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연재> 침묵의 메아리 5

2011.02.11 10:06

김영강 조회 수:489 추천:56

-토요연재소설-

  침묵의 메아리


  제 5회



    ‘언니는 몰랐을까? 그런 경우엔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또한 언니는 애경이의 남자편력도 몰랐을까?’

    소설의 어느 한구석에도 애경이가 밖에서 저지르고 다니는 짓거리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다. 애경이가 돈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는 배경은 항상 언니 집이었다.

   애경이가 언니에게 악을 쓰며 난장판을 벌이는 한 장면을 옮겨 본다.

    <<“언니야 남편도 있고 자식도 있고 집도 있고 돈도 있고, 없는 거 없이 다 있지만 난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야. 나 하나 죽으면 간단해. 울어줄 사람도 없어. 근데 나 혼자는 절대로 안 죽어. 왜 혼자 죽어 억울하게. 권총으로 다 쏴 죽이고 죽을 거야. 벌써 총도 사놓고 총알도 사놨어. 겁나지?”

    애경은 완전히 미친 사람모양 악을 쓰고 울부짖으면서 엄지와 검지를 쫙 펴고 미경을 겨누며 총 쏘는 시늉을 했다. 희번덕거리는 눈빛이 섬뜩해 마주볼 수가 없었다. 미경은 시야가 노래지고 속이 메슥거렸다. 귀가 멍멍해지면서 앞에 앉은 동생의 무서운 얼굴이 뱅글뱅글 돌았다.

    “뭐 이 집에 발도 들여놓지 말라고? 오라 그래도 더러워서 안 와. 어디 보자. 얼마나 잘 먹고 잘사나. 부모유산 가로챈 거 얼마나 가나 두고 볼 거야.”

    나는 다시 냉수 한 컵을 죽 들이키고 그 다음을 읽어 내려갔다.
    
    <<“유산뿐만이 아냐. 언니는 내 모든 것을 뺏어갔다고. 난 언니 그늘에 가려서 빛도 한번 제대로 못 보고 자랐어. 언니 그거 알아? 모르지? 언니는 모를 거야. 내가 어떻게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엉엉 어어엉··· ···.”

    악을 쓰며 통곡을 하더니 애경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응접실의 집기를 박살내기 시작했다. 도자기와 조각품들을 대리석 바닥에 내동댕이치니 쩽그렁 쩽그렁하는 소리가 고막을 찢었다. 금세라도 뭐든지 집어 들고 미경의 정수리를 내리칠 기세였다. 그녀는 무섭고 떨려서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얼른 이 자리를 피해야 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인데 소파에서 엉덩이가 떨어지지 않았다.  

    ‘말이 그렇지 설마 네가 나를 죽이기야 하겠니?’>>

    애경이가 때려 부수는 장면이 영화를 보듯이 내 눈앞에서 재현되었다. 강미경이 직접 체험한 일이 분명했다. 나는 소설을 완전히 현실로 받아들이며 다음을 읽어 내려갔다.  
    
    <<응접실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다음, 동생은 식탁의 의자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유리창을 박살내기 시작했다. 애경의 난동은 한참 계속되었다. 응접실에서 정원으로 나가는 두껍기 그지없는 유리문이 단번에 우장창, 우장창하고 깨졌다.  

    갑자기 딩동댕동하고 벨이 여러 번 요란스럽게 울렸다. 언젠가 한번 경찰을 부른 적이 있는 옆집 사람이 또 경찰을 부른 것이다. 그제야 제 정신이 들었는지 애경은 행동을 멈추고 그 능란한 화술로 경찰에게 사건의 경위를 설명했다. 미경은 차마 동생의 손목에 수갑을 채울 수가 없었다. 또 다시 그런 일이 있으면 애경을 위해서라도 경찰에 넘겨주어야 한다고 남편이 누누이 말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현장을 목격한 경찰이 애경에게 혹시 수갑이라도 채울까봐 미경은 동생을 두둔하기까지 했다. 경찰은 알았다며 금세 돌아갔다.

    한바탕 악몽을 꾸고 깨어난 기분이었다. 그동안 돈 관계로 인해 동생한테 시달려 온 미경은 부모의 유언장에 쓰인 약속을 더 이상 지킬 수가 없었다. 항상 작은딸 때문에 속을 썩이던 부모는 애경이한테 큰돈을 물려주면 금세 다 탕진할 것 같아서였는지 큰딸인 미경에게 모든 것을 위임했었다. 그들에겐 큰딸이 동생을 철저하게 잘 돌봐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그녀 역시 동생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책임이니 잘 돌봐야 한다는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계속 돈을 대주면서도 이렇게 시달려야 하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제는 애경이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고 동생으로부터 놓여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애경은 나를 찾아와서 늘 언니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가슴 한쪽 구석엔 애경이도 이젠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잠재해 있는 것은 분명한데,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오는 그녀를 내치지는 못했다.

    그 당시, 내겐 애경이 외에는 아무도 찾아오는 이가 없었다. 전화도 한통 없고 주말인데도 만나자는 사람 하나 없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암울한 처지에 놓여, 나는 외로움과 배신감이라는 악순환 속을 헤매고 있었다. 어느 때보다도 위로가 필요한 때였다. 아주 절실하게.    

    그런 내게 위로는커녕 도리어 상처를 주는 애경이었지만, 나는 정반대의 모순 속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전화라도 하고 오지 그랬어? 내가 없음 어쩌려고?”

    “없으면 그냥 가면 되지.”

    그녀의 대답은 항상 단순하고 간단했다. 애경은 자신의 큰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색감과 혼란한 무늬들이 눈을 어지럽히는 차림새를 하고 와서 하소연을 했다. 내면의 상태와 외면의 상태가 극과 극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소설에서 모양 난동을 부린 얘기는 한 적이 없다.  

    “왜 언니는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없니? 어릴 때도 그랬어. 착하고 공부 잘하고 예쁘고, 어딜 가도 언니만 인기였어. 난 말야 언니가 내 눈앞에서 망해서 꼬꾸라지는 꼴을 보고 싶어. 부모 유산 몽땅 가로채 잘사는 꼴을 볼 수가 없어.”

    친자매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애경은 언니에 대해 깊은 원한이 사무쳐 있었다. 어느 땐, 부르르 떨면서 탁자를 쾅쾅 쳤다. 하소연이라기엔 도가 지나쳐 섬뜩함이 느껴질 적도 있었다. 오죽하면 저럴까 하고 누구한테든 털어놔야 속이 좀 풀리겠지 하는 마음에서 들어주었을 뿐, 나 역시 그녀에게 위로는 되지 못했다. 바른 말을 해, 도리어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다.

    “언니가 유산 가로챈 거 아니잖아. 유언장에 쓰인 대로 했다며? 네가 지금 유산 반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려 그 돈을 받으면 뭐할 건데? 언니가 매달 생활비는 꼬박꼬박 주고 있잖아. 너, 일도 안 하고 그 돈으로 여행 다니며 잘살고 있는데 왜 그래?”
  
    애경은 여행을 자주 다녔다. 여행은 생각조차 못하는 내 앞에서 그녀는 어디어디를 다녀왔다면서 그곳의 풍경들을 늘어놓곤 했다. 한참 동안 소식이 없을 때, 그녀는 여행 중이었다.    

    “그리고 언니가 잘사는 게 꼭 유산 때문만은 아니잖아.”
    
    이민우는 운이 따랐다. 장인의 돈을 바탕으로 시작한 사업이 불을 붙듯 번창했다. 머리 좋은 그는 특수글루를 발명하여 정부로부터 특허를 따, 세계 각국에 수출을 하게 된 것이었다. 한국신문에서도 대서특필을 했었다.
    그때, 문짝만한 이민우의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그만 천길만길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는 듯이 눈앞이 캄캄했고, 심장이 덜컥거리며 비안개가 지면을 덮어버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정신을 가다듬고 그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어린 시절이 그리 무사태평하지 않았는데도 그의 얼굴은 항상 태평성대를 누리는 사람 같았다. 사진으로 보니 더 그랬다. 웃음기가 전혀 없는데도 그의 표정은 아주 온화했다. 사업가보다는 외국 영화배우를 연상케 했다.      

    나는 머리를 몇 번 세차게 도리질을 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힘주어 뜨고는 ‘외형경쟁서 이기는 것보다 새로운 시장이 얻는 게 많아’ 라는 제목하에 그가 기자들과 인터뷰한 기사를 한 자도 빠뜨리지 않고 다 읽었다. 경영면에 있어서도 그의 뛰어난 재능을 공포하는 글이라 생각됨과 동시에 인생의 경영철학도 엿볼 수 있는 글이었다.

    “도대체 너는 뭐니? 천사야? 어떻게 너는 네 친구인 내 편을 안 들고 너의 원수인 언니 편을 드니? 네가 사랑하는 남자를 뺏어갔는데도 아무치도 않아? 그렇게 당하고도 모르겠어? 나 같음 그냥 탕. 탕. 탕··· ···.”

    그녀는 나를 겨냥하고는 총 쏘는 시늉을 하면서 얼굴을 확 구겼다.

    “둘이서 지금 얼마나 알콩달콩 재미나게 잘살고 있는지 알아?”

    알콩달콩 재미나게 잘 산다는 말에는 갑자기 가슴이 싸아-- 했다. 가끔 애경은 언니를 향한 질투의 감정을 끓이다가 그 끝머리에 나를 등장시켰다. 나를 배려하는 말투는 전혀 아니었고 언니와 형부를 더 악질로 몰기 위해 그들에게 배신당한 나를 갖다 붙이는 것이었다.
    
    애경은 내게 자신의 신상문제에 대해 모든 것을 다 토로했으나 나는 무슨 일에서건 애경에게 내 맘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이민우와 어찌 알게 되었느냐, 이민우 아버지는 뭐하는 사람이냐 등등, 그녀가 꼬치꼬치 캐물었을 때도 나는 자세한 얘기를 하기가 싫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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