 두 살 하나는 한 살. 만일 이 아이들이 애를 가져 분양을 하게 된다면 나도 분양 받을 사람들을 심사하게 될 것 같다. 혹시 개를 먹는 나라에서 온 사람 같으면 당연히 분양을 거부할 것 같다. 개를 자기 가족과 같이 보살필 수 없는 가정이거나 개를 먹는 그런 문화에서 자랐다면 분양된 개 또한 사랑을 못 받게 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2006 가을 문학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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