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연재> 침묵의 메아리 15

2011.04.22 12:44

김영강 조회 수:620 추천:97


-토요연재소설-

  침묵의 메아리


  제 15회



   집에 오는 길에도 크리스틴은 말을 많이 했다.

   “선생님, 제가요, 양로원에 처음 갔을 때,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어찌나 놀랐는지요····. 놀랐다기보다는 너무 쇼크를 받아 헉하고 숨이 막히는 줄 알았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숨에 찼다.    

   “호호 백발노인들이 휠체어에 앉아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는데····. 저는 그만 ‘으악’ 하고 경악했어요. 하마터면 소리가 밖으로 나올 뻔했어요. 눈의 초점도 없고, 아무런 표정도 없고, 그냥 우두커니 앉아 있는 모습이 산 사람 같지가 않았어요. 사람이 들어서는 기척도 못 느끼는지 아무도 저를 쳐다보는 노인이 없었어요. 바닥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창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어디를 보고 있는지도 모르게, 그냥 허여멀건한 눈동자를 뜨고만 있고. 모두가 취한 자세 그대로 움직임이 없었어요. 정말로 꼼짝을 안 했어요. 순간적으로 섬뜩했어요. 그 자리를 얼른 모면하고 싶어 부리나케 할머니 병실로 향하는데, 복도 분위기는 다행히 생기가 있었어요.”

   나는 한 번도 양로원에 가 본 적이 없어 그녀의 얘기에 관심이 쏠렸다. 한국에서 대학 다닐 때, 들은 얘기가 언뜻 떠올랐다.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간호원들이 빠르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고,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들도 바퀴를 구르며 움직이고 있었어요. 조금은 숨통이 뚫렸지만 소독약 냄새도 강하고 해, 답답한 건 마찬가지였어요. 그러나 이제는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졌어요.  “하하하” 하는 웃음소리도 자주 들리구요.”

    그녀는 양로원 풍경을 계속해서 그려냈다.

   “할머니는 휠체어에 바로 앉을 수가 없어, 아예 의자에 묶어요. 그리고 바깥 정원에 나가서 햇빛을 봐요. 한번은 우리 옆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밥을 떠먹여드리고 있었어요. 둘 다 구십이 넘어보였는데, 할머니는 몸을 못 움직여 양로원에서 기거하고, 할아버지가 매일 와서 소소한 시중들면서 말동무해 드린다고 했어요. 밥 떠먹여드리는 할아버지 손도 벌벌 떨렸어요. 받아 드시는 할머니의 입도 제대로 벌어지지 않고 부들부들 떨리기는 마찬가지이니 밥이 제대로 들어가겠어요?”

   크리스틴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노부부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면서 가슴이 찡해왔다.  

   “할머니가 아기 모양으로 턱걸이를 하고 계셨는데 거기에 온통 밥풀 투성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놀란건요, 할아버지가 그 밥풀을 손으로 떼서 본인이 잡수시는 거였어요. 할머니가 그만 먹겠다고 도리지를 하니 입 가장자리에 붙은 밥풀까지 떼다가 할아버지 입으로 가져가더라구요.”

   할머니 병문안을 다니면서 그녀는 새로운 세상을 본 모양이다. 나 역시 그녀를 통해 몰랐던 세상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할머니 하나는 옛날에 러시아의 유명한 발레리니였다고 해요. 그렇게 많이 늙어보이지도 않는 여자였어요. 긴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리고,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창밖만 내다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어 제가 간호원한테 물어봤거든요. 간호원 말이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도통 말을 안 한대요. 괜히 그 여자한테 관심이 생겨가지고 갈 때마다 눈여겨보게 됐어요. 다른 할머니들하고는 뭔가 분위가가 아주 달랐어요. 근데 참 슬퍼보였어요.”

   크리스틴의 얘길 들으니 나는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다. 내 시야의 폭은 앞만 보았지, 옆은 완전히 막혀 있었다.  

   차 안에서는 통증을 그리 심하게 느끼지 못했는데, 내려서는 크리스틴의 부축을 받았지만 발걸음 뗄 수 없었다. 도로 업혀야만 했다. 식탁에 마주 앉아 차라도 같이 나누고 싶었으나 그럴 처지가 못 되었다. 앉아도 서도 왼다리의 통증은 여전했고, 치료를 받고 온 날은 더 아팠기 때문이다. 아파트엘 들어와 나는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아래쪽에 이불을 쌓아 왼다리를 높이 올려놓고 똑바로 누워 있는 것이 가장 편안했다.

  금세 가리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그녀는 싱크대에 놓여 있는 스펀지를 집어 들고 냉장고 안을 닦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괜찮아. 크리스틴. 그대로 둬.”

  약간 언성을 높인 목소리가 총알처럼 튀어나왔는데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을 계속했다. 아까 음식을 넣을 때도 속이 너저분해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이제는 닦기까지 하고 있으니 더 불편했다.   어질러져 있는 싱글 아파트도 그렇고, 내 치부를 학생에게 내보인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다.

  “그냥 두라니까.”

  한번 더 강조를 하는데도, 그녀는 엄마가 꼭 청소해 드리고 오라 그랬다면서 그만두지 않았다. 내 싱글 아파트는 거실과 부엌과 침실이 한눈에 보이게 돼 있어 그녀가 냉장고와 마주 서면 침대 쪽에서는 그 표정까지도 살필 수가 있게 가구 배치가 되어 있었다.

  한참 걸려 냉장고 안을 다 닦은 다음, 그녀는 싱크대를 닦았다. 수도 뒤 구석구석을 안 닦아 까만 선을 친 것처럼 곰팡이가 끼어 있는 사실을 알기에 나는 또 얼굴이 붉어졌다. 이민우가 들랑거릴 때는 청소하는 데에 신경을 많이 썼으나 그가 떠난 이후로는 만사가 귀찮아 모든 것이 엉망이 돼버렸다.  

  크리스틴은 한마디 말도 없이 내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열심히 싱크대를 닦았다. 경험으로부터 몸에 밴 노련한 솜씨였다. 손 하나 까닥 않고 공주처럼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구석구석을 닦고 또 닦았다. 차에서는 양로원 얘기를 계속하더니 집에 와서부터는 입을 다물고 청소에만 열중했다.

  나는 애론의 배려로 학교 부속병원에서 자세한 검진을 받았다. 병명은 디스크였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사이의 디스크가 흘러나와 왼다리의 신경을 누른다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판정이 났으나 닥터 윌헴은 한방 치료를 해보고 낫지 않을 경우는 수술을 받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했다. 나는 그녀의 말이 무조건 다 옳은 것 같았다.

  첫날 치료를 받은 후 며칠 동안은 통증이 여전히 계속됐다.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도 왼편 엉덩이에서부터 발끝까지가 심하게 아팠다. 기침이 나오려고 하면 왼다리를 엉거주춤 들면서 몰려오는 통증을 견디기 위해 미리 자세를 취해야 했다.

  진통제를 먹었는데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밤에는 더 심했다. 왼다리가 어찌나 욱신거리는지 잠을 잘 수 없었다. 등뼈 사이사이에 못을 밖아 놓은 것같이 돌아누울 수도 없고 숨을 편히 쉴 수도 없었다. 디스크라는 병이 이리도 고통이 심한 것일까. 뭐 다른 죽을병은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생겼다. 엉덩이에서부터 발가락 끝까지 내려오는 통증을 뼈아프게 느낄 땐, 혹시 뼈에 몹쓸 병이 생긴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잘라내야 하는데 어디를 어떻게? 하고는 상상을 하다가 엉엉 울어버리기도 했다. 견딜 수 없도록 몸이 아프고 보니 마음 아픈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랑? 이민우? 그런 건, 죽을 것 같은 육체적 고통에 비하면 정말 하잘 것 없는 것이었다.
    
   두 번째 치료를 받으러 갔을 때, 좀 더 강력한 코데인이라는 진통제를 주었는데도 듣지를 않았는데 희한하게도 3주쯤 지나니까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한약을 먹으면서부터는 더 빨리 회복이 되는 기분이었다. 정신이 반짝하며 세상의 사물들이 선명하게 눈에 비춰졌다. 참 신기했다. 살살 움직여 벽을 짚고 걸을 수도 있었다. 천장을 향해 반듯이 누우면 등이 곧게 펴졌다. 시리고 아팠던 등뼈들이 풀리며 척추를 타고 온기가 올라왔다.

   그러나 자다가 헛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무섬증도 여전했다.

   크리스틴이 라이드를 주었을 때, 차 안에서 그녀와 얘기를 한 것이 잊히지가 않았다. 내용이야 어쨌든 간에 그녀가 내게 마음을 열었다는 것이 고마웠다. 무척이나 다정다감한 아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두 번째 라이드를 주었을 때였다. 집 안 청소를 말끔하게 끝낸 그녀는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비뚤어진 액자까지 똑바로 정리를 하고서는 식탁의자를 끌어다가 침대 곁에 놓고 내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나는 마다않고 그녀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음이 분명했다.

  내 짐작은 적중했다.

  “선생님, 옛날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제 얘기예요.”

  여느 때와는 달리 그녀의 눈빛이 유난히 초롱초롱했다. 뭔가 얘기를 하려고 작정을 한 사람 같았다.

  우리는 식탁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식탁 의자 두 개를 붙여놓고 두 다리를 펴고 편안하게 앉았다.

  “괜찮으세요? 아직 누워계시는 것이 더 편안할 텐데요.”

  “괜찮아. 너무 누워 있었더니 등짝이 다 아파. 오늘은 한결 나아.”

  “제가 미국으로 입양이 된 것은 열네 살 때였지만, 사실은 세 살 때 친부모한테서 버려졌어요. 그리고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어느 집에 입양이 되었고, 또 버려져서 다시 고아원으로 갔어요. 결국은 한국 땅에서도 버려져 미국까지 오게 됐어요.”

  처음 듣는 그녀의 과거가 잔잔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얘기는 처음 입양이 된 후부터 시작되었다. 친부모의 얘기는 건너뛰었다. 세 살 때 일이니 아마도 기억에 없을 것이다.  <계속>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3
어제:
26
전체:
74,6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