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야 면장을 하지

2020.04.27 13:19

박제철 조회 수:0

알아야 면장을 하지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금요반 박제철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말이 있다. 나는 면장이라면 행정구역상 최소단위인 면()을 총괄하는 행정공무원인 면장(面長)을 말하는 줄 알았다. 아는 것이 많아야 면사무소 하나쯤은 책임질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면장(免牆)은 울타리 을 대한다는 뜻으로 배움과 앎을 강조한 말이다, 즉 알기위해서는 배워야하고 배워서는 뭘 모르는지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튼 공무원인 면장(面長)이나 배워야 한다는 면장(免牆)이나 배워서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성싶다.

 

 어젯밤 친구와 카톡 대화를 하다 무엇을 잘못 건드렸는지 핸드폰이 먹통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여기저기를 눌러보아도 해결될 기미가 없었다. 딸에게 전화하여 물어보아도 핸드폰을 직접 볼 수 없어서 잘 모르겠단다.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보고 아내는 알지도 못하면서 뭘 건드려 그러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핸드폰을 써야 하는데 먹통이 되고 보니 짜증도 나고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늦은 밤에 어쩔 도리가 없지 않은가? 내일 서비스점에 가서 점검을 받아보면 무엇 때문인지 알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달랬다.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접수를 하던 직원이 상냥하게 웃으면서 제가 도와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고장이 심하면 접수하고 기다려야 할 텐데 접수도 하지 않고 도와주겠다는 것으로 보아 그리 깊은 고장은 아닌 성싶어 마음이 놓였다. 10여 분 뒤에 핸드폰을 가지고 왔다. 다 되었다는 것이다. 반가워서 어디가 어떻게 고장 났느냐고 묻지도 못했다.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조작상의 문제라 간단히 해결했다지만 모르는 것은 손에 쥐어주어도 모른다지 않던가?

 

 어머니의 젊은 시절에는 냉장고나 TV는 물론 전화도 없었고 전깃불도 없었다. 빨래비누도 없어 양잿물을 사용하여 빨래를 했고. 여름이면 김치는 툇마루 시원한곳에다 두고 먹었고, 밥은 쉴까봐 뚜껑이 있는 동그란 밥 소쿠리에 담아 서까래에 매달아 놓고 먹기도 했다. 밤에는 호롱불 밑에서 우리 양말도 꿰매주셨다. 어머니가 내 나이쯤 되어서야 가전제품을 만나게 되었다. 생소한 것이라 어떻게 작동시키는지도 몰라 어머니에게 사용법을 가르쳐 드리기도 했다. 어머니가 문명의 이기를 누린 것이 있다면 아마 냉장고, TV. 전화기 정도였다.

 

 손 편지를 써서 사랑을 표현하던 시대에서 컴퓨터나 핸드폰을 이용하여 의사소통을 하는 시대로, 손으로 채널을 돌려서 TV를 보던 시대에서 리모컨이나 말로 채널을 바꾸는 시대로, 걸레를 빨아 무릎 굻고 청소를 하던 시대에서 로버트나 진공청소기를 이용하는 등 그야말로 나이든 사람은 감당하기조차 어려운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나의 어머니가 TV나 냉장고 사용법을 몰라 묻고 또 묻듯, 이젠 내가 컴퓨터나 핸드폰을 사용하다가 문제가 일어나면 아들, , 손자에게 묻고 또 묻는다. 어머니께서는 이런 것 없어도 잘 살았는데 뭐 이런 것이 나와서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 변화에 적응하기가 어렵기는 어머니시대나 나의 시대도 마찬가지다.

 

  변화에 적응해야하는 것은 핸드폰이나 컴퓨타 등 전자제품만도 아니다. 어쩌다 버스를 타고 청소년들끼리 대화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소위 자기네들끼리만 통하는 은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나일리지'라는 은어는 나이+마일리지를 합성한 말로 나이 많은 것을 앞세워 무조건 대우받기를 원하는 사람을 일컬어 하는 말이란다. 버스를 탈 때 혹시 자리라도 양보해줄까 하여 청소년 옆에 서면 나일리지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청소년을 위한 은어집까지 발간되었다니 언어마저도 아들딸손자에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야 할지 모르는 세상이다.

 

  핸드폰을 가져다 준 젊은 직원에게 ‘선생님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나이 먹은 사람이 선생님이라고 하니 조금은 계면쩍은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원불교 경전에는 지자(知者)본위로 살아야 한다고 했다. 어느 부분이든 나보다 아는 것이 많으면 지자(知者)요 선생이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엔 나이 많은 사람이 지자요 선생노릇을 하려고 한다. 나이 많은 어른 셋만 모이면 정치이야기에 열 올리고, 건강식품 이야기에 목소리를 높여 자기주장만을 내세우기도 한다. 내가 최고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젊은 사람들이 들으면 나일리지나 꼰대들의 다툼정도로 치부될지도 모른다.

 

 전자제품에 대해서는 내가 어머니의 지자요 선생이며, 아들딸손자와 서비스지점직원이 나에겐 지자요 선생이다.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는 것이 부끄럽지 모르는 것을 배우려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핸드폰 하나에도 쩔쩔매면서 스스로 지자(知者)인 양 ‘국민은 일등인데 정치는 삼등’이라고 주워들은 말로 꼰대 같은 정치평론도 곧잘 한다. 알아야 면장이고 지자(知者)며 선생이다. 알지도 못하면서 면장노릇을 하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202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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