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연재> 침묵의 메아리 18

2011.05.13 11:44

김영강 조회 수:687 추천:97


-토요연재소설-

  침묵의 메아리


  제 18회




   “실은 제 본이름이 선생님과 비슷해요. 이 혜 주. ‘혜’ 자가 선생님은 ‘아 이’ 이지만 저는 ‘여 이’ 예요. 발음이 비슷하잖아요?”

   “그래? 그것도 인연이네.”

   인연이라는 말이 참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정색을 하고 활짝 웃었다.

   “그렇죠? 첫 시간에 선생님의 이름을 듣는 순간, 뭔가 가슴에 확 닫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선생님께 관심이 생겼는지도 모르겠어요. 쓸데없이 버려진 이름이지만요. 친부모가 나를 버릴 때, 그래도 이름이랑 생년월일은 남겨놓은 모양이에요. 그 다음, 둘째 번 이름은 최. 경. 희. 그리고 미국 온 후에는 크리스틴 리가 됐죠. 지난번에 얘기한 거는 2부고요, 미국 입양은 3부, 오늘은 1부 얘기해드릴게요.”  

   그녀는 잔잔하게 고아원 이야기를 풀어냈다.  

  “철이 들어 눈을 떠보니까 거기가 고아원이었어요. 세 살 때, 어느 집 앞에서 울고 있는 것을 그집 아줌마가 데려왔대요. 고아원에 있을 때 일들이 별로 기억나지 않지만 늘 곰인형을 갖고 논 기억은 아주 선명해요. 잘 때도 안고 잤어요.”

   1부 얘기는 시작부터 나를 빨려들게 했다.

   “그리고 가끔 어떤 자선단체에서 애들 선물이랑 고아원에 필요한 물품들을 트럭에다 잔뜩 실어 보내주었는데, 그 트럭 운전수 아저씨가 저를 특별히 귀여워해준 게 생각나요. 그 아저씨는 나한테만 특별히 따로 선물을 주기도 했어요.”

   세 살, 곰인형, 운전수 아저씨라는 세 어휘가 내 뒤통수를 내려쳤다. 어느 집 앞에 버려졌고 그 집 아줌마가 데려왔다는 말도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이어지는 그 다음 말에는 뒤통수가 깨져버린 듯이 정신이 멍해졌다.

   “한데, 좀 큰 후에 생각을 해보니까 그 아저씨가 혹시 내 아버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이 들었어?” 하고 묻는 나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도는 ‘위잉-’ 하는 잡음 때문에 내게는 전달이 안 되었다. 대답하는 크리스틴의 음성도 모아지지가 않고 허공에서 흩어졌다.  

   “그냥 제 느낌이 그랬어요. 제가 서울로 입양이 되기 바로 전에 그 아저씨가 동화책이랑 연필이랑 필통이랑, 학습도구를 잔뜩 사 가지고 고아원에 찾아 왔었어요. 그리고는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 되라면서 저를 꼭 껴안아 주셨어요. 틀림없어요. 일곱 살 때의 일인데도  그 기억만은 아주 생생해요. 지금 생각하니 더 확실해요.”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가 나는 또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고아원 말야. 지난번에 얘기할 때 시골에 있는 고아원이라고 했는데, 어딘지 기억나니?”

   “그럼요. 대전이었어요. 대전시내도 아니고 아주 시골 같은 곳이었어요.”

   뒤통수가 깨진 것처럼 멍해졌다. 가슴에서도 뭐가 ‘쿵!’ 하고 떨어져 내렸다. 바로 튀어나와야 할 ‘어마나, 나도 대전에서 살았는데····.' 라는 말이 입속에서 머물렀다. 입술을 뗄 수가 없었다. 눈앞이 안개가 끼인 것처럼 어슴푸레해 지며 몸이 허공에 붕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 수소문을 하면, 찾을 수도 있을 텐데, 한번 만나보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은 없어?”

   “아뇨. 없어요. 나를 버린 게 확실한데 뭐하러 만나요? 어쨌든 간에 친아버지는 봤잖아요. 나를 낳은 부모가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은 풀렸으니까요. 그런데 선생님····.”

   말을 잠시 중단하고 크리스틴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저를 낳은 부모도 자식을 버릴 정도니 분명히 불행한 사람들이었을 것이고, 서울 양부모도 불행하게 됐고····. 어머니는 돌아가시기까지 했잖아요? 지금 부모님도 오빠 때문에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사는데 혹시 앞으로 무슨 일이 날지 모르잖아요? 무서운 생각이 들어요. 꼭 제가 불행을 몰고 다니는 것 같아서요. 선생님하고 친해지는 것도 겁이 나요. 선생님한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어떡하죠?”

   아이가 극도의 상상까지 하고 있었다. 내가 말을 할 틈도 안 주고 그녀는 바로 다음 말을 이었다.

   “근데 참 이상해요. 저는 제가 앞으로 꼭 불행해질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들어요.”

   내게 마음을 연 그녀에게서 밝은 미소를 보게 되어 기뻐하고 있었는데, 희망이 절망으로 곤두박질을 치는 순간이었다. 예전의 크리스틴 보다도 더 침울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또다시 우울증에 시달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녀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말로 위로를 해야 하는데 말주변이 없는 내가 한심하고 답답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니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그녀의 말을 자르는 수밖에 없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이민우의 그림자가 떠나지를 않았다. 잠이 쉽게 들지 않았다. 어머니 말씀이 떠오르며 가슴이 답답했다.

   “민우한테 이복 여동생이 있단다. 세 살짜리 계집애가 곰인형을 안고 집 앞에서 울고 있는 거를 그 여편네가 고아원에 갖다 맡겼댄다. 쉬쉬했지만 소문 들으니 계집애가 민우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고 하더라. 앨 버린 엄마나, 고아원에다 갖다버린 그 여편네나···. 참 독하다 독해. 애가 무슨 죄가 있냐. 그러니까 민우 아버지가 죽일 놈이지. 뻔히 알면서 지 여편네가 하는 대로 내버려뒀으니까 말야. 그야 민우가 있는 것도 속이고 결혼을 했다니 지 여편네한테 꼼짝을 못했겠지. 그뿐인 줄 아냐. 지금도 그 버릇 여전하다고 그러더라.”

   세 살짜리 여자아이. 곰인형. 고아원. 대전 ··· ···. 범벅이 된 어휘들이 귓가에 맴돌았다. 흐릿하게 시야에 비친 어둠 속의 사물들이 범벅이 되고 있었다.

   ‘틀림없어. 틀림없어.’

   이민우는 크리스틴이 피를 나눈 여동생이라는 것을 상상조차 못할 것이다. 아니 그녀의 존재조차도 모를 수 있다. 이제 나타나서 ‘크리스틴이 당신의 동생이오.’ 하면 인정을 할 리가 없다. 어쩐지 둘 사이에는 뭔가 닮은 점이 있었다. 큰 키와 하얀 피부와 이국적인 얼굴··· ···.

   ‘지금 크리스틴에게 진실을 밝혀봐야 무슨 소용이 있으랴. 혼란만 가져오지 않을까?’

   크리스틴은 어느새 잠이 들어 곤한 숨을 쉬고 있었다.  

   어느 날 다 늦은 저녁때였다. 뭐든지 먹어야 하겠기에 약밥을 녹여 녹차 한 잔과 함께 식탁 앞에 앉아 있는데 애경이가 들이닥쳤다.

   “약밥이구나.”

   애경은 하나 남은 의자를 식탁에 바짝 당겨놓고는 앉자마자 약밥을 한입 잔뜩 집어넣었다.

   “야아, 이거 굉장히 맛있다. 마켓에서 파는 거하고는 영 다르네. 네가 만들었을 리는 만무하고, 누가 해준 거야?”

   “응. 학부형이··· ···.”

   그 학부형이 크리스틴 어머니이기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애경이하고도 걸리는 사이기 때문이다. 나는 뒷말을 흘리고 냉동에 얼려 둔 약밥을 더 꺼내 녹이고, 차 한 잔을 타서 그녀 앞에 놓았다. 애경은 약밥 두 덩이를 먹어치웠다. 그리고는 들고 온 비닐봉지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지금 저녁 먹고 오는 길인데, 많이 남아서 너 먹으라고 싸갖고 왔어.”

   “저녁을 먹었는데 약밥이 저렇게 들어갈까.” 하고 생각하며 나는 그녀가 싸들고 온 음식을 우두커니 내려다봤다. 김치에서부터 생선조림, 그리고 몇 가지가 더 있었다. 파헤쳐진 것들이 다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야 할 것들이었다. 맘이 안 내켰으나 조금은 먹는 시늉을 했다.

   한참 만에 애경은 내 얼굴을 찬찬히 살피더니 물었다.

   “얼굴이 못쓰게 됐구나. 어디 아프니?”  

   “다리가 좀 아팠는데, 이젠 다 나았어.”

   그녀는 건성으로 질문만 던졌지 내가 아픈 데에 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곧이어 화제를 바꾸고는 뉴욕에 여행을 다녀왔다면서 그곳의 풍경을 설명하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이번 여행, 폴이랑 같이 갔댔어.”

   폴 얘기는 여러 번 들었다. B법대를 졸업하고 지금 유명한 로펌에서 일하고 있는 변호사라 했다. 귀가 따갑도록 그의 자랑을 늘어놓아 나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었다. ‘그렇게 잘난 사람이 어떻게 너 같은 거하고 사귀겠니? 또 바람둥이 유부남이겠구나.’ 하고.

   “네 얘기도 했어. 나랑 제일 친한 친구가 B대 다닌다고 말야. 다음에 같이 한번 나오래. 근사한 데서 저녁 사주겠대.” 하고 말했을 때는 속이 약간 뒤집어졌다. 그리고 제일 친한 친구라는 말이 아주 불쾌했다.

  ‘네가 누굴 만나든 간에 그건 네 문제이니 제발 나를 끌어들이지는 말아줘.’ 하는 말이 입안에서 빙빙 돌았었다. 그리고 그 후에 바로 그 사람 소개시켜 주겠다고 두 번이나 불러냈지만 한마디로 잘랐었다.

   남자 얘기에 나는 신물이 났다. 올 때마다 남자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해, 한번은 그딴 얘기하려면 다시는 오지 말라고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다.

   “아직도 이민우한테 목매달고 있니? 너 똑똑한 줄 알았더니 아주 바보구나. 이민우 벌써 결혼하고 아들도 낳았다고. 너를 배신한 나쁜 놈이야. 이빨 박박 갈고 더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해야지. 너 지금 학생신분으로 무지 고생하고 있는데 결혼만 잘 하면 만사가 다 해결돼. 공부는 결혼하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이민우가 너 차버리고 결혼했는데, 결혼해서 멋지게 복수해야지.”  

   어느 땐 학부형이 소개를 해 곧 선을 본다고 둘러대기도 했었다.    

   “얘기 들으니 그 남자, 이민우보다 훨씬 더 조건이 좋으니 너한테는 아주 전화위복이 된 거야. 지금은 사랑과 조건을 맞바꾸어 먹는 시대야. 연애를 하다가도 조건 좋은 남자가 나타나면 헌신짝처럼 차버리고 옮겨가는 것이 요즘 세상이야. 몇 번 만나보고 사람 괜찮으면 그냥 결혼해. 너 결혼만 하면 영주권도 해결되잖아. 이민우 그 새끼는 나쁜 놈이야. 이제는 제발 좀 잊어버려.”

   거절을 할 때마다 애경은 꼭 이민우를 끌어다 붙였다. 정말이지 그녀로부터 이민우의 얘기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고 애경이조차 지겨워 끊어버리고 싶은 심정이 갈수록 심해졌다.


   “이 옷도 뉴욕서 산 거야. 예쁘지?”

   그녀의 취향대로 역시 화려한 옷이었다. 물방울무늬가 볼록볼록 튀어나오게 옷 전체에 수를 놓은 실크 원피스였다. 분홍색 바탕에 크고 작은 빨간 무늬들이 눈을 어지럽혔다.  

   “어디 파티에라도 가는 사람 같구나.”    

   애경의 옷차림은 항상 특수했다. 아니, 이상했다. 이십대 여자애들은 평상시에 주로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는다. 꼭 청바지가 아니더라도 바지를 즐겨 입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녀는 늘 파티에라도 가는 것처럼 화려한 원피스나 투피스로 정장을 하고 다닌다. 주로 붉은 색 계통의 옷이었다.

   분홍색 바탕에 커다란 빨간 꽃무늬 몇 개가 여기저기에 흩어진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을 땐, 진짜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깨에 볼록하게 주름을 잡은 것도 그녀의 큰 덩치에는 어울리지 않았고, 아래로 내려오면서 점점 폭이 좁아지는 무릎까지의 디자인은 더 어울리지 않았다. 저걸 입고 어떻게 발걸음 뗄까 하고 불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다행히 앞단이 트여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정강이가 훤하게 드러나기는 하나 걷는 데는 불편이 없는 듯했다. 또 어떤 때는 세트로 모자까지 쓰고 있었다. 그녀의 차림새에서 나는 가끔 18세기 여인네들을 연상하면서 혼자 속으로 웃곤 했다. 양산까지 들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나는 그녀가 빨리 가줬으면 해, 약밥을 몇 덩이 얼른 싸주었다.

   “안 그래도 약밥 싸달라고 얘기할라 그랬는데 댕큐야 댕큐. 학부형이 해줬다 그랬지? 이 약밥 너무 맛있으니 다음에 또 해달라고 그래.”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는 말꼬리를 확 올리며 길게 끌었다.  “맛있다, 맛있다 그러면 자꾸 해준다아--” 하고.  

   애경에겐 참 이상한 버릇이 있다. 뷔페에 가서도 뭘 싸가지고 오는 것이다. 좋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내 아파트에 들러서도 색다른 것이 눈에 띄면 “이거 나 줘라.” 하고는 집어갔다. 뭐든지 주워 모으는 버릇이 있었다.  

   꽤 오래 전 일이다. 우중충한 어느 날이었다. 비가 내리려는지 공기까지 끈적끈적했다. 백화점엘 가서 옷을 사야 하는데 내가 좀 봐 줘야 한다며 우기는 통에 따라 나섰다가 그녀의 집까지 간 적이 있었다. 나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비싼 동네에 살고 있었다. 주위가 너무나 고요했다. 희뿌연 회색 하늘을 등지고 선 아파트의 둔중한 몸집이 나를 압박해왔다. 주차장에는 사람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았고, 차들이 무덤처럼 침묵하고 있었다.

   아파트 문을 열자마자 훅하고 끼치는 냄새에 나는 주춤 서서 뒷걸음을 쳤다. 음식 냄새는 아닌, 영문 모를 냄새였다. 방안의 공기는 바깥보다 더 끈적끈적했다. 손으로 뜨면 손바닥에 소복하게 얹힐 것만 같았다. 뭐가 그렇게 꽉꽉 들어찼는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녀는 백화점에서 산 옷들을 꺼내지도 않고 쇼핑 백째로 구석에 휙 던졌다. 뭔가 쌓여 있는 위에 옷이 바깥으로 쏟아지며 또 쌓였다. 창문 가까이에는 줄이 길게 매어져 있었는데 거기에는 옷들이 주렁주렁 걸쳐져 있었다. 빨래를 왜 안에서 말릴까 하고 의아해서 다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옷장에 걸어두어야 할 옷들이었다.

   “이게 다 뭐니? 좀 치우고 살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튀어나온 말이었다.  

   “이거 다 내 보물이야. 보물. 집에서 좋은 건 다 쓸어왔어. 근데 좀 너저분하지? 내가 천천히 다 정리할 거야.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 아직 정리가 안 됐어.”

  좋은 건 다 쓸어왔다지만 여기저기에 쌓아놓은 물건들이 내 눈에는 다 버려야 할 것들이었다.

   그녀는 자기도취에 빠져 상대방 입장은 조금도 고려 않고 여행담을 신나게 늘어놓다가 “많이 아팠나 보구나.” 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상하다는 듯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디스크에 걸렸었는데 다리가 아팠어.”

   “뭐? 디스크? 하필이면 우리 언니가 걸린 병에 걸렸구나. 언니도 첨엔 다리가 아팠었거든. 그 병엔 푹 쉬는 게 최고야. 수술은 절대 하지 마.”  
  
   언니는 미국 오기 바로 전, 고등학교 2학년 때, 디스크 수술을 했었는데 미국에 와서도 수술을 또 했다는 얘기를 애경이가 한 적이 있다.  빵집에 앉아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가 일어서는데 갑자기 다리가 찌익 하고 당기면서 통증이 왔다고 한다. 병원엘 갔더니, “아, 수술하면 금세 낫습니다. 아주 간단해요. 며칠 지나면 바로 뛰어다닐 수 있어요.” 라는 의사의 말에, 그날로 바로 스케줄을 잡아 수술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에 와서 또 도졌다. 허리를 열어보니 수술 뒤끝 처리가 잘못되어 피 묻은 거즈들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언니가 세 번째 수술을 했다면서 나를 찾아와 해죽해죽 웃기까지 했었다.

   “꼴까닥  죽어버리면 그건 재미가 없고, 그냥  누워서 꼼짝 못하는 병신이 됐으면 속이 시원하겠다.”

   나는 이런 애경을 보면서 어쩜 인간이 저렇게 악할 수가 있을까 하고 의문스러웠다. 가끔 그녀는 인간이기를 거부하듯, 자신의 치부를 송두리째 드러내어 나를 당혹하게 만들었다.

   잠깐 말을 중단한 애경은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녀는 다시 언니 수술한 얘기를 하면서 “절대로 수술은 하지 마.” 하고 강조를 했다.  

   “수술 안 하고 한방 치료받고 지금은 거의 다 나았어.”

   “언닌 수술을 세 번씩이나 했는데 지금도 고생하고 있어. 앞으로 또 몰라 언제 어떻게 꼬꾸라질지. 너 솔직히 말해봐. 우리 언니 꼬꾸라지면 속 시원하겠지?”

   더 이상 가다간 또 무슨 소리가 나올지 몰라 나는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잘랐다.

   “애경아, 앞으로는 내 앞에서 언니 얘긴 하지 마. 듣기 싫거든.”

   이제 그만 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으나 겨우 참고 있는데 다행히 그녀가 일어섰다.

   “우리 언니 네 번째 수술할 날이 곧 올지도 모르니 기대해도 괜찮아. 혹시 알아? 지금은 네 애인 뺏고도, 또 부모유산 다 가로채고도 저렇게 이민우 사업이 잘돼, 하나님이 원망스럽지만 사람 일이란 모르는 거야. 우리가 뭐 다 살았니? 앞길이 창창한데····. 너도 언젠가 그랬잖아. 더 살아보라고 말야.”

   가슴에 철커덩하는 충격이 왔다.

   그것은 내가 이민우와 사귈 때 너무 애를 태운 적이 많아 강미경도 눈물을 흘리는 날이 있을 거라는 뜻이었지 그 이상은 아니었다. 애경은 생글생글 웃으며 내게 조소의 눈빛을 보내고는 약밥이 든 봉지를 흔들며 문을 나섰다. 나는 식탁에 앉은 채로 그녀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계속)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3
어제:
26
전체:
74,6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