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연재> 침묵의 메아리 16

2011.04.29 11:55

김영강 조회 수:552 추천:94

-토요연재소설-

  침묵의 메아리


  제 16회



   크리스틴이 일곱 살 때, 처음 입양이 된 곳은 서울에 있는 최씨 집안이었다. 그리고 이름도 경희로 탈바꿈을 했다. 시골의 어느 한 동네에 자리 잡은 허름한 고아원에서 살다가 번화한 서울로 온 것만도 눈이 부신데 입양이 된 집은 그녀가 생전 처음 보는 으리으리한 저택이었다. 집 안에 들어서면서 그 웅장한 내부시설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이런 건 다 둘째 문제였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녀에게 별 의미가 없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춥고 배고프지 않은 것이었다. 고아원에 있을 때는 항상 배가 고팠다. 오래 울음을 그치지 않거나 말썽을 피울 땐 밥을 굶겼다. 그리고 때렸다. 서너 살 먹은 아이들은 자연히 훈련이 되어 일찍부터 삶을 터득해 입을 꼭 다물고 눈치만 보며 살아야  했다.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들, 역시 고아원에서도 버려진 아이나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 입양이 됐을 땐, 그 이유가 좀 특별했어요. 제 양부모가 하나님하고 서언약속을 했기 때문이랬어요. 좀 이상하죠? 양아버지가 이유 없이 몸이 많이 아팠대요. 전신이 저리고 몸이 뒤틀리게 아파 병원엘 갔으나,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어 하나님께 매달렸는데 양아버지가 신의 음성을 들었대요. 아이를 하나 입양하라고요. 믿기지 않죠. 근데 진짜 그랬대요. 양아버지는 꼭 입양을 하자는 마음이 아닌 상태에서 참 이상한 일도 있다는 뜻으로 양어머니한테 말을 했는데, 양어머니가 절실한 기독교 신자라 일을 추진해서 저를 입양하게 된 거였어요. 그걸 서언기도라고 한대요. 선생님도 들은 적 있어요?”

   나도 들은 적이 있는 말이었지만, 정말 그녀 말대로 믿기지 않는 얘기라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었다.

   “그래. 나도 알아. 근데 서언기도는 하나님과의 약속이라 꼭 지켜야 하기 때문에 함부로 약속을 하면 안  된다고 그러던데····.”

   “아. 선생님도 아시는구나. 그렇죠. 꼭 지켜야 하는 약속인데 그게 지켜지지가 않아 나는 또 버려지고 말았어요.”
  
   입양을 한 후, 정말 기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양아버지의 몸은 씻은 듯이 다 나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리고 양어머니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식이라며 크리스틴을 애지중지하며 사랑을 듬뿍 쏟았다. '엄마.' 라는 말이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입 밖으로 나왔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녀는 이 천국의 끝자락에서라도 오래오래 붙어 있어야 한다는 다짐을 수없이 하면서 최선을 다해 양부모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녀가 6학년이 됐을 때 양어머니가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인생이 왜 이리 힘든지 그녀는 울고 또 울었다. 왜 이리 가혹한 벌을 내리시는지 신이 원망스러웠다. 천국 생활 5년 만에 크리스틴은 또 지옥으로 굴러떨어지는 기분을 맛보아야만 했다.

   양아버지는 여느 때도 그녀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아 엄마만 믿고 살았는데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는 슬픔보다는 앞길이 걱정이 되어 고통스러웠다.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하나?’

   양아버지로부터 또 버려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밤마다 버려지는 꿈을 꾸었고, 결국은 버려져서 길거리에서 울며 해매는 자신을 발견했는데, 그녀는 세 살 난 어린아이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정말 세 살 난 아이처럼 굴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걸핏하면 앙앙 울었다. 다시는 고아원에 안 간다고 떼를 썼다. 극도로 불안한 상태에서 나타난 소아우울증이었다. 그대로는 둘 수 없는 상황이라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았고, 증세는 차츰차츰 회복이 되었다.

   그즈음에 양아버지는 재혼을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 열 달 후였다. 아주 젊은 여자였다. 알고 보니 아버지보다 무려 20여 년이나 아래였다. 크리스틴에게는 언니뻘의 나이였다.

   어느 호텔에서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는데 크리스틴은 초대받지 못 했다. 아버지는 젊지 않는 나이에 하는 두 번째 결혼이라 그냥 조촐하게 하려 했으나, 그 여자는 첫 결혼이라 모든 것이 그 여자가 원하는 대로 진행이 되었다.

   “그 다음부터 내게 불행한 일이 연속으로 일어났어요. 고아원에서 춥고 배고팠던 건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새어머니의 첫 인상은 아주 차갑고 무서웠다. 입술이 푸르스름한 것이 제일 먼저 눈에 띄어 크리스틴은 온몸이 오싹하는 추위를 느꼈다. 그날이 추운 겨울 저녁이긴 했지만 그 여자의 얼굴이 더 추워보였다. 밖은 비가 올 것같이 우윳빛 안개가 잔뜩 끼어 있었다. 푸른 코트에 얼룩덜룩한 회색 목도리를 한 여자가 집 안에 들어섰을 때, 크리스틴은 하나도 반갑지가 않고 허무하고 혼돈스러운 감정이 앞섰다. 그래도 어색한 웃음이었지만 미소를 띠우며 인사를 했다. 그 여자는 키가 아주 작아 크리스틴을 올려다보았는데, 그 눈매가 매서웠다.

   새어머니는 크리스틴을 양녀로 입양한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더구나 양녀가 있다는 걸 속이고 결혼을 했으니 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실수였다.

   ‘나의 존재를 부정하면서까지 그 여자와 결혼을 한 아버지.’

   시커먼 구름이 몰려오는 앞날이 눈앞에 보였다. 정부시설에 맡기라고 그 여자는 끈질기게 요구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양부모도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가 있는 아이는 시설에 맡겨질 수가 없었다. 둘은 자주 싸웠고 새어머니의 구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계속되었다.

   “나를 노예처럼 부려먹으면서도 쫓아내지 못해서 만날 아버지랑 싸우는 거였어요. 일하는 아줌마가 있는데도 저를 새끼 식모로 부려먹었어요.”

   새끼 식모라는 말이 서글프게 들리는 데도 나는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아줌마도 새어머니랑 마찰을 빚었다. 그러나 아줌마는 쫓겨나도 갈 데가 있지만 그녀는 갈 데가 없었다. 크리스틴은 자신의 인생이 하루뿐인 양, 그 하루에 최선을 다하며 항상 쫓겨날까 봐 강박 관념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웠다. 아줌마도 “사모님 계실 때는 참 좋았는데··· ···.” 하고는 엄마 얘기를 자주했다. 그리고 나가기로 결심을 한 날, 아줌마는 진심으로 크리스틴 걱정을 했다.

  “내가 나가면 경희는 어떡하지? 보나마나 다른 사람을 구하지도 않을 텐데··· ···.”

   그렇지만 아줌마로서도 대책이 없었다. 아줌마가 나간 후, 그녀 말대로 일하는 사람을 구하지 않았고, 그 큰 집의 청소는 크리스틴이 도맡아야 했다. 거실에는 자질구레한 장식품들이 많았다. 손가락 크기의 각 나라 인형들이 수도 없이 많이 진열이 돼 있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닦고, 바닥을 닦은 후에 다시 진열을 하려면 시간이 꽤 걸렸다. 새어머니가 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사다 모은 장식품들이었다. 어린 크리스틴 눈으로 봐도, 너무 조잡하고 유치했다. 알록달록한 색깔들이 눈을 어지럽혔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쓰던 가구들도 몽땅 바꿔버렸다. 단순하게 디자인이 된 짙은 브라운 가구들이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색으로 변했다. 직선들로 깔끔하게 정리정돈이 되었던 실내가 온통 울퉁불퉁한 굴곡 속에 혼선을 빗고 있었다. 거기에 올망졸망한 조각들이 잔뜩 붙어 속속들이 닦아 내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결벽증이 있을 정도로 먼지 한 점에도 못 견뎌하는 여자가 그 취미는 또 정반대라 참 알쏭달쏭했어요. 옷가지들도 옷장에 가지런히 걸어놓지 않고 침대 위에 어지럽게 늘어놓곤 했고요.”

   갑자기 애경이의 아파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제가 보기에도 무당집 같아 정신이 없었는데, 아버지는 그 여자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어요. 입양한 아이가 있다는 걸, 비밀로 한 이유였다면, 내게도 책임이 있으니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보다는 도리어 불쌍했어요. 거짓말을 할 만큼 그 여자를 놓치기 싫었던 아버지의 감정이 이해가 됐기 때문이에요.”

   그 당시 겨우 중학생인 아이가 정말 세상을 다 산 어른 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엄마한테는 아이가 없었는데, 재혼을 한 후, 그 여자가 바로 임신을 했으니 오죽했겠어요.”

   크리스틴에게 불이익이 되는 일만 자꾸 일어나 그녀는 갈수록 불안했다. 아이를 낳으면 자기는 그냥 쫓겨날 것만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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