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연재> 침묵의 메아리 7

2011.02.25 10:41

김영강 조회 수:581 추천:57

-토요연재-

침묵의 메아리


제 7회

  

   실내에 들어서니 커다란 리본을 달고 금테를 두른 번쩍번쩍 빛나는 액자 속에 들어 있는 작품 하나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파리의 무슨 전시회에서 최우수상 수상했다고 적혀 있었다. (delete-원래 미술작품에는 문외한인 나인지라-delete) 모든 게 낯설었다. 어떤 그림은 아름답다고 느껴졌으나, 어떤 그림은 어린아이가 낙서를 해놓은 것 같았다.

   자랄 때 엄마를 따라 음악회는 더러 가보았지만 미술전람회에는 간 기억이 없다. 그리고 클래식 음악에 취미가 있어 레코드판은 사본 적이 있으나 그림은 한 장도 산 적이 없었다. 그림이 아닌 붓글씨도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대충대충 보고 지나쳤다. 작품에는 관심이 없고 이민우와 함께 전시회에 왔다는 그 자체가 좋았다.

   한쪽 방에는 현대미술작품을 전시해 놓았었다. 현재 유명인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작가들이라고 그가 말해주었다. 그림이 다 이상했다. 잘 그린 것인지 어떤지 통 분간이 안 갔다. 어떤 것은 그냥 먹칠을 해놓은 것처럼 보여 무엇을 그렸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이 그림들이 지금은 별로 높이 평가받지 못하고 있지만 먼 후세에는 어마어마한 값에 팔릴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야. 지금보다 100배로 호가될 수도 있어.”

  나는 그가 언제 죽었냐고 물었다. 그는 연도까지 정확하게 기억했다.

  “1914년에 태어나서 1965년에 죽었어. 참 아까운 사람이야. 앞으로 박수근 그림 값은 계속 뛸 거야. 그런데 문제는 가짜가 많다는 거지.”

   나는 미술에도 문외한이고 문학에도 문외한이지만 박완서의 소설 나목은 읽었기에 박수근은 알고 있었다. 마침 내가 아는 미술가 얘기를 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가짜 그림을 보면 너무 진짜와 똑같아 판별하기가 어렵지만 작가 서명 부분에서 두드러지게 표가 나지. 박수근의 그림은 두꺼운 화면 위에서도 ‘수근’이라는 글자가 끊김 없이 선명하게 나타나지만, 위작에선 글자부분 부분이 깨져 보이거든. 감정 위원들 말이 현재 미술계에서 파악하는 박수근의 진품은 500여점이고 대부분 소재가 알려져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진품을 개인 소장자가 갖고 있을 확률은 매우 낮다고 했으니 속지 말아야지.”

  꼭 자기가 그림이나 구입할 듯이 그는 심각성을 띄고 말했다.

  “중국에 현대화가로 유명한 장대천이라는 화가가 있는데, 그 사람이 소장하고 있던 세계적인 유명화가의 작품들이 진품이 아닌 것이 수두룩했다고 어느 잡지에서 봤어. 장대천도 모르고 구입했을 수도 있으니, 그만큼 진짜 가짜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거야. 장대천을 믿고 그로부터 작품을 구입한 사람들이 가보로 모셨다가 아연실색을 한 거지.”

   그는 장대천이 가짜 그림을 그렸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그림 앞에 오래도록 머물면서 마치 후세에 팔릴 그림 값이나 책정하는 듯 시선을 꽂았다.

   나는 그에게 속도를 맞추다가 조금씩 빠르게 나아갔다. 나보다 조금 쳐졌던 그가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고, 방마다 기웃거려도 없었다.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출구 쪽으로 나왔는데도 그는 없었다. 언뜻 초조함이 가슴을 스쳤다. 나는 거꾸로 다시 가면서 두리번거렸다.

   한참 가다 보니 그가 어느 붓글씨 액자 앞에 심각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잃어버렸던 엄마를 찾은 것처럼 반가워서 다가갔으나 그는 나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작품 앞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림이 아닌 밑으로 내려쓴 석 줄의 붓글씨였다.

   靑草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엇는다
   紅顔을 어듸 두고 白骨만 무첫는다
   盞 자바 勸하 리 업스니 그를 슬허하노라.

   옛날 글로 씌어졌지만 술술 잘 읽혀지는 시조였다.  한참 만에 그가 말했다.

   “이 시조는 이조 선조 때, 임제라는 문인이 지은 시조인데 임제라는 본명보다 백호라는 호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사람이지. 이건 백호가 황진이 무덤 앞에서 읊은 시조야.”
   나는 얼른 시조의 마지막 구절을 지적하며 말했다.

   “여길 잘못 썼나? 슬퍼가 슬허로 돼 있네.”

    그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슬퍼의 옛말이 슬허야.” 하고.

   법대학생이 아는 것도 많았다. 전공을 잘못 선택한 것 같았다.

   “황진이와 교분이 두터웠던 백호가 평안도사로 부임하게 되어, 평안도로 가던 중에 황진이의 무덤에 들렀는데, 이 일로 말미암아 양반이 체통을 떨어뜨렸다고 논란이 되어 그가 미처 임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파면장이 먼저 와 있었다는군. 그 후, 백호는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명산을 찾아 즐기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해.”

   나는 그의 팔을 붙잡으면서 “왜 이렇게 아는 게 많아요.” 하고 즐거워했다.

   바로 그때, 뒤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어, 이게 누구야. 이민우 아냐.”

   우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향해 얼른 돌아섰다.

   “김 부장님, 오랜만입니다.”

   이민우는 만면에 희색을 띄고 김 부장이라는 사람에게 아주 반가운 어조로 인사를 했다. 김 부장은 내게 눈길을 주면서 “사장님 따님?” 하고 이민우에게 물었다. 김 부장은 나를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인사해. 김 부장님이셔.”

   가슴이 철커덩 내려앉았다. 도둑질을 하다 들킨 사람모양 얼굴이 빨개졌다. 이민우랑 같이 있다는 자체도 문제가 되겠지만 남자를 사귄다는 것이 아버지 체면을 깎는 일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를 대하는 김 부장의 태도엔 어딘지 모르게 비굴함이 배어 있었고, 반대로 이민우에게는 하인 대하듯 했다. 기분을 아주 나쁘게 하는 사람이었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다음, 저만치 앞서 가면서도 김 부장은 우리를 흘금흘금 훔쳐보았다. 같이 온 일행 역시 고개를 뒤로 빼고는 우리를 훑어봤다. 김 부장이 뭐라고 수군거리는 모양이 나와 이민우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이 분명했다.

   덕수궁을 나와서도 내 맘은 아버지로 가득 차 천근만근 무거웠다. 시커먼 돌덩이 하나가 가슴 한복판에 얹혀 있는 듯했다. 아침부터 내려앉아 있던 하늘은 여전히 을씨년스러웠다.

   광화문 냄비우동 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책방에도 들르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우린 르네상스로 향했다. 그 당시, 많은 대학생들이 르네상스에 드나들었다. 물론 데이트 장소로도 많이 이용되었다. 우리도 자주 그곳을 찾았다.

   문학과 미술에는 아는 것이 없는 나였으나 클래식은 무척 좋아했다. 그냥 듣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이민우는 웬만한 곡들은 제목과 작곡가를 꿰뚫었고, 곡 전부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하게 따라 불렀다. 그리고 지휘자까지 맞출 정도로 귀가 밝았고, 소리만 듣고도 누가 부르는지를 척척 맞췄다.

   클래식 음악회에도 자주 갔었다. 언젠가 런던 필하모니의 한국 공연이 있었을 때는 한 달 전에 표를 사놓고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국민학교 3학년 때였어. 강당에서 노래 소리가 들리는 거야. 생전 처음 듣는 아름다운 노래였어. 나도 모르게 발길이 그쪽으로 끌려갔지. 학교에서 제일 노래를 잘하는 6학년 여학생이 담임인 여선생님의 반주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야. 진짜 생전 처음 듣는 곡조였는데, 우리가 보통 배우는 동요하고는 질적으로 달랐어. 아주 황홀할 정도였지. 완전히 넋이 나갔었다고. 그 옛날 일이지만 그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나.”

   그가 잠깐 말을 끊기에 나는 그게 무슨 노래였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그땐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네’와 ‘옛 동산에 올라.’ 라는 우리나라 가곡이었어.”

  또 한 번은 길목에 있는 라디오 가게에서 너무나 기막힌 바이올린 곡이 흘러나와 그대로 발이 멈추어,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들었다. 그 곡이 슈만의 트로이 멜라이, 한국말로는 꿈이라는 곡이었는데, 어찌나 음색이 황홀한지 넋이 나갈 정도였다. 바이올린의 선율이 파르르 떨며 길게 이어질 때는 숨까지 멎을 뻔 했다. 그리고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를 들었을 때는 피아노 건반을 톡톡 튀기며 빠르게 달리는 곡조에 취해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멜로디가 가슴에 새겨져 잊히지가 않았다. 곡목도 모르고 멜로디만 계속 흥얼거렸었다.

  그 라디오 가게에서는 항상 좋은 음악만 흘러나왔고, 그게 바로 클래식 선율이었다는 것이다. 협주곡이나 교향곡 등도 그때 익혔다고 하니 참 놀랄 만한 일이다.    

  (delete-아홉 살 먹은-delete) 어린애가 노래를 듣고 넋이 나갈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면 특별한 감각을 타고 난 것이 분명했다. 귀가 유난히 밝은 것도 그랬다. 어릴 적부터 피아노라도 배웠더라면 어떤 천재성이 발견되지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천재성이 싹도 터보지 못하고 그대로 땅에 묻혀버려만 했던 집안의 가난이 측은해서 가슴이 아팠다. 만날 라디오 다이얼을 요리조리 돌렸고, 거기서 모든 걸 다 배웠다는 그의 말이 귓가를 맴돌며 떠나지 않았다.

   길가에 구르는 흔한 돌멩이도 그의 손에 쥐어지면 내 눈에는 다이아몬드로 비춰지는 것이었다.  

   이민우는 눈을 지그시 감고 음악에 묻혀버린 것 같았다. 르네상스에선 늘 음악에 대한 새로운 얘기들로 나를 매료시킨 그가 계속 침묵을 지켰다. 실내네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무겁고 칙칙한 선율이 아주 낮게 흐르고 있었다. 김 부장 일행의 흘끔거리는 시선이 자꾸 떠올라 내 기분은 엉망이 되어갔다. 혹시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침묵의 무게가 점점 더해 가는 그때,  나는 이민우가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순간, 멍한 기분이 들며 온몸의 알맹이가 다 빠져나가 버린 듯했다. 살아 있는 내 존재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수가 없었다. 곧바로, 오죽 피곤하면 저럴까 하는 생각이 뒤따랐다. 나는 그가 눈을 좀 붙이기를 바라며 나도 눈을 감아버렸다. 얼마를 그러고 있었는지 꽤 시간이 흐른 후였다. 자세가 편치 않아 의자에 등을 바짝 붙이려고 몸을 꼼지락거리는데, 그가 덥석 내 손을 잡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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