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연재> 침묵의 메아리 2

2011.01.21 10:26

김영강 조회 수:497 추천:67


   -장편 토요연재소설-

    침묵의 메아리


    제 2회


   <<아파트엘 들어서니 천장에 목을 맸다는 애경이가 방바닥에 반듯이 누워 있었다. 가슴에서부터 무릎 위까지 얇은 담요를 덮고, 얼굴을 약간 오른쪽으로 돌린 채 두 눈은 감고 있었다. 목에는 노끈의 붉은 흔적이 선명하게 나 있었고, 쭉 뻗은 두 다리는 좀 푸르스름한 색을 띠고 있으면서 약간은 얼룩덜룩해 보였다.

  그런 동생을 보는 순간 미경은 가슴이 꽉 메어와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사면의 하얀 벽이 뱅뱅 돌며 눈앞이 노래졌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애경이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애경아, 애경아”하고 어깨를 마구 흔들어댔다. 동생이 ‘언니’하고 부르며 벌떡 일어나 앉을 것만 같았다.>>

   문장 표현에 사실감이 살아 움직였다. 애경의 시체가 바로 내 눈앞에 누워 있었다. “애경아, 애경아.” 하고 울부짖는 강미경의 목소리가 귓전을 후벼 팠다. 심장박동이 빨라져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왼손이 가슴 한복판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소설에서와 똑같이 강미경의 심정이 된 것이다.    

   <<“애경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언니가 잘못했어. 언니가 너한테 잘못한 게 너무 많아. 언니를 용서해줘. 미안해.”

   미경은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바닷물 같은 눈물을 내쏟았다. 동생은 가해자이고 자신은 항상 피해자라고만 생각해왔던 현실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갑자기 남편이 어깨를 흔들며 조용히 말했다.

   “큰소리 내지 마. 소릴 죽여.”

   톰은 한참을 조용히 훌쩍거리다가 고개를 젖히며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일 끝나고 들어오니까 저기에, 저기에····.

   남편이 벌떡 일어나 저기라는 곳을 쳐다보았다. 그녀도 고개를 들어 천장에 시선을 돌렸다. 형광등 불빛에 눈이 부셨다. 톰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눈을 내리깔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내려놓으면 금세 도로 살아날 것만 같아서···· .”

   천장에 매달려 있는 애경이를 톰은 방바닥에 내려놓고 인공호흡을 시키면서 살려보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노력을 다했으나 숨은 이미 끊어진 후였다고 한다.    

   톰은 병원 랩에서 테크니션으로 일을 하는데 그 시간이 일정하지가 않다. 정식직원이 아니고 병원에서 불러줘야만 하는 파트타임이라 뜨내기 신세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주로 밤에 일을 하며 요즘은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휴가 간 직원들이 많아 거의 매일 일을 했다고 한다. 밤 열두 시에 일을 끝내고 행여 아내가 깰까봐 살며시 들어왔는데, 애경이가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네가 이 노끈을 풀고 처제를 내려놓았단 말이지?”

   지극히 침착한 목소리로 남편은 애경이가 목을 맸다는 샛노란 끈을 가리키며 물었다. 가는 나일론 줄을 여러 겹으로 꼬아서 만든 매끈매끈 윤기가 나는 아주 튼튼해 보이는 손가락 굵기 정도의 끈이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빨래 말릴 때 쓰는 줄이라고 했다. 빨랫줄치고는 짧았다.>>
  
   애경의 친구인 내게는 참으로 충격적인 줄거리였다. 허구로 꾸민 소설이라고는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3인칭으로 서술이 되었으나 소설이 아닌 수기를 읽는 기분이었다. 이름까지 실명을 그대로 사용해 더 그랬다.

   ‘아, 이럴 수가, 그렇다면 애경이의 죽음이 교통사고가 아니었단 말인가?’

   갑자기 활자가 뒤엉켜 나는 눈을 감았다. 한참 동안 눈을 감은 채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고 하니, 뛰는 가슴이 조금씩 진정이 되었다.    

   그 다음은 주인공인 강미경이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줄거리가 이어졌다.

   <<미경이와 애경은 같은 부모로부터 네 살 터울로 태어난 자매이나 어렸을 적부터 모든 것이 판이하게 달랐다. 하얗고 가늘가늘한 체격에 얼굴도 예쁜 언니에 비해 애경은 그렇지가 못했다. 성격 역시 하늘과 땅만큼이나 동떨어진 자매였다. 이들 두 자매는 전생에서 무슨 철천지원수가 아니었을까 할 정도로 비극적인 요소를 지니고 태어난 것이다.

   애경은 항상 언니와는 반대가 되는 길만 골라 걸었다. 모범생인 언니에 비해 그녀는 어릴 적부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대며 부모 속을 썩였다. 교과서를 학교 앞 가게에다 맡겨놓고 만화를 빌려보는가 하면 초콜릿이나 과자 같은 것을 살짝살짝 훔치기도 했다. 도대체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돈을 마구 꾸어쓰고는 갚을 생각도 안 했다. 그리고 용돈을 주면 그날로 다 써버리곤 했다. 뭐든지 자기 원하는 대로 해야 했다. 울고불고 떼를 써 어떤 때는 무서울 정도였다. 물론 공부하고도 완전히 담을 쌓고 살았다.

   반면에 미경은 중학교 때부터 미국 유학이라는 꿈을 가지고, 그 꿈을 향해 기를 쓰고 달려왔다. 유학은 아니었으나 이민을 오게 되어 미경은 그 꿈을 이루었고,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늦은 시기였으나 원하는 대학에도 무난히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소설 밖의 강미경과 애경이도 네 살 차이다. 생김새를 묘사한 부분도 실제와 같았다. 어릴 적부터 애경의 성격이 워낙 못돼 부모가 자기만 편애한 이야기를 쓴 부분에서는, 강미경은 그런 동생을 둔 것이 너무 부끄러워 차라리 애경이가 죽어 없어져버렸으면 하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나는 깜짝 놀랐다.

   ‘항상 동생을 감싸고 생각만 해도 애처로워 죽겠다는 듯이 눈물까지 글썽이던 강미경이 아니었던가? 아! 이건 소설이잖아. 왜 나는  소설을 자꾸만 현실로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교통사고로 부모가 죽은 후 유산 문제의 갈등, 결국은 애경이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었다고 강미경은 소설에서 밝히고 있었다. 내가 거의 알고 있는 그들 자매 이야기였으나, 유산을 분배한 사실은 몰랐다.

   자기 자신을 꽁꽁 묶어 깊숙이 간직한 채 남들에게 보여주기를 지극히 꺼려하던 강미경이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자신을 한 꺼풀씩 한 꺼풀씩 벗겨내고 있었다.

   원하는 돈을 손에 쥔 애경은, 그 돈을 다 탕진한 2년 후에 언니 앞에 다시 나타났다. 동생이 결혼을 했다면서 남편이라는 사람과 함께 미경을 찾아온 것이 바로 한 달 전의 일이다.

   <<이사를 했는데도 용케 집을 찾아왔었다. 애경은 너무 살이 쪄 몰라볼 정도였다. 대책 없이 마구 먹어대던 어릴 적 모습이 생각 나 미경은 진저리를 쳤다. 이제 겨우 스물아홉인데, 완연한 중년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동생이 너무 한심스러웠다.
   반면에 남편인 톰은 동생보다 10년이 위라는데도 도리어 애경이보다 더 젊어보였다. 그는 유난히 하얀 피부에 짙은 눈썹이 맨 먼저 눈에 띄는 전형적인 백인이었다. 조각처럼 깎아 세운 듯한 콧날하며 깊고 푸른 눈동자,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이 영화배우 뺨치게 잘생긴 얼굴이었다.>>

   두 자매는 실명 그대로 표기가 되었으나 어느 한곳에도 이민우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았고 계속 남편이라고만 호칭을 했는데 톰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이민우를 그대로 그려놓아 나는 쓴웃음을 흘렸다. 하얀 피부와 짙은 눈썹, 뚜렷한 이목구비 등····.
   정말 그랬다. 그는 영화배우 뺨치게 잘생긴 남자였다.

   이민우를 안 다음부터는 햇빛에 반짝이는 이파리 하나도 다 아름다웠고, 모든 사물이 그를 통해 보였었다.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으로 인해 세상이 더 환하게 눈앞에 펼쳐졌고 찬란하게 솟아오르는 태양, 밤하늘에 총총 박혀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별들, 그리고 바람 소리조차도 내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가느다란 별빛 하나, 소소한 빗방울 하나에서도 감동을 느끼며 내 영혼까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그 자체가 축복으로 다가왔다. 촛불 한 자루가 방안에 밝음을 채우듯, 내 가슴의 사랑 한줌이 온 세상에 밝음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그로 인해 내 맘속에 외로움의 그림자가 그토록 짙게 드리워질 줄은 정말 몰랐다.  

   <<톰은 완벽한 한국말을 했다. 놀라서 물었더니 어머니가 한국 여자이며 한국에서 태어났고 미국에는 고등학교 때 왔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완연한 서양 사람이었다. 뉴욕에서 만나 넉 달 전에 결혼을 했고, 그곳에서 살다가 언니가 보고 싶어 엘에이로 왔다는 것이었다. 동생은 무릎을 꿇고 빌었다.

   “언니, 내가 다 잘못했어. 용서해줘. 앞으로는 그런 일 절대로 없을 거야. 이제 나도 결혼했으니까 마음잡고 잘 살게.”

   이상하게도 미경은 아무 감정이 일지 않았다. 동생이 “언니, 언니” 하고 소리 내어 흐느끼면서 자신을 껴안는데도 목석을 대하는 것같이 아무 느낌이 와 닿지 않았다.
   톰은 아내가 울고불고 야단인데도 놀라지도 않고 으리으리하게 잘 꾸며진 실내를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높은 천장으로부터 길게 늘어진 샹들리에의 불빛을 눈이 부신 듯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그날은 쌀쌀맞은 언니를 원망할 겨를도 없는 듯이 눈물만 쏟아놓고 돌아갔지만 강미경은 곧, ‘또 돈 타령을 하겠지’ 하고 애경의 반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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